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진작가단 ()

사진
단체
1957년 1월, 최계복을 단장으로 7명의 사진가가 설립한 직업사진가단체.
단체
설립 시기
1957년 1월
해체 시기
1959년
설립자
성두경, 이건중, 이경모, 정도선, 정희섭, 조명원, 최계복
설립지
서울 종로3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한국사진작가단은 1957년 1월 최계복을 단장으로 7명의 사진가가 설립한 직업사진가단체이다. 이 단체는 이승만 정권의 관광 및 문화재 정책에 부응하여, 주로 한국의 풍광과 문화재를 대상으로 촬영했다. 이를 통해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했고, 관광사진과 문화재사진이라는 새로운 사진시장을 개척했다.

정의
1957년 1월, 최계복을 단장으로 7명의 사진가가 설립한 직업사진가단체.
설립 과정 및 창립 회원

1957년 1월 최계복을 비롯하여, 정도선, 이건중, 성두경, 정희섭, 이경모, 조명원 등 7명의 사진가들이 서울 종로3가에 있던 이건중의 사진스튜디오인 이화사진연구소에 모여 한국사진작가단을 창립했다. 1958년에는 대구의 사진가 홍사영을 영입함으로써 모두 8명의 사진가가 한국사진작가단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한국사진작가단 소속 사진가 대부분은 이미 해방 전후에 사진관 또는 사진재료상 등 사진업 관련 일에 종사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종군사진가로 활동했다. 또한 이들은 대한사진예술가협회와 한국사진작가협회 등 주요 사진단체 회원으로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던 중견 작가들이었으며, 당시 사진산업과 사진시장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학을 담당하고 있었다.

초대 단장인 최계복은 해방 이후 경북사진문화연맹 등의 주요 사진단체를 조직했던 대구의 대표적인 사진가였다. 이건중은 1946년 국립박물관의 초대 사진기사로 근무하며, 경주 노서동 호우총(壺杅塚)은령총(銀鈴塚) 발굴 조사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에 참여하여 다수의 유물사진을 남겼다. 동방사진문화사에서 전무를 역임한 성두경은 당시 반도호텔에서 반도사진문화사를 운영하면서 서울시의 촉탁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호남신문사 사진부장 출신인 이경모는 당시 국제보도연맹 이사로 있었으며, 1957년에는 공보국에서 선전 촉탁을 맡으면서 관광 및 문화재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대한사진통신사의 사진부장과 한신사진뉴스의 편집국장을 역임한 정도선은 1957년 당시 문교부 촉탁으로 일하고 있었다. 정희섭은 당시 전국사진가연합회[1955년 창립] 회장직을 맡았으며, 한국사진작가단 창립 직전인 1956년에는 개인전 고적채색사진전을 열고 문화재사진을 발표한 이력이 있었다. 1956년 한국사진문화사를 설립한 조명원은 당시 사진 전문 잡지인 『사진문화』의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설립 목적

한국사진작가단은 1957년 창립 선언을 하면서 "한 국가의 국제적 인식은 올바른 실정의 소개에 있는바 선진 국가에 있어서 우리나라에 대한 심히 왜곡된 자료로 인한 몰인식 등 국가 체면을 손상시킨 사례가 허다함에 유구 오천년의 역사와 민족의 전통을 세계에 자랑할 문화재 화려한 강산풍광은 전 세계에 선전되어야 할 것을 통감한 우리를 사진인 유지 일동은 대내 · 대외적으로 사진작품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편 국가의 관광사업을 적극 협조하고 사진의 국내 및 해외교류를 추진하여 사계(斯界) 발전을 기도코자 한국사진작가단을 결성하여 사진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무를 완수코자 하나이다."라는 설립 취지를 발표했다.

이러한 취지를 달성하고자 7개의 사업 목표를 설정했는데, “1. 창의 작품, 2. 관광, 과학, 산업, 상업, 보도, 교재 사진전 개최, 3. 국가가 주관하는 문화정책에 대한 협조, 4. 사진문화의 국제문화교류를 위한 대책, 5. 사진문화정책에 관한 대정부 건의, 6. 대외사진작품 공모전 개최, 7. 기타 사진문화발전에 관한 사항” 등이었다. 이상의 설립 취지와 사업 목표를 통해 한국사진작가단이 순수한 사진 창작 단체가 아닌, 국가의 문화정책과 관련된 사업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주요 활동

1957년 3월 제1회 회원전인 한국사진작가단 창립전을 시작으로 1957년 8월 제2회 회원전인 고적 · 명승 사진전, 1958년 5월 제3회 회원전 작가단 자유전 사진전 등 총 3차례의 회원전을 개최했다. 1957년 12월 교통부가 주최한 제1회 관광사진전시회에 한국사진작가단 회원들의 작품들만 출품되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모두 4차례의 단체전을 개최한 셈이다. 그중 특히 고적 · 명승 사진전과 제1회 관광사진전시회은 한국사진작가단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냈는데, 설립 취지에 맞게 전국의 명승고적과 자연풍광을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한국사진작가단 소속 사진가들은 단체 활동 외에, 개별적으로 여러 기관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수많은 문화재사진을 생산했다. 여기에는 국립박물관뿐만 아니라 정부 산하 기관과 언론사 및 출판사 등 공공 및 민간 기관들이 망라되었다. 이는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문화재 정책에 부응한 결과였다.

의의 및 평가

한국사진작가단의 활동은 2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사진산업과 사진시장이 불모지였던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관광 및 문화재 정책에 부응하여 ‘관광사진’ 또는 '문화재사진'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참고문헌

단행본

육명심, 최인진, 『한국현대미술사(사진)』(국립현대미술관, 1978)

신문·잡지 기사

「푸로작가만으로, 한국사진작가단 결성」(『사련보』 1, 전국사진가연합회출판국, 1957. 2.)
「한국사진작가단 발족」(『사진문화』 6, 한국사진문화사, 195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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