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낙균의 상반신을 약간 측면에서 촬영한 자화상으로, 크기는 22.5×28.9㎝, 플래티넘 프린트로 제작됐다. 일반적인 초상사진과 달리 인물의 형상이 약간 흐리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낙균이 1926년 동경사진전문학교 졸업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으로, 당시 27세였다. 현재 남아있는 그의 다른 자화상과 비교할 때 가장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그란 안경테의 안경을 악용하고 있으며, 교복을 입은 모습이다. 정면을 응시한 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에서 학구적인 청년 학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신낙균은 한국 사진학의 개척자로 평가받으며 일제강점기 사진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경성사진학강습원의 교재를 집필했으며, 1920년대 예술사진 운동을 펼쳐나갔다. 이후 『동아일보』 사진부의 사진과장으로 취임한 후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자화상은 소수의 몇 점뿐이다. 청년기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자화상은 그런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에서 새로운 미래를 찾아 신학문을 배우고자 했던 그의 열정과 동경심이 앞을 주시하고 있는 시선에 드러나 있으며,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식민지 청년 지식인의 우수를 엿볼 수 있다.
촬영과 제작 방식은 그의 사진예술에 대한 관념이 모두 집약되어 있다. 사진은 기계적 복제 기술이라는 통념을 뛰어넘어 작가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특수인화법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술이 단지 신문물의 하나일뿐만 아니라 새로운 예술의 일종이라는 점을 명확히 자각하고 있었던 그의 예술관을 집약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