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화재사건 ()

현대사
사건
2008년 2월 10일 저녁, 70대 채종기가 국보인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러 숭례문이 소실된 사건.
사건/사건·사고
발생 시기
2000년 2월 10일
발생 원인
방화
발생 장소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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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숭례문 화재 사건은 2008년 2월 10일 저녁 70대 채종기가 국보인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러 숭례문이 소실된 사건이다. 이 사고로 숭례문 2층 문루의 90%, 1층 문루의 10%가 소실되었다. 사건 후 책임 소재를 둘러싼 당국 간 책임 공방이 전개되었고 대대적인 복원공사가 추진되어 2013년 5월 복원공사가 완료되었다. 정부는 온전한 복원을 강조하였으나 완공 직후부터 부실 문제가 드러났다.

정의
2008년 2월 10일 저녁, 70대 채종기가 국보인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러 숭례문이 소실된 사건.
발단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주1가 발생하였다. 밤 8시 45분 경 시작된 화재는 5시간 넘게 이어졌고, 2층 주2을 붕괴시킨 불이 1층으로 옮겨붙으면서 주3과 1층 일부를 제외한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소방당국은 소방차 50여 대와 소방인력 100여 명을 투입하여 화재 진압에 나섰고, 숭례문의 주4은 떼어냈지만 화재를 진압하지는 못하였다. 검거된 방화범 채종기는 자신이 소유한 토지에 대한 보상 결과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하였다.

경과 및 결과

화재 현장에는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종교단체들도 추모 의례를 거행하였다. 시민들의 자책과 애도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러한 자책과 애도는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숭례문 관리에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과 중구청, 소방방재청 등 행정당국 간에는 책임 공방이 이어졌다. 해소되지 않은 분노는 곧바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노숙인들에게로 향했고, 방화범이 검거되기 전에는 화재의 유력한 용의자로 노숙인을 지목하기도 하였다.

문화재청은 1960년대 보수공사 직후 작성한 수리보고서와 2006년 중구청이 만든 정밀 실측조사보고서 등이 있기 때문에 숭례문을 완전히 복구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또한 숭례문의 국보 제1호 변경 문제가 제기되었다. 건축물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에 재론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건축 · 사적분과 합동회의’ 결과 만장일치로 국보 제1호를 유지키로 했다는 답변으로 그러한 문제 제기를 일축하였다.

숭례문 주5은 2013년 5월 완료되었다. 총 5년 3개월의 기간이 걸렸고 277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었으며 약 35,000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 정부는 “ 조선 시대의 기록을 바탕으로 615년 전인 1398년 창건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완공 직후부터 단청이 벗겨지는 현상이 발생했고, 목재는 갈라졌고, 기와는 탈색과 변색이 진행되었다. 부실 복구 논란이 확산되었다. 결국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했고, 공사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도 시작되었다. 숭례문 복원 공사를 계기로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문화유산 보수 · 수리의 문제들이 드러났다.

의의 및 평가

숭례문 화재사건은 문화유산의 보존에 대하여 한국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 준 사건이다. 또한 이후 추진된 복원 과정을 통하여 문화유산의 수리와 복원의 문제점도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논문

정수진, 「숭례문과 원형 담론」(『비교민속학』 69, 비교민속학회, 2019)
주석
주1

불이 나는 재앙. 또는 불로 인한 재난. 우리말샘

주2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우리말샘

주3

돌로 쌓아 만드는 일. 우리말샘

주4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조각. 흔히 절이나 누각, 사당, 정자 따위의 들어가는 문 위, 처마 아래에 걸어 놓는다. 우리말샘

주5

원래대로 회복함.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정무용(한신대 교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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