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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가례부췌 책판 (家禮附贅 冊板)
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가례부췌(家禮附贅)』는 조선시대의 학자 안신(安迅)이 주자의 『가례』를 대상으로 문헌 고증을 통해 내용적 완결성을 제고하고 필요한 의절을 보완하여 행례 시에 참조하도록 편찬한 예서이다. 이를 위해 『가례』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뽑아 기록하고, 당시 조선의 제도와 중국의 민간 의례서와 조선 학자들의 문집 가운데 예를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채록하여 그 밑에 덧붙여 적었다. 또한 『가례』에는 빠져 있지만 행례의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다수의 의절을 수록하였다.
가례부췌 (家禮附贅)
『가례부췌(家禮附贅)』는 조선시대의 학자 안신(安迅)이 주자의 『가례』를 대상으로 문헌 고증을 통해 내용적 완결성을 제고하고 필요한 의절을 보완하여 행례 시에 참조하도록 편찬한 예서이다. 이를 위해 『가례』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뽑아 기록하고, 당시 조선의 제도와 중국의 민간 의례서와 조선 학자들의 문집 가운데 예를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채록하여 그 밑에 덧붙여 적었다. 또한 『가례』에는 빠져 있지만 행례의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다수의 의절을 수록하였다.
『가례원류속록』은 사대부가 시행하는 관혼상제(冠婚喪祭) 외에 천자와 제후가 행하는 왕조례를 위주로 편성한 『가례원류』의 속편이다. 시남(市南) 유계(俞棨, 1607∼1664)가 편찬한 책으로, 가례에 포함되지 않은 제왕가의 네 가지 의례 및 신하가 조정에서 임금을 뵙는 일, 제후 간에 서로 방문하여 공물을 바치는 일 등의 의식을 2권 1책으로 편집하여 1715년에 간행하였다.
가례원류속록 (家禮源流續錄)
『가례원류속록』은 사대부가 시행하는 관혼상제(冠婚喪祭) 외에 천자와 제후가 행하는 왕조례를 위주로 편성한 『가례원류』의 속편이다. 시남(市南) 유계(俞棨, 1607∼1664)가 편찬한 책으로, 가례에 포함되지 않은 제왕가의 네 가지 의례 및 신하가 조정에서 임금을 뵙는 일, 제후 간에 서로 방문하여 공물을 바치는 일 등의 의식을 2권 1책으로 편집하여 1715년에 간행하였다.
『가례집람(家禮輯覽)』은 1599년 김장생이 주자의 『가례(家禮)』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가례』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정하기 위해 편찬한 예법에 관한 책이다. 16세기 조선의 『가례(家禮)』 연구는 초기에 행례의 매뉴얼을 마련하는 수준에서 중기에는 『가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에 진입하였고, 후기로 가면서 『가례』의 문제점을 찾아 이를 고증하고 보완하는 차원으로 나아갔다.
가례집람 (家禮輯覽)
『가례집람(家禮輯覽)』은 1599년 김장생이 주자의 『가례(家禮)』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가례』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정하기 위해 편찬한 예법에 관한 책이다. 16세기 조선의 『가례(家禮)』 연구는 초기에 행례의 매뉴얼을 마련하는 수준에서 중기에는 『가례』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단계에 진입하였고, 후기로 가면서 『가례』의 문제점을 찾아 이를 고증하고 보완하는 차원으로 나아갔다.
『가례편람(家禮便覽)』은 17세기 이후에 편찬된 예서(禮書)로 『가례(家禮)』를 시행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한 책이다. 이 책은 김장생의 『상례비요(喪禮備要)』를 본보기로 하여 편찬되었기 때문에 관혼상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 주로 상례(喪禮)에 집중되어 있으며, 행례(行禮)를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의 풍속에 해당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저자와 제작 연대는 모두 미상이다.
가례편람 (家禮便覽)
『가례편람(家禮便覽)』은 17세기 이후에 편찬된 예서(禮書)로 『가례(家禮)』를 시행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한 책이다. 이 책은 김장생의 『상례비요(喪禮備要)』를 본보기로 하여 편찬되었기 때문에 관혼상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 주로 상례(喪禮)에 집중되어 있으며, 행례(行禮)를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 시대의 풍속에 해당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저자와 제작 연대는 모두 미상이다.
조선후기 「설중귀려도」, 「달마도」, 「은사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김명국 (金明國)
조선후기 「설중귀려도」, 「달마도」, 「은사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
동궁비 원삼 (東宮妃 圓衫)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
조선 후기에, 『성학속도』, 『학림통록』, 『문소가례』 등을 저술한 학자.
김병종 (金秉宗)
조선 후기에, 『성학속도』, 『학림통록』, 『문소가례』 등을 저술한 학자.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권상하 (權尙夏)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조선 전기에,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한 문신.
김자지 (金自知)
조선 전기에,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가례부해』, 『삼기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금시양 (琴是養)
조선 후기에, 『가례부해』, 『삼기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서유본은 조선 후기에 『관제연혁고』, 『좌소산인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문인이다. 서유구와 친형제간이며, 『규합총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빙허각이씨의 남편이다.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22년(순조 22)에 사망했다. 1805년 가을에 동몽교관이 되었으나 1806년(순조 6) 관직에서 물러났다. 경학 연구에도 실증적인 학풍을 적용하여 『주자가례』를 연구하였으며, 『의례』를 가장 중시하였다. 초기에는 변려문 제작에 힘을 쏟았으나, 후기에는 당송팔가를 모범으로 삼아 명·청의 문장들을 모두 배격하였다.
서유본 (徐有本)
서유본은 조선 후기에 『관제연혁고』, 『좌소산인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문인이다. 서유구와 친형제간이며, 『규합총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빙허각이씨의 남편이다.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22년(순조 22)에 사망했다. 1805년 가을에 동몽교관이 되었으나 1806년(순조 6) 관직에서 물러났다. 경학 연구에도 실증적인 학풍을 적용하여 『주자가례』를 연구하였으며, 『의례』를 가장 중시하였다. 초기에는 변려문 제작에 힘을 쏟았으나, 후기에는 당송팔가를 모범으로 삼아 명·청의 문장들을 모두 배격하였다.
『삼례의』는 조선후기의 문신 학자인 박세채(朴世采)가 관례(冠禮), 혼례(婚禮), 제례(祭禮)의 삼례(三禮)에 관한 내용을 풍속에 맞게 시행할 수 있도록 저술한 예서(禮書)이다. 1690년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며, 1711년에 처음 간행되었다. 3권 1책으로 된 목판본(木版本)이다. 이 책은 삼례를 『가례(家禮)』에 의거하여 해설하고 고금(古今)의 여러 서적을 참고하여 집필되었다. 또한 이 책은 당시의 풍속을 반영하여 절충함으로써, 실제 가정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의례를 기술한 실용적인 예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삼례의 (三禮儀)
『삼례의』는 조선후기의 문신 학자인 박세채(朴世采)가 관례(冠禮), 혼례(婚禮), 제례(祭禮)의 삼례(三禮)에 관한 내용을 풍속에 맞게 시행할 수 있도록 저술한 예서(禮書)이다. 1690년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며, 1711년에 처음 간행되었다. 3권 1책으로 된 목판본(木版本)이다. 이 책은 삼례를 『가례(家禮)』에 의거하여 해설하고 고금(古今)의 여러 서적을 참고하여 집필되었다. 또한 이 책은 당시의 풍속을 반영하여 절충함으로써, 실제 가정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의례를 기술한 실용적인 예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삼부팔모(三父八母)는 상복(喪服) 제도와 관련하여 『가례(家禮)』에 수록된 특수한 형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형을 이르는 말이다. 전통 시대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산 사람의 슬픔을 표하는 도리를 상복(喪服)의 종류와 기간으로 정하였다. 이 가운데 특별한 관계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어떤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는 3종의 특별한 아버지와 8종의 특별한 어머니를 선별하고 이들에 대한 상복 제도를 제시하였다.
삼부팔모 (三父八母)
삼부팔모(三父八母)는 상복(喪服) 제도와 관련하여 『가례(家禮)』에 수록된 특수한 형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형을 이르는 말이다. 전통 시대에는 죽은 사람에 대한 산 사람의 슬픔을 표하는 도리를 상복(喪服)의 종류와 기간으로 정하였다. 이 가운데 특별한 관계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어떤 상복을 얼마 동안 입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는 3종의 특별한 아버지와 8종의 특별한 어머니를 선별하고 이들에 대한 상복 제도를 제시하였다.
봉곡사는 18세기 말에 다산 정약용이 이익의 『가례질서』를 편찬했던 사찰이다. 고려시대 이래 석암사로 불리다가 1794년에 경헌과 각준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사찰명을 봉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약용의 글에서는 봉곡사와 석암사라는 명칭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봉곡사 (鳳谷寺)
봉곡사는 18세기 말에 다산 정약용이 이익의 『가례질서』를 편찬했던 사찰이다. 고려시대 이래 석암사로 불리다가 1794년에 경헌과 각준이 대웅전을 중수하고 사찰명을 봉곡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약용의 글에서는 봉곡사와 석암사라는 명칭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봉사(奉祀)는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 등의 조상에 대한 제사이다. 『경국대전』의 봉사법은 차등적 삼대봉사와 장자 승계를 규정한 남계·부계 중심의 가부장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남녀윤회봉사 등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사대봉사, 적장자 단독 승계 등이 확립되었고, 이는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전통으로 각인되어 1960년 제정 민법에 호주제로 정착되었다. 호주제는 2005년 민법의 개정으로 2008년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봉사 방식이 존재하며 남녀평등적인 15세기로 회귀하였다.
봉사 (奉祀)
봉사(奉祀)는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 등의 조상에 대한 제사이다. 『경국대전』의 봉사법은 차등적 삼대봉사와 장자 승계를 규정한 남계·부계 중심의 가부장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남녀윤회봉사 등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사대봉사, 적장자 단독 승계 등이 확립되었고, 이는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전통으로 각인되어 1960년 제정 민법에 호주제로 정착되었다. 호주제는 2005년 민법의 개정으로 2008년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다양한 봉사 방식이 존재하며 남녀평등적인 15세기로 회귀하였다.
『용담집』은 조선 중기 영남 유학자인 임흘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시는 대체로 충담소산(沖澹蕭散)한 풍격이 체현된 작품들이 많다. 정구, 조호익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임흘의 경학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자설요의(字說要義)」라는 자전을 남겼는데, 자학(字學)을 연구하는 이들이 주목할 만한 자료이다. 1920년 후손 임시호가 석인본으로 출간했다가 1976년 『가례부해(家禮附解)』가 발견되어, 1993년 구본과 합집하여 중간(重刊)하였다. 이 책은 『주자가례』에 퇴계와 한강의 예설(禮說)을 첨부한 책이다.
용담문집 (龍潭文集)
『용담집』은 조선 중기 영남 유학자인 임흘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시는 대체로 충담소산(沖澹蕭散)한 풍격이 체현된 작품들이 많다. 정구, 조호익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임흘의 경학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자설요의(字說要義)」라는 자전을 남겼는데, 자학(字學)을 연구하는 이들이 주목할 만한 자료이다. 1920년 후손 임시호가 석인본으로 출간했다가 1976년 『가례부해(家禮附解)』가 발견되어, 1993년 구본과 합집하여 중간(重刊)하였다. 이 책은 『주자가례』에 퇴계와 한강의 예설(禮說)을 첨부한 책이다.
사례(四禮)는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이다. 천하나 국가 단위의 공적 의례인 왕조례(王朝禮)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의 오례(五禮)로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사례는 사대부가에서 소년기 관례, 청년기 혼례, 중장년기의 상례와 사후의 제례로 일생의 시간 순서에 따라 반드시 치르게 되는 가례의 핵심적인 통과의례 혹은 일생 의례들로 구분된다.
사례 (四禮)
사례(四禮)는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이다. 천하나 국가 단위의 공적 의례인 왕조례(王朝禮)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의 오례(五禮)로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사례는 사대부가에서 소년기 관례, 청년기 혼례, 중장년기의 상례와 사후의 제례로 일생의 시간 순서에 따라 반드시 치르게 되는 가례의 핵심적인 통과의례 혹은 일생 의례들로 구분된다.
『사례정변』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조상이 같으며, 충청도 연산에 살았던 18세기 인물인 후촌(後村) 김경유(金景游)가 편찬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주석서이다. 『주자가례』를 경(經)으로 인식하여 이를 오래도록 적용될 규범으로 지키고자 했던 경향을 보여 주는 책이다.
사례정변 (四禮正變)
『사례정변』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과 조상이 같으며, 충청도 연산에 살았던 18세기 인물인 후촌(後村) 김경유(金景游)가 편찬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주석서이다. 『주자가례』를 경(經)으로 인식하여 이를 오래도록 적용될 규범으로 지키고자 했던 경향을 보여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