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주1의 선도 학문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류학 분야에서는 일찍부터 신체측정사진술[身體測定寫眞術, anthropometric photography]이라는 기법을 개발하여 피식민지인을 대상으로 인종 사진을 체계적으로 제작하였다. 이를 통해 유형화된 인종들은 분류되고 주2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신체측정사진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 이론과 주3의 정당성에 활용되었다.
조선인들도 신체측정사진술의 대상이 되었는데, 대한제국기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 아마추어 인류학자들에게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00년 경의선 부설을 위한 기술고문관으로 조선을 방문한 에밀 부르다레(Émile Bourdaret)는 프랑스의 엔지니어이자 아마추어 고고인류학자로서, 1901년 2월부터 2년여 동안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체질인류학 조사를 실시하여 수백여 점의 신체측정사진을 남겼다.
1901년 11월 고종의 주4로 조선을 찾은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분쉬(Richart Wunsch)가 부르다레의 뒤를 이었다. 1903년 그는 자신을 주선했던 일본 동경제국대학 내과교수 벨츠(Bälz)와 함께 강원도의 독일 금광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광부들을 대상으로 인류학 · 주5 연구 조사를 하면서 신체측정사진을 찍었다.
제3대 이탈리아 영사로 조선에 부임해 온 카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도 1904년경 부르다레의 도움을 받아 수십여 장의 조선인 남녀의 신체측정사진을 촬영하였다.
그러나 보다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조선인 신체측정사진은 도쿄제국대학 인류학교실 소속의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의뢰로 1910년 예비조사를 시작으로, 1911년부터 1932년까지 총 10회의 주6 조사사업에 참여하였다. 사료 조사[19111915] 및 고적 조사[19161923]라는 이름으로 실시된 식민지 조사사업에 참여한 도리이는 총 3,777매의 유리건판을 남겼는데, 이 중 1,076매가 조선인들의 신체측정사진이었다.
그는 함경도를 시작으로 평안북도, 경상도, 제주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평안남도, 황해도, 경기도 등 한반도 전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일일이 개별 신체를 계측 · 기록하고 단독 또는 집단으로 다수의 신체측정사진을 남겼던 것이다. 그는 결국 이러한 방법을 통해 조선인에 대한 지역별 인종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도리이는 신체측정사진술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조선인의 모습을 ‘과학적으로’ 표상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조선인신체측정사진은 일본이 그들의 인종학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우승열패의 논리로서 주7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에 이용되었으며, 이런 점에서 그의 인류학적 사진은 주8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