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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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金剛經)』은 대승불교 초기의 공(空) 사상을 담고 있는 반야 계통의 경전이다. 대략 2세기 무렵 인도에서 성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불교 유입 초기에 전래되었다.
금강경 (金剛經)
『금강경(金剛經)』은 대승불교 초기의 공(空) 사상을 담고 있는 반야 계통의 경전이다. 대략 2세기 무렵 인도에서 성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의 불교 유입 초기에 전래되었다.
『금강경찬(金剛經贊)』은 진각 혜심(眞覺慧諶, 1178~1234)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찬탄하고 주석을 붙인 책이다. 서문과 찬(賛) 및 그에 대한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강경』을 수지(受持)·독송(讀誦)하는 사람이 받는 복덕을 서술하고 있다.
금강경찬 (金剛經贊)
『금강경찬(金剛經贊)』은 진각 혜심(眞覺慧諶, 1178~1234)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찬탄하고 주석을 붙인 책이다. 서문과 찬(賛) 및 그에 대한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금강경』을 수지(受持)·독송(讀誦)하는 사람이 받는 복덕을 서술하고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수계를 위해 설립한 의례 공간인 계단을 가리킨다. '금강'이란 계율이 금강처럼 굳건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율장에 따르면 규정에 따라 여법하게 만들어진 계단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비구들의 심사와 증명을 거치고 250여 개의 율의조문을 수지할 것을 맹세함으로써 비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계단은 불교의 전파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금강계단 (金剛戒壇)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수계를 위해 설립한 의례 공간인 계단을 가리킨다. '금강'이란 계율이 금강처럼 굳건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율장에 따르면 규정에 따라 여법하게 만들어진 계단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비구들의 심사와 증명을 거치고 250여 개의 율의조문을 수지할 것을 맹세함으로써 비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계단은 불교의 전파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고려후기 승려 혜정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을 해석하여 1378년에 간행한 주석서. 불교서.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 (金剛般若經疏論纂要助顯錄)
고려후기 승려 혜정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을 해석하여 1378년에 간행한 주석서. 불교서.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은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에 대한 통일신라 승려 원효(元曉, 617-686)의 주석서이다. 『금강삼매경』에 대한 현존 최초의 주석서이자 『기신론소(起信論疏)』와 함께 원효의 사상을 대표하는 2대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은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에 대한 통일신라 승려 원효(元曉, 617-686)의 주석서이다. 『금강삼매경』에 대한 현존 최초의 주석서이자 『기신론소(起信論疏)』와 함께 원효의 사상을 대표하는 2대 저술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후기 문신 김이익이 유배생활 중에 저술한 시조 50수를 수록한 시조집.
금강영언록 (金剛永言錄)
조선후기 문신 김이익이 유배생활 중에 저술한 시조 50수를 수록한 시조집.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보래산 아래쪽에 있는 조선전기 김복항이 세웠다고 전하는 팔작지붕 형태의 누정. 정자.
금강정 (錦江停)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보래산 아래쪽에 있는 조선전기 김복항이 세웠다고 전하는 팔작지붕 형태의 누정. 정자.
금강 하굿둑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와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를 잇는 하굿둑이다. 1983년 12월에 착공되어 1990년 11월에 완공되었다. 금강 하굿둑 위로는 4차선의 차도와 좌우 인도가 구분되어 있으며, 2007년부터 장항선 철도가 개설되었다. 담수호로 1억 3800만 톤의 물을 저수하여 유역의 430㎢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전주 · 익산 · 김제 · 군산과 부여 · 서천 등지에 공업용수도 공급한다. 금강 하굿둑 개설로 두 지역 간의 교통 연계와 관광자원 개발 등의 효과도 얻게 되었다.
금강 하굿둑 (錦江 河口둑)
금강 하굿둑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와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를 잇는 하굿둑이다. 1983년 12월에 착공되어 1990년 11월에 완공되었다. 금강 하굿둑 위로는 4차선의 차도와 좌우 인도가 구분되어 있으며, 2007년부터 장항선 철도가 개설되었다. 담수호로 1억 3800만 톤의 물을 저수하여 유역의 430㎢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전주 · 익산 · 김제 · 군산과 부여 · 서천 등지에 공업용수도 공급한다. 금강 하굿둑 개설로 두 지역 간의 교통 연계와 관광자원 개발 등의 효과도 얻게 되었다.
북한 강원도 금강군 장연사터에 있는 삼국시대 3층 석조 불탑.
금강산 장연사 삼층석탑 (金剛山 長淵寺 三層石塔)
북한 강원도 금강군 장연사터에 있는 삼국시대 3층 석조 불탑.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남리에 소재한 공립수목원.
금강수목원 (錦江樹木園)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남리에 소재한 공립수목원.
호법신인 금강신을 형상화한 불화.
금강도 (金剛圖)
호법신인 금강신을 형상화한 불화.
금강전도십이곡병은 조선 후기의 12폭 채색 금강전도 병풍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각 폭 세로 131.5㎝, 가로 28. 2㎝이다. 각 폭 그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동해의 모습이, 좌측 끝에는 암봉 7개가 그려져 있다. 중간 부분에는 외금강의 봉우리와 전망대가 솟아 있으며, 그 위로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월출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내금강 위주의 전도 형식이 아닌, 외금강 지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병풍의 규모, 형태, 세련된 채색 기법 등으로 볼 때, 도화서 화원이 그린 장식용 병풍이었음은 확실하다.
금강전도십이곡병 (金剛全圖十二曲屛)
금강전도십이곡병은 조선 후기의 12폭 채색 금강전도 병풍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각 폭 세로 131.5㎝, 가로 28. 2㎝이다. 각 폭 그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의 하단에는 동해의 모습이, 좌측 끝에는 암봉 7개가 그려져 있다. 중간 부분에는 외금강의 봉우리와 전망대가 솟아 있으며, 그 위로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월출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 있다. 내금강 위주의 전도 형식이 아닌, 외금강 지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병풍의 규모, 형태, 세련된 채색 기법 등으로 볼 때, 도화서 화원이 그린 장식용 병풍이었음은 확실하다.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를 연결하는 다리.
금강대교 (錦江大橋)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옥포리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를 연결하는 다리.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월로에 있는 사립대학교.
금강대학교 (金剛大學校)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월로에 있는 사립대학교.
『금강반야바라밀경』은 1415년(태종 15)에 간행된 목판본 불경이다. 범어사 도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을 설(說)한 대승 경전으로 목판본 1책이다. 이 불경의 권말에 발원문, 간기, 왕실축원문, 시주질, 각자, 화주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불경 간행의 역사성이 뚜렷하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9월 7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은 1415년(태종 15)에 간행된 목판본 불경이다. 범어사 도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을 설(說)한 대승 경전으로 목판본 1책이다. 이 불경의 권말에 발원문, 간기, 왕실축원문, 시주질, 각자, 화주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불경 간행의 역사성이 뚜렷하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9월 7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금강제화(金剛製靴)는 1954년에 서울에서 설립된 신발 전문 제조 회사이다. 1954년에 금강제화산업사로 출발해서 1969년에는 금강제화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하였다. 금강제화는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의류 사업부를 신설하는 한편, 한국제화 기술연구소 설립 등 R&D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 제화 산업을 수제화 위주의 시장에서 기성화 시장으로 전환시키고 고부가 가치의 패션 사업으로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금강제화 (金剛製靴)
금강제화(金剛製靴)는 1954년에 서울에서 설립된 신발 전문 제조 회사이다. 1954년에 금강제화산업사로 출발해서 1969년에는 금강제화 주식회사로 법인 전환하였다. 금강제화는 해외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의류 사업부를 신설하는 한편, 한국제화 기술연구소 설립 등 R&D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 제화 산업을 수제화 위주의 시장에서 기성화 시장으로 전환시키고 고부가 가치의 패션 사업으로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선 필 「금강전도」는 1734년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금강전도’와 ‘겸재’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 ‘겸재’라고 새긴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갑인동제'라는 관기와 함께 제화시가 적혀 있다. 정선은 「금강전도」에서 비로봉을 비롯한 내금강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표현하여 산세를 원형으로 배치했다. 이러한 구도는 그가 총도나 전경도 형식의 금강산을 그릴 때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정선 필 금강전도 (鄭敾 筆 金剛全圖)
정선 필 「금강전도」는 1734년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금강전도’와 ‘겸재’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 ‘겸재’라고 새긴 백문방인이 찍혀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갑인동제'라는 관기와 함께 제화시가 적혀 있다. 정선은 「금강전도」에서 비로봉을 비롯한 내금강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표현하여 산세를 원형으로 배치했다. 이러한 구도는 그가 총도나 전경도 형식의 금강산을 그릴 때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다.
범망경·금강반야바라밀경 합본은 1387년, 진원군 유구와 진천군 강인부가 왕비에게 청하여 판각한 불경이다. 정식명칭은 '범망경 및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후진의 구마라즙이 한역한 두 경전을 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경전의 원문에 천로가 지은 게송이 첨부되어 있고, 말미에 기록된 발문에 의거해 1387년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범망경에는 어떠한 간행 기록이나 발문도 없어 상세한 확인이 어렵지만 두 경전이 한 책으로 묶여있고, 같은 닥종이의 질감을 지니고 있어 같은 시대에 인경한 것으로 보인다.
범망경·금강반야바라밀경 합본 (梵網經·金剛般若波羅密經 合本)
범망경·금강반야바라밀경 합본은 1387년, 진원군 유구와 진천군 강인부가 왕비에게 청하여 판각한 불경이다. 정식명칭은 '범망경 및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후진의 구마라즙이 한역한 두 경전을 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경전의 원문에 천로가 지은 게송이 첨부되어 있고, 말미에 기록된 발문에 의거해 1387년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범망경에는 어떠한 간행 기록이나 발문도 없어 상세한 확인이 어렵지만 두 경전이 한 책으로 묶여있고, 같은 닥종이의 질감을 지니고 있어 같은 시대에 인경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출신 역경승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을 금분(金粉)으로 필사한 불교경전. 금자병풍.
금니 금강경 (金泥 金剛經)
인도출신 역경승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을 금분(金粉)으로 필사한 불교경전. 금자병풍.
일본 오사카에 있는 초·중·고등과정의 한국학교.
오사카금강학교 (大阪金剛學校)
일본 오사카에 있는 초·중·고등과정의 한국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