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간도"
검색결과 총 31건
간도는 17세기,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동남부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 간 분쟁하던 지역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만주에 사는 조선인이 미간지를 개발하고 정착하면서 분쟁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변두리였던 만주가 제국주의 침략을 받으면서 간도 문제는 국제 문제와 연동되었다. 1907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으로 인해 간도는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한일합방 후 민족운동가들은 1870년대부터 형성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시도하였고 이를 탄압하는 일제의 침략이 지속되었다.
간도 (間島)
간도는 17세기,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동남부와 압록강·두만강 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과 한국 간 분쟁하던 지역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만주에 사는 조선인이 미간지를 개발하고 정착하면서 분쟁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변두리였던 만주가 제국주의 침략을 받으면서 간도 문제는 국제 문제와 연동되었다. 1907년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간도협약’으로 인해 간도는 중국으로 귀속되었다. 한일합방 후 민족운동가들은 1870년대부터 형성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항일 무장투쟁을 시도하였고 이를 탄압하는 일제의 침략이 지속되었다.
1914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간도국민회 (間島國民會)
1914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간도협약은 1909년 9월 4일 일본과 청국이 간도에 관해 체결한 협약이다. 청나라는 간도 지역을 자국의 발상지라 하여 봉금지역으로 선포하고 이주를 엄금했다. 이후 간도 지역은 불모지로 변했고 국경상의 경계도 모호해지면서 많은 외교적 문제를 낳았다. 이에 조선과 청은 1712년 국경문제를 확정하는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했으나 ‘동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는 것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 분쟁의 여지를 남겼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간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인정하던 일본은 남만주 철도부설권 등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국에 넘기는 협약을 불법적으로 체결했다.
간도협약 (間島協約)
간도협약은 1909년 9월 4일 일본과 청국이 간도에 관해 체결한 협약이다. 청나라는 간도 지역을 자국의 발상지라 하여 봉금지역으로 선포하고 이주를 엄금했다. 이후 간도 지역은 불모지로 변했고 국경상의 경계도 모호해지면서 많은 외교적 문제를 낳았다. 이에 조선과 청은 1712년 국경문제를 확정하는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했으나 ‘동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한다’는 것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 분쟁의 여지를 남겼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간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인정하던 일본은 남만주 철도부설권 등을 얻는 대가로 간도를 청국에 넘기는 협약을 불법적으로 체결했다.
간도교육자대회는 1920년대 간도 지역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자들의 모임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잃지 않기 위해 민족교육기관 교육자들이 전 간도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육회를 활용하여 민족운동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지만 민족교육기관의 지속적인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간도교육자대회 (間島敎育者大會)
간도교육자대회는 1920년대 간도 지역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자들의 모임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잃지 않기 위해 민족교육기관 교육자들이 전 간도 지역에 산재해 있는 교육회를 활용하여 민족운동을 실시하고자 한 것이다.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일제의 방해로 중단되었지만 민족교육기관의 지속적인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 서전의숙, 명동서숙, 명동여학교 등을 설립하였으며, 간민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김약연 (金躍淵)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 서전의숙, 명동서숙, 명동여학교 등을 설립하였으며, 간민회 회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마준은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과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검거된 후 옥중에서 변절하면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 특무로 활동하였다.
마준 (馬駿)
마준은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과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검거된 후 옥중에서 변절하면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 특무로 활동하였다.
김철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김철의 인적 사항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김철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기는 1928년도이다. 그는 ‘세린하(細麟河) 동포참살사건 대책강구발기회’에서 한인을 조직하였고, ‘제2차 간도공산당 검거사건’을 피하였으며, 1930년에 만주에서 일어난 반제반봉건 투쟁에 참여하였다.
김철 (金喆)
김철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김철의 인적 사항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김철의 활동이 두드러진 시기는 1928년도이다. 그는 ‘세린하(細麟河) 동포참살사건 대책강구발기회’에서 한인을 조직하였고, ‘제2차 간도공산당 검거사건’을 피하였으며, 1930년에 만주에서 일어난 반제반봉건 투쟁에 참여하였다.
민생단은 1932년 간도에서 한인의 지도기관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표방하였던 친일 단체이다. 조병상, 박석윤, 이량, 김동환 4인이 단체 결성을 주도하여 한상우를 부단장으로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1932년 7월 14일 사실상 해체 상태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간도에 사는 한인의 공민권 획득과 특별자치구 설립 청원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한인의 생활 안정과 낙토 건설을 표방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항일 무장대오를 토벌하기 위해 간도 파견대를 출동시켰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등 실제로는 반공·친일 활동에 주력했다.
민생단 (民生團)
민생단은 1932년 간도에서 한인의 지도기관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표방하였던 친일 단체이다. 조병상, 박석윤, 이량, 김동환 4인이 단체 결성을 주도하여 한상우를 부단장으로 정식 출범하게 되었다. 1932년 7월 14일 사실상 해체 상태에 이를 때까지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했다. 간도에 사는 한인의 공민권 획득과 특별자치구 설립 청원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한인의 생활 안정과 낙토 건설을 표방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항일 무장대오를 토벌하기 위해 간도 파견대를 출동시켰을 때 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등 실제로는 반공·친일 활동에 주력했다.
일제강점기 간도노회초대노회장, 국민회 분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독립운동가.
김내범 (金迺範)
일제강점기 간도노회초대노회장, 국민회 분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리에 있는 군도이다. 만재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섬들을 묶어서 부르는 용어이다. 만재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인도서이며, 주민의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목포에서 흑산도-가거도를 거쳐 운항되는 여객선이 유일한 교통편이었으나, 2021년 만재도항이 새롭게 완공되면서 목포-만재도간 직항노선이 개통되었다.
소중간군도 (小中間群島)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리에 있는 군도이다. 만재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섬들을 묶어서 부르는 용어이다. 만재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인도서이며, 주민의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목포에서 흑산도-가거도를 거쳐 운항되는 여객선이 유일한 교통편이었으나, 2021년 만재도항이 새롭게 완공되면서 목포-만재도간 직항노선이 개통되었다.
「새벽」은 안수길(安壽吉)이 지은 단편소설이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간도로 건너간 조선 이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그렸다. 1935년에 집필 당시의 제목은 ‘호가(胡哥)네 지팡’이었으나, 1940년 재만 조선인(在滿朝鮮人)의 작품집인 『싹트는 대지(大地)』에 ‘새벽’으로 개재되어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가족의 일원인 소년 '나'의 시점으로 조선 이주민들의 비극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간도 이주민 여성의 삶을 종속적인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새벽
「새벽」은 안수길(安壽吉)이 지은 단편소설이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간도로 건너간 조선 이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그렸다. 1935년에 집필 당시의 제목은 ‘호가(胡哥)네 지팡’이었으나, 1940년 재만 조선인(在滿朝鮮人)의 작품집인 『싹트는 대지(大地)』에 ‘새벽’으로 개재되어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가족의 일원인 소년 '나'의 시점으로 조선 이주민들의 비극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간도 이주민 여성의 삶을 종속적인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서상용(徐相庸, 1873~1961)은 중광단, 대한국민회, 간남부총판부 등 간도의 민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종교인으로서 중광단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이후에는 북간도 동포들이 조직한 대한국민회의 제1중부지방 회장대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간남북총판부 산하 간남부총판부의 참사로 활동하였다.
서상용 (徐相庸)
서상용(徐相庸, 1873~1961)은 중광단, 대한국민회, 간남부총판부 등 간도의 민족운동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종교인으로서 중광단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이후에는 북간도 동포들이 조직한 대한국민회의 제1중부지방 회장대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 간남북총판부 산하 간남부총판부의 참사로 활동하였다.
이순은 일제강점기 만주고려공산청년회(고려공청) 집행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집행위원 등으로 활약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고려공청과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중요한 인물로 활약하다가 1928년 하반기 모스크바에 유학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유학한 후 국내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이순 (李淳)
이순은 일제강점기 만주고려공산청년회(고려공청) 집행위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집행위원 등으로 활약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고려공청과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중요한 인물로 활약하다가 1928년 하반기 모스크바에 유학해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유학한 후 국내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당 만주지방위원회 책임비서, 중국공산당 연변특별지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주건 (朱健)
일제강점기 고려공산당 만주지방위원회 책임비서, 중국공산당 연변특별지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단 등을 조직하였으며, 상해임시정부 동만주 총판부 참사, 국민회군 지휘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명순 (李明淳)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회, 대한독립군단 등을 조직하였으며, 상해임시정부 동만주 총판부 참사, 국민회군 지휘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대한광복단 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한 의병장·독립운동가.
이범윤 (李範允)
일제강점기 때,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대한광복단 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한 의병장·독립운동가.
일본군이 재만한인을 학살한 사건.
혼춘참변 (琿春慘變)
일본군이 재만한인을 학살한 사건.
「탈출기」는 1925년 3월, 최서해가 『조선문단』에 발표한 서간체 단편소설이다. 최서해의 대표작으로 만주에 이주한 조선인이 겪는 빈궁과 고난을 그려내 신경향파 문학의 출현을 알렸던 소설이다. 가난과 핍박의 체험을 생생하게 고백하는 서간체로 쓰였으며 진정성에 기반해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가 토로한 체험의 서사는 가난과 빈궁에 허덕이는 조선 사회를 적실하게 드러냈으며 평등 지향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프로문학을 추동하기도 했다. 계몽주의와 자연주의가 주류를 형성해 가던 조선문단에 새로운 충격을 던졌다.
탈출기 (脫出記)
「탈출기」는 1925년 3월, 최서해가 『조선문단』에 발표한 서간체 단편소설이다. 최서해의 대표작으로 만주에 이주한 조선인이 겪는 빈궁과 고난을 그려내 신경향파 문학의 출현을 알렸던 소설이다. 가난과 핍박의 체험을 생생하게 고백하는 서간체로 쓰였으며 진정성에 기반해 그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가 토로한 체험의 서사는 가난과 빈궁에 허덕이는 조선 사회를 적실하게 드러냈으며 평등 지향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프로문학을 추동하기도 했다. 계몽주의와 자연주의가 주류를 형성해 가던 조선문단에 새로운 충격을 던졌다.
홍범도는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68년(고종 5)에 태어나 1943년에 사망했다.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일본 수비대를 격파하였고 1910년 포수단(砲手團)을 조직하여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대한독립군을 창설하였다. 1920년 봉오동에서 일본군 대부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고,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어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여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홍범도 (洪範圖)
홍범도는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68년(고종 5)에 태어나 1943년에 사망했다. 1907년 의병을 일으켜 일본 수비대를 격파하였고 1910년 포수단(砲手團)을 조직하여 독립군 양성에 진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대한독립군을 창설하였다. 1920년 봉오동에서 일본군 대부대를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고,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어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여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장시우는 해방 이후 북조선 소비조합 초대 위원장,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상업국장,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로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장주련이고, 심혁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간도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광복 이전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노동운동,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가담 등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47년 북조선인민위원회 상업국장을, 1948년 북한의 제1차 내각 때 상업상을 지냈다. 1953년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종파사건에 연루되어 김일성 일파에 의해 숙청되었다.
장시우 (張時雨)
장시우는 해방 이후 북조선 소비조합 초대 위원장,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상업국장,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로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장주련이고, 심혁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간도국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광복 이전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노동운동,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가담 등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1947년 북조선인민위원회 상업국장을, 1948년 북한의 제1차 내각 때 상업상을 지냈다. 1953년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종파사건에 연루되어 김일성 일파에 의해 숙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