대장경목록은 고려 후기 승려 수기가 재조대장경의 목록을 엮은 불교서 목록집이다. 재조대장경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간행한 초조대장경과 북송의 개보칙판대장경, 거란대장경을 면밀히 대조하여 판각한 것이다. 목록의 편성은 개개의 경전이 천자문의 순서에 따른 함차(函次)로 이루어져 있다. 각 함에서는 총권차와 입지첩장(入紙牒張)에 이어, 그 함에 수장된 경전명을 들고 권차와 역찬자명을 표시하고 있다. 대장경 목록은 재조대장경의 편찬 및 간행에 대한 연구와 해인사대장경판전에 소장되어 있는 경판의 점검에 있어서 긴요한 목록 구실을 한다.
3권 1책.
『재조대장경』은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간행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북송의 『개보칙판대장경(開寶勅版大藏經)』, 『거란대장경(契丹大藏經)』을 면밀히 대조하여 판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본문의 착오를 바로잡고, 탈락과 부족을 보완하고, 한역(漢譯)의 뜻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삭제하거나 대체하고, 또 『초조대장경』에 빠졌거나 없는 경전을 새로 편입시켜 구당관사(勾當官司)인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1236년(고종 23)부터 1251년까지 16년에 걸쳐 새겨냈다.
목록의 편성은 개개의 경전이 천자문(千字文)의 순서에 따른 함차(函次)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함(函)에서는 총권차(總卷次)와 입지첩장(入紙牒張)에 이어, 그 함에 수장된 경전명을 들고 권차와 역찬자명을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재조판 대장경 목록을 조사해 보면 그 목록이 끝의 함차인 ‘동(洞)’에 들어 있지 않고, 그보다 훨씬 앞의 함차인 ‘갱(更)’에 들어 있다. 이것은 초조판 대장경에서 간행을 마치고 그 목록을 마지막 함차인 ‘갱’에 배당한 것인데, 추조(追雕) 또는 재조할 때 그 함차를 그대로 이어받아 그 뒤의 함차에 추가분을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그간 발견된 일본의 난젠지(南禪寺) 소장의 『초조대장경』, 구 죠쇼지(長松寺)와 안코쿠지(安國寺) 소장의 초조대장경판 600권 『대반야바라밀다경』, 그리고 국내에서 발견된 100여 부 200여 권 『초조대장경』의 함차가 『재조대장경』과 같은 데서 여실히 입증된다. 그러므로 이 대장경 목록은 『재조대장경』의 편찬 및 간행의 연구와 현재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海印寺大藏經板殿)에 소장되어 있는 경판의 점검에 있어서 긴요한 장판 목록(藏板目錄)의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초조대장경』의 내용과 규모를 연구하고 새로 발굴되는 초조본을 고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초조대장경』은 10세기 말기에 북송에서 수입한 『개보칙대장경』과 그 뒤 1022년(현종 13)에 들어온 석전일장(釋典一藏) 등을 바탕으로 1011년(현종 2) 무렵부터 판각에 착수하여 문종 초기까지 계속하였는데, 이를 국전본(國前本)이라 한다. 그리고 1063년(문종 17) 『거란대장경』이 새로 수입됨에 따라 국전본에 없는 것을 비롯하여, 문의(文義)에 큰 차이가 있는 이역(異譯)과 본문이 크게 부족한 것과 착사(錯寫)가 심한 것 등을 새로 새겨 대체 또는 추가시켰는데 이를 국후본(國後本)이라 한다.
또, 『초조대장경』에는 1083년(문종 37) 3월 송나라로부터 수입된 신역경론(新譯經論)과 당나라의 정원(貞元)연간에 입장(入藏)된 경전이 잇따라 새겨졌으며, 그 보완작업이 1087년(선종 4)의 기록에 나타나 있다. 이 때까지의 판각 규모는 초조판 목록이 들어 있던 ‘천(天)’부터 ‘갱(更)’까지 571함에 수록된 경전으로 보고 있다.
그 내용은 ‘천(天)’부터 ‘영(英)’까지의 함에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에 수록된 차례로 대승(大乘)의 경(經) · 율(律) · 논(論), 소승(小乘)의 경 · 율 · 논, 현성집전(賢聖集傳)이 수록되고, ‘두(杜)’부터 ‘곡(轂)’까지의 함에는 송신역경론(宋新譯經論)이 수록되어 있으며, ‘책(策)’부터 이하의 함에는 『정원속개원석교록(貞元續開元釋敎錄)』을 비롯한 『정원신정석교록(貞元新定釋敎錄)』 · 『속정원석교록(續貞元釋敎錄)』에 들어 있는 경전이 판각되는 대로 누가(累加)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이를테면 ‘진(振)’부터 ‘이(伊)’까지의 함에 『신집장경음의수함록(新集藏經音義隨函錄)』이, ‘부(富)’부터 ‘경(輕)’까지의 함에 ‘무(茂)’부터 ‘각(刻)’까지의 함에서 옮겨진 송나라 태종(太宗)의 어제류(御製類)가 수록되었고, 또한 『거란대장경』에서 편입된 경전이 여기저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초조판과 재조판 대장경 목록의 ‘천’부터 ‘갱’까지의 함에 수록된 경전의 종수가 서로 꼭 같은 것이 아니며 다소의 차이가 있다.
수기(守其)가 재조할 때 국전 · 국후의 초조본과 송본 · 거란본의 본문을 대교한 결과를 자세히 기록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綠)』에 의하면 새로 추가, 대체, 제외시키고 함차를 바꾼 것이 나타난다. 이를테면, ‘양(養)’함의 『불설미륵하생성불경(佛說彌勒下生成佛經』 1권, ‘지(知)’함의 『최승등왕여래경(最勝燈王如來經)』 1권, ‘시(詩)’함의 『소실지갈라공양법(蘇悉地羯羅供養法)』 3권 등은 수기가 『거란대장경』에 의거, 추가시킨 것이고, ‘부(傅)’함의 『사분비구니갈마(四分比丘尼羯磨)』 1권은 본시 북송계의 것이었으나 거란본계의 것으로 대체한 것이다.
재조할 때 제외시킨 것은, 『초조대장경』 ‘회(廻)’ · ‘한(漢)’ 함의 『불명경(佛名經)』 18권과 ‘준(俊)’ · ‘예(乂)’ · ‘밀(密)’ 함의 『일체경원품차(一切經源品次)』 30권을 들 수 있다. 재조판 대장경 목록에서는 그 대신 ‘회’함에 『현우론(玄又論)』 20권, ‘한’함에 『마하연론(摩訶衍論)』 10권, ‘준’ · ‘예’ · ‘밀’ 함에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 30권으로 각각 대체하였다. 그리고 함차가 바뀐 것도 있으나, 이것은 단순한 함차의 이동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그 차이는 별로 크지 않으며, 571함에 수장된 『초조대장경』의 권수는 의천(義天)이 엮은 『기일본국제법사구집교장소(寄日本國諸法師求集敎藏疏)』에서 밝힌 바와 같이 6천 권이 됨을 알 수 있다.
재조판 대장경 목록은 ‘갱’함의 목록에 이어 ‘패(覇)’부터 ‘동(洞)’까지의 68함이 더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법원주림전(法苑珠林傳)』 ·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 · 『속일체경음의(續一切經音義)』를 제외하면 모두가 송나라의 신역경론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신역경론이 주로 간행된 것은 대장경의 초조작업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적지 않은 수량이 수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송나라는 『개보칙판대장경』이 완성된 983년에 새로 인경원(印經院)을 설치하여 전법원(傳法院)으로 사명(賜名)하고, 대장경의 신역조인사업(新譯雕印事業)을 계속 전담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1071년(문종 5)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그러나 그 기능이 개봉부(開封府)에 있는 숭화방(崇化坊) 현성사(顯聖寺)의 성수선원(聖壽禪院)으로 이관되어 11세기 말기를 거쳐 12세기 초기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에 경론이 적지 않게 인출되어 전수(傳輸)되었으며, 고려에서도 그에 대한 추조(追雕)작업이 진행되었다.
근년 국내에서 ‘갱’함 이후의 함차인 ‘회(會)’함의 『법원주림전』 제82권과 ‘한(韓)’함의 『불설불모출생삼법장반야바라밀다경(佛說佛母出生三法藏般若波羅蜜多經)』 제9권이 발견되었는데, 이 경전들의 판각기법 · 판식 · 지질 · 장정의 조건은 다른 여러 초조판의 후쇄본과 같고 재조판과는 크게 다르다. 1087년(선종 4) 이후부터 부인사(符仁寺)의 초조경판이 병화로 소실된 1232년 이전까지 사이에 개판된 경판에서 훨씬 뒤에 인출해 낸 것이다. 이것은 ‘패’부터 ‘동’까지의 함에 수장된 장경이 이래의 통설과 같이 재조할 때 모두 새로 새겨진 것이 아니라 초조가 일단락된 뒤 추조된 것들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재조대장경』은 1232년(고종 19) 『초조대장경판』이 소실되어 초조판 인본에 의거 본문을 교정하여 번각한 것이고, 이에 재조시 초조판을 삭제 또는 대체하거나 새로 추가한 것이 망라된 것이라고 하겠다. 그 개판작업 기간은 책에 표시된 간지에 의하면 정유세(丁酉歲, 1237)부터 무신세(戊申歲, 1248)까지로 나타난다. 1236년(고종 23) 대장도감을 공식적으로 설치하고 이전부터 준비해 온 개판작업에 착수, 그 다음해인 1237년 정유에 각판(刻板)이 나오기 시작하여 주요 경전이 1248년 무신에 일단락된 셈이다.
보유(補遺)한 대장경 목록을 보면 그 끝에 새로 『종경록(宗鏡錄)』 이하 15부의 장소(章疏)가 실려 있다. 그 중에는 신라 원효(元曉)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비롯하여 의상(義湘)의 찬술을 후학이 주석한 『법계도』, 그리고 고려 균여(均如)의 『십구장원통초(十句章圓通鈔)』 · 『화엄지귀장원통초(華嚴旨歸章圓通鈔)』 · 『화엄삼보장원통기(華嚴三寶章圓通記)』 · 『화엄교분기원통초(華嚴敎分記圓通鈔)』 등이 들어 있다.
이것은 1865년(고종 2) 해명장웅(海冥壯雄)이 장경의 인출업무를 마치고 보유한 것이며, 그 가운데 ‘녹(祿)’부터 ‘무(茂)’까지의 10함에 배당된 『종경록』은 1246년부터 1248년까지 남해 분사도감(南海分司都監)에서 개판해 낸 것으로 판면의 형식이 원장(原藏)과 같고, 각 권의 제명 아래 함차가 판각 당시에 새겨졌다. 이 함차는 『종경록』보다 3년 전인 1243년에 시작하여 같은 해인 1246년에 개판된 『신집장경음의수함록(新集藏經音義隨函錄)』의 1부를 비롯한 송나라 태종의 어제류 및 정원본 『대방광불화엄경』의 1부와 중복된다. 『종경록』을 장경에 새로 편입시키려고 간행하였으나, 이미 다른 경전에 배당한 함차의 변경이 여의하지 않아 그대로 두었던 것을 1865년에 부재(附載)한 것이다.
그리고 ‘정(庭)’부터 ‘무(務)’까지의 14함은 본래 표시가 없던 것을 보유할 때 매긴 것이며, 그 가운데 ‘광(曠)’부터 ‘원(遠)’까지의 함에 있는 『조당집(祖堂集)』, ‘묘(杳)’함에 있는 『수현기(搜玄記)』 및 ‘농(農)’부터 ‘무(務)’까지의 함에 있는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는 1245년(고종 32) 분사대장도감이 판각한 간기가 표시되어 있다.
‘정’함의 『증도가사실(證道歌事實)』은 도관낭중(都官郎中)인 전광재(全光宰)의 기록에 의하면 대장도감분사의 책임을 겸임하고 있던 안찰사 변한도(卞韓道)가 최이(崔怡)의 수복(壽福)을 빌기 위하여 1248년에 간행한 것이고, 『금강삼매경론』은 최이의 처남으로서 남해(南海)에 살면서 간경에 종사해 온 정안(鄭晏)이 1244년에 간행한 것이다. 『법계도』도 『증도가사실』과 같은 판식의 소형본인 점에서 대장도감분사에서 개판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막(邈)’부터 ‘수(峀)’까지의 함에 있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은 최이의 서자인 만종(萬宗)이 해장분사(海藏分司)에서 공인을 모집하여 간행했다고 하니, 역시 대장도감분사의 시설을 이용하여 개판해 낸 것이다. ‘명(冥)’함의 『십구장원통초』 · 『화엄지귀장원통초』 · 『화엄삼보장원통기』 · 『화엄교분기원통초』는 강도(江都) 또는 강화경(江華京)에서 1250년부터 1251년까지 적은 기록이 있다. 그 간행처는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
‘어(於)’함의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도 판심(版心)이 없는 무계(無界)의 권자본(卷子本) 형식으로 고려의 판각이다. 다만, ‘면(緜)’함의 명대 진실편(陳實編)인 『대장일람(大藏一覽)』이 조선 전기에 간행되고, ‘본(本)’함의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이 1502년(연산군 8)에 중각되었을 뿐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장경 목록은 ‘천’부터 ‘동’까지의 639함에 수록된 장경의 부수가 1,547부 6,547권이고, 보유된 ‘정’부터 ‘무’까지의 14함과 중복된 ‘녹’부터 ‘무’까지의 10함에 수록된 15부 231권을 합치면 총 부수가 663함 1,562부 6,778권이며, 총 경판수가 8만1,000여 판이다. 이 목록에 근거하여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함차별로 엮은 『대장경세별목록(大藏經細別目錄)』 1책이 1958년에 유인되었고, 『고려대장경』 영인판 제48로서 『고려대장경 총목록 · 해제 · 색인』 1책이 1976년에 활인, 보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