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은 '캄캄한 방에서 주1을 보는 이야기'라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서양에서 유입된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은 정약용이 문집에서 사용한 카메라 옵스쿠라의 번역어이다. ‘칠실(漆室)’은 검은 옻칠을 한 것 같은 어두운 방을, ‘파려(玻瓈)’는 유리 또는 렌즈를 칭하며, ‘안(眼)’은 '눈'의 한자어로써 칠실파려안은 ‘렌즈의 눈을 단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는 고대로부터 그 기본적인 원칙에 대한 탐구가 있었으며 특히 주2 시대의 미술의 관심사였던 사실적인 재현을 위한 보조 장치로서 사용되며 그 원리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과 이론이 정립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주3, 지암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ambattista della Porta, 15351615), 다니엘 바르바로(Daniele Barbaro, 15131570),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630)주4 등은 그들의 저서를 통해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와 그 중요성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였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는 일찍이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이자 로마 카톨릭 사제였던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湯若望, 1591~1666)이 중국어로 쓴 『원경설(遠鏡說)』의 수용으로 조선 후기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실학자들이 서양 과학 기술의 하나로 그 원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실험을 하였다. 정약용의 「칠실관화설」은 카메라 옵스쿠라에 대한 이해와 실험을 증명한다.
「칠실관화설」은 다음과 같다.
"방은 호수와 산 사이에 있다. 물가와 주5의 아름다움이 양편으로 둘러 얼비친다. 대와 나무와 꽃과 바위도 첩첩이 무리 지어 주6의 울타리를 짓는다. 맑고 좋은 날씨를 골라 방을 닫는다. 무릇 주7이나 창문이나 바깥의 빛을 받아들일 만한 것은 모두 틀어막는다. 방안을 칠흑같이 깜깜하게 해놓고, 다만 구멍 하나만 남겨둔다. 돋보기 하나를 가져다가 구멍에 맞춰놓고, 눈처럼 흰 종이판을 가져다가 돋보기에서 몇 자 거리를 두어 비치는 빛을 받는다. [렌즈의 평평함과 볼록함에 따라 그 설치 거리가 다르다.] 그러면 물가와 묏부리의 아름다움과 대와 나무와 꽃과 바위의 무더기, 누각과 울타리의 둘러친 모습이 모두 종이판 위로 비친다. 짙은 청색과 옅은 초록빛이 그 빛깔 그대로요, 성근 가지와 촘촘한 잎이 그 형상 그대로이다. 구성이 조밀하고 위치가 가지런해서 절로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세세하기가 실낱이나 터럭 같아 마침내 중국의 유명한 화가 주8나 주9라도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천하의 기이한 경관이다. 안타까운 것은 바람에 나무가지가 흔들림으로 묘사해 내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사물의 형상이 거꾸로 비쳐 감상하기 황홀하다. 이제 어떤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되 터럭 하나도 차이 없기를 구한다면 이 방법을 버리고서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당 가운데서 진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꼼작도 않고 단정히 앉아 있어야 한다. 그 묘사의 어려움이 바람에 움직이는 나뭇가지와 다르지 않은 탓이다."
[실어호산지간 유주저암만지려 영대좌우 이죽수화석총첩언 누각번리리이언 어시선청호지일 폐지실 범창령유호지유가이납외명자 개새지 령실중여칠유유일규 취애체일척 안어규 어시취지판설개자리애체수척 〔수애체지평돌기거도부동〕 이수지영 어시주저암만지려 여부죽수화석지총첩 누각번리지리이자 개래락판상 심청천록여기색 소가밀엽여기형 간가소삼위치제정 천성일폭 세여사발 수비고육지소능위 개천하지기관야 소차풍초활동 묘사기간야 물형도식람상황홀야 금유인욕모사진 이구일발지불차 사차재무양법 수연불엄연단좌어정심여니소인자 기묘사지간 불이풍초야 (室於湖山之間 有洲渚巖巒之麗 映帶左右 而竹樹花石叢疊焉 樓閣藩籬邐迆焉 於是選晴好之日 閉之室 凡牕欞牖戶之有可以納外明者 皆塞之 令室中如漆唯留一竅 取靉靆一隻 安於竅 於是取紙版雪暟者離靉靆數尺 〔隨靉靆之平突其距度不同〕 而受之映 於是洲渚巖巒之麗 與夫竹樹花石之叢疊 樓閣藩籬之邐迆者 皆來落版上 深靑淺綠如其色 疎柯密葉如其形 間架昭森位置齊整 天成一幅 細如絲髮 遂非顧陸之所能爲 蓋天下之奇觀也 所嗟風梢活動 描寫崎艱也 物形倒植覽賞恍忽也 今有人欲謀寫眞 而求一髮之不差 捨此再無良法 雖然不儼然端坐於庭心如泥塑人者 其描寫之艱 不異風梢也)]
정약용은 성호 이익의 개혁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사의(寫意)를 강조한 당시의 남종화풍을 비판하며 서학과 사실주의 경향의 회화론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칠실관화설」은 회화의 주10를 중시한 과학적 사실 묘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일깨워준 실험의 기록으로서 이규경, 박규수, 최한기 등 후기 실학자들의 서양 광학장치에 대한 이해와 실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