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강원도 회양군에서 태어났다. 1남 4녀를 두었으며, 신동방, 효성그룹 측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강원도 평창보통학교, 선린상업학교, 경성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5년 식산은행에 입사하였고, 1949년 11월 이재국장으로서 이듬해 3월까지 100억에 달하는 공채 발행 업무를 담당하였다. 1950년 1월 한국 정부와 미 ECA 측 간의 13개 위원회 중 ‘은행여신 급 정부차입 위원회’ 위원으로, 5월에는 한국은행 설립준비위원회 정부 측 간사로 참여하였다. 1952년 1월 한국은행 부총재, 7월에는 한미합동경제위원회 재정분과위원에 임명되었다. 1955년 10월, 농업은행법안 기초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이어 1957년 6월 부흥부장관에 임명되었다가 1959년 3월 재무부장관으로 기용되었다.
4·19혁명 후 3·15부정선거 자금 수사 관련으로 구속되었다가 1963년 3월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되었다. 1967년 6월 태평양 아시아 경제협력체제 추진위원회 위원, 1968년 경제과학심의회 비상임위원, 1969년 2월 한일협력위원회 한국 측 경제부회 위원, 같은 해 5월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70년 6월 한국연구국제협의회[ILCORK] 회장에 선임되었으며, 1973년 7월 국무총리 산하 자원대책위원회 장기대책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4년 2월 주벨기에 및 EC 대사 발령을 받았으며, 1976년 5월 새로 발족된 한국수출입은행 초대 은행장에 임명되었다. 1981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으로 선임되었고, 1986년 4월에는 당시 동양나일론 회장으로서 한국능률협회 제4대 회장에 선임되었다. 2015년 사망하였다.
1994년 6월에 회고록 『부흥과 성장: 회남 송인상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1983년 미국 스탠퍼드연구소가 수여하는 세계기업인상, 1991년 한미 수교훈장 광화장, 2004년 한미협회 한미우호상,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같은 해 국제로타리 최고영예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