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견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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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견훤산성 (甄萱山城)
견훤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장바위산에 있는 석축 산성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쌓은 성이라 하지만 협축식으로 쌓은 정교한 체성벽과 높은 내벽, 보축 성벽, 현문식 성문 등 초기 신라 산성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650m이며 성벽의 높이는 최대 15m에 달한다. 5세기 말경에 처음 축성되었으며, 통일신라 시기에 수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53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전투는 후삼국시대 고창군에서 경순왕 4년(930년)에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고창군은 현재 안동 지역으로 고려와 후백제의 격전지였다. 이미 공산전투에서 고려에 대승을 거둔 후백제 견훤은 고창군까지 도달하여 고려 왕건과 싸웠으나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왕건의 승리는 고창군 재지호족의 적극적 협조로 가능하였다. 패배한 후백제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인근 고을과 동해안 일대 성주가 고려에 귀부하였고 고창군은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고창전투 (古昌戰鬪)
고창전투는 후삼국시대 고창군에서 경순왕 4년(930년)에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고려가 대승을 거두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고창군은 현재 안동 지역으로 고려와 후백제의 격전지였다. 이미 공산전투에서 고려에 대승을 거둔 후백제 견훤은 고창군까지 도달하여 고려 왕건과 싸웠으나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왕건의 승리는 고창군 재지호족의 적극적 협조로 가능하였다. 패배한 후백제는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인근 고을과 동해안 일대 성주가 고려에 귀부하였고 고창군은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후비.
동산원부인 (東山院夫人)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후비.
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공산전투 (公山戰鬪)
927년(고려 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일대에서 후백제견훤(甄萱)과 태조 왕건(王建)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공직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에게 귀부한 호족이다. 신라 말에 매곡현의 본읍 장군으로 있다가 궁예에게 귀부하였는데, 왕건의 고려 건국 직후에 발생한 임춘길의 모반사건을 계기로 후백제에 귀부하여 견훤의 심복이 되었다. 그러나 왕건이 견훤을 상대로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932년(태조 15)에 그는 다시 고려에 귀부하여 대상에 임명되었으며, 백성군의 녹읍과 마구간의 말 3필 등을 하사받았다.
공직 (龔直)
공직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에게 귀부한 호족이다. 신라 말에 매곡현의 본읍 장군으로 있다가 궁예에게 귀부하였는데, 왕건의 고려 건국 직후에 발생한 임춘길의 모반사건을 계기로 후백제에 귀부하여 견훤의 심복이 되었다. 그러나 왕건이 견훤을 상대로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932년(태조 15)에 그는 다시 고려에 귀부하여 대상에 임명되었으며, 백성군의 녹읍과 마구간의 말 3필 등을 하사받았다.
고려전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헌한 장수.
박영규 (朴英規)
고려전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헌한 장수.
남북국시대 때, 시중, 대장군, 대상 등을 역임한 무신.
강공훤 (康公萱)
남북국시대 때, 시중, 대장군, 대상 등을 역임한 무신.
경보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초 국왕들이 스승으로 공경한 승려이다. 그는 백계산 승려 도선의 제자였고 중국에 가서 구법을 행한 뒤 귀국하여서는 후백제 견훤의 공경을 받았다. 후에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하고 태조를 비롯하여 3대 정종에 이르기까지 고려 국왕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입적하여서는 통진대사로 추증되었다.
경보 (慶甫)
경보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초 국왕들이 스승으로 공경한 승려이다. 그는 백계산 승려 도선의 제자였고 중국에 가서 구법을 행한 뒤 귀국하여서는 후백제 견훤의 공경을 받았다. 후에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일하고 태조를 비롯하여 3대 정종에 이르기까지 고려 국왕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입적하여서는 통진대사로 추증되었다.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제2왕비.
문성왕후 (文成王后)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제2왕비.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옛 지명.
문소 (聞韶)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옛 지명.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경순왕 (敬順王)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5대 경애왕의 능. 왕릉.
경애왕릉 (景哀王陵)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5대 경애왕의 능. 왕릉.
금성전투(錦城戰鬪)는 후삼국 시기에 전라도 나주 일원에서 마진(태봉 · 고려)과 후백제가 격돌하였던 전투이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나주 회진을 비롯한 중요한 항구가 있었다.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궁예와 그를 이은 왕건과 견훤이 격돌하였다.
금성전투 (錦城戰鬪)
금성전투(錦城戰鬪)는 후삼국 시기에 전라도 나주 일원에서 마진(태봉 · 고려)과 후백제가 격돌하였던 전투이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은 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나주 회진을 비롯한 중요한 항구가 있었다. 이곳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궁예와 그를 이은 왕건과 견훤이 격돌하였다.
신라의 제24대 진흥왕의 셋째 아들이자 후백제 견훤의 고조부로 『이제가기』에 기록된 왕족.
구륜공 (仇輪公)
신라의 제24대 진흥왕의 셋째 아들이자 후백제 견훤의 고조부로 『이제가기』에 기록된 왕족.
고려전기 나주에서 유금필, 충질 등과 견훤의 고려 투항을 인솔한 관리.
능선 (能宣)
고려전기 나주에서 유금필, 충질 등과 견훤의 고려 투항을 인솔한 관리.
남북국시대 때, 후백제의 왕인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넷째 아들 금강을 살해한 관리.
능환 (能奐)
남북국시대 때, 후백제의 왕인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넷째 아들 금강을 살해한 관리.
민합은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처음으로 파견하였던 사신이다. 왕건이 918년 6월에 고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자, 견훤은 2개월 뒤인 8월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민합을 파견하였다. 이때 고려 태조는 광평시랑 한신일을 감미현까지 보내어 민합을 영접하게 하였고, 자신도 대중전에 임어하여 직접 그의 축하를 받는 등 두터운 예로써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민합 (閔郃)
민합은 남북국시대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태조에게 처음으로 파견하였던 사신이다. 왕건이 918년 6월에 고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자, 견훤은 2개월 뒤인 8월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민합을 파견하였다. 이때 고려 태조는 광평시랑 한신일을 감미현까지 보내어 민합을 영접하게 하였고, 자신도 대중전에 임어하여 직접 그의 축하를 받는 등 두터운 예로써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김홍술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진보성 성주 및 의성부 성주를 역임한 장군이다. 그는 신라 말에 진보성주 장군으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가 922년(태조 5)에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29년(태조 12)에 의성부의 성주 장군으로 있다가 후백제의 견훤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후에는 의성의 지역민들에 의해 성황신으로 받들어졌다.
김홍술 (金洪術)
김홍술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진보성 성주 및 의성부 성주를 역임한 장군이다. 그는 신라 말에 진보성주 장군으로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가 922년(태조 5)에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29년(태조 12)에 의성부의 성주 장군으로 있다가 후백제의 견훤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후에는 의성의 지역민들에 의해 성황신으로 받들어졌다.
신숭겸은 고려 초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장수이다. 918년에 홍유·배현경·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927년에 신라 왕경까지 쳐들어가서 경애왕을 시해하고 약탈을 일삼자, 왕건은 친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숭겸은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처지에 빠진 왕건을 대신해서 싸우다가 원보 김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신숭겸 (申崇謙)
신숭겸은 고려 초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장수이다. 918년에 홍유·배현경·복지겸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927년에 신라 왕경까지 쳐들어가서 경애왕을 시해하고 약탈을 일삼자, 왕건은 친히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에 맞서 싸웠다. 이 싸움에서 신숭겸은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한 처지에 빠진 왕건을 대신해서 싸우다가 원보 김락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산성.
나주 자미산성 (羅州 紫薇山城)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 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