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실파려안은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이 18세기 후반 조선으로 유입된 유럽의 광학기기인 카메라 옵스쿠라를 ‘유리 눈을 단 어두운 방’이라는 의미로 부른 명칭이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카메라의 전신인데, 라틴어로 카메라는 ‘방' 옵스쿠라는 ‘어두운' 이라는 뜻으로 ‘어두운 방'을 의미한다. 칠실파려안의 ‘칠실'은 '어두운 방', ‘파려'는 '유리', ‘안’은 '눈'의 한자어로서 ‘유리의 눈을 단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중 「복암 이기양의 묘지명」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칠실파려안은 주1 옵스쿠라에 대한 순수 우리식의 번역어로 볼 수 있다.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는 카메라의 전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라틴어로 카메라는 ‘방(chamber)’ 옵스큐라는 ‘어두운(dark)’ 이라는 의미로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 이라는 뜻이다. 작은 구멍이 난 한쪽 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반대쪽 벽에 외부의 영상을 거꾸로 투영하는 원리를 바탕으로 한 장치이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는 고대로부터 그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탐구가 있었으며 눈이 상하지 않게 태양의 일식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주2 시대 미술의 관심사였던 사실적인 재현을 위한 보조 장치로서 사용되었고, 지도, 연극 무대 장치, 건축 등의 분야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칠실파려안의 ‘칠실(漆室)’은 검은 옻칠을 한 것 같은 어두운 방 또는 공간을, ‘파려(玻瓈)’는 유리 또는 렌즈를 칭하며, ‘안(眼)’은 눈의 한자어로써 ‘렌즈의 눈을 단 어두운 방’이라는 뜻으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번역한 용어이다. 이 용어를 사용한 대표적인 저술은 정약용(丁若鏞)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중 「 복암 이기양(茯菴 李基讓) 묘지 명」이다. 정약용은 그와 교우가 깊었던 이기양이 천주교의 연루자라는 모함으로 애석하게 죽어간 것을 추모하며 묘지명을 지었는데 여기에서 '칠실파려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실학자들의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이해와 그 장치에 대한 실험을 기록하였다.
“복암[이기양의 호]이 일찍이 예전에 나의 형님 정약전의 집에서 칠실파려안을 설치하고 거기에 비친 거꾸로 된 그림자를 취하여 주3을 그리게 하였다. 밖에 앉은 사람이 털끝 하나만 움직여도 초상을 그릴 수가 없는데 공은 태양을 향해 뜰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그 의연함이 흙으로 만든 사람처럼 이슥도록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또한 다른 사람은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일찍이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로마 카톨릭 사제였던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1~1666]이 중국어로 쓴 『원경설(遠鏡說)』의 수용으로 조선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조선 실학자들은 서양 과학 기술의 하나로 그 원리를 이해하여 실험을 하는 등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기양의 실용적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은 그 당시 실학자들의 이용후생(利用厚生)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정약용은 이기양이 칠실파려안에 관심을 가지고 실험을 했었다는 점을 기록하며 이기양의 학문적 열정을 기념하고 있다.
정약용의 시문집 1집 10권 「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은 정약용의 칠실파려안 원리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그 장치를 이용하여 그림을 제작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