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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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년, 천추태후 황보씨가 외척인 김치양과 함께 발원하여 제작한 금자대장경 ‘제’함의 대보적경 권제32의 1권 사경.
이칭
약칭
보적경
문헌/고서
간행 시기
1006년
소장처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내용 요약

『대보적경』은 1006년에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씨(皇甫氏)가 외척인 김치양(金致陽)과 함께 발원하여 제작한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이다. ‘제(帝)’함의 『대보적경』 권제32의 1권 사경, 『대보적경』 사경 권제32의 1권은 ‘제(帝)’함의 사경으로 현존의 독립 단위의 한국 사경 중에서는 조성 시기가 가장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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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006년, 천추태후 황보씨가 외척인 김치양과 함께 발원하여 제작한 금자대장경 ‘제’함의 대보적경 권제32의 1권 사경.
내용

『대보적경(大寶積經)』 사경 권제32의 1권은 고려 건국 초기인 1006년(목종 9) 당시 고려의 왕이었던 목종(穆宗, 997~1009)의 어머니인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씨(皇甫氏)가 외척인 김치양(金致陽)과 함께 발원하여 제작한 금자대장경(金字大藏經) ‘제(帝)’함의 사경으로 현존의 독립 단위의 한국 사경 중에서는 조성 시기가 가장 빠르다. 현재 일본의 교토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자료의 변상도 좌측에 ‘가경(嘉慶) 2년(1388) 근강(近江)의 금강륜사(金剛輪寺)에 시입(施入)되었다’라는 주서(朱書)의 기록이 있는데, 당시 고려는 왜구 등의 침입이 빈번하였던 시기이므로 이때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경의 크기는 세로 29.2cm, 가로 841cm의 길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검푸른빛이 나는 종이인 감지(紺紙)에 금가루로 화려하게 글자를 썼다. 불경의 표지는 은니로 보상화당초문(寶相華唐草紋)을 그렸고, 표지 뒷면에는 역시 은니로 세 보살이 산화공양(散花供養)하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경문은 금니로 최성삭(崔成朔)이란 사람이 서사하였으며 요나 거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힘찬 필치를 보여주고 있다.

『대보적경』은 대승 불교의 심묘(深妙)한 법보를 담고 있는 여러 경들을 한데 묶어 놓은 경으로, 약칭하여 ‘보적경’이라고도 한다. 찬술의 시기는 당(唐)대(A.D. 706∼713) 보리류지(菩提流志)가 번역하였고, 전체는 1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전체 49회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회가 별도의 경인데, 각각 독립적인 내용으로 대승의 법보(法寶)를 담고 있는 여러 경들을 한데 모아서 편찬하였고 각 회마다 별도의 이역본(異譯本)들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초기 소승학설이 담겨있는 것부터 밀교의 영향을 받은 것까지 다양한 경전을 수록하였다. 각각에 담긴 사상적 배경도 매우 다양하고 총 49개의 경전과 전체 품수는 대략 77품이다. 보리류지가 이 경을 편찬할 때 이미 축법호(竺法護)를 비롯한 여러 고승들이 번역해 놓은 23종의 경은 그대로 포함시켰으며, 번역본이 있었으나 다시 번역한 경이 15종이며, 처음 번역한 것이 11종이었다고 전한다.

경전의 핵심적 내용은 총 49개의 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는 대승보살이 닦아야 할 여러 가지 수행법을 통해서 대승의 불법을 터득하여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발원한 천추태후는 경종의 후비(後妃)로 목종을 낳았고 목종이 등극한 후에 응천계성정덕왕태후(應天啓聖靜德王太后)로 존호를 올렸고 이 사경에도 그 존호가 사용되었다. 함께 발원한 김치양은 동주인(洞州人)이며 황보씨의 외척으로 성종 때 유배를 갔다가 목종이 즉위하고 우복야(右僕射), 삼사사(三司事)를 거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었을 때 제작되었다.

사경의 제작 당시 초교(初校)는 화엄종의 소세대사(炤世大師) 담욱(曇昱)이 보았고 중교(重校)는 화엄업대사 연밀(緣密)이 맡았으며, 이때 사용한 종이는 16폭(幅)이었다.

경전을 제작하던 시기는 ‘통화이십사년칠월일(統和二十四年七月日)’로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금자대장경의 사성을 발원한다고 하였으며 이때는 두 사람이 막강한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던 시기였다. 기록된 김치양의 관직 중 농서현(隴西縣)은 원재 중국의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지명이지만 성종 14년(996)에 전국 지방의 별호를 중국 각 지방명으로 삼은 기록으로 볼 때, 동주의 별호가 바로 농서현에 해당한다.

변상도의 그림은 후대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형태와는 다르다. 테두리 부분은 금강저 형태가 아닌 간략화된 도안이며 꽃이나 산화도 테두리 밖의 여백에까지 그려져 있어 매우 드문 사례로 꼽힌다. 또 표지화 역시 후대의 양식보다 단순하면서 큰 필치로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古寫經: 聖なる文字の世界』(京都國立博物館, 2004)
권희경, 『고려의 사경』(글고운, 2006)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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