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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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문인화.
김정희 필 세한도 (金正喜 筆 歲寒圖)
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문인화.
김정희 필 「대팽고회」는 김정희가 가족과의 단란한 일상의 소중함을 표현한 두 폭의 예서 대련이다. 김정희가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에 쓴 대련이다. 김정희의 문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치욱에게 써 준 글씨로, 가족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이상적인 최고의 경지임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정희 필 대팽고회 (金正喜 筆 大烹高會)
김정희 필 「대팽고회」는 김정희가 가족과의 단란한 일상의 소중함을 표현한 두 폭의 예서 대련이다. 김정희가 생애 마지막 해인 1856년에 쓴 대련이다. 김정희의 문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치욱에게 써 준 글씨로, 가족과 지내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이상적인 최고의 경지임을 표현한 작품이다.
김정희 필 「차호호공」은 조선 후기, 김정희가 예서 필법으로 쓴 두 폭의 대련이다. 김정희가 동한시대 촉지방의 마애각석에 새겨진 예서의 필법으로 쓴 작품이다. 동인 이근수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되며, 한예의 고졸함을 추구했던 김정희의 예술적 경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정희 필 차호호공 (金正喜 筆 且呼好共)
김정희 필 「차호호공」은 조선 후기, 김정희가 예서 필법으로 쓴 두 폭의 대련이다. 김정희가 동한시대 촉지방의 마애각석에 새겨진 예서의 필법으로 쓴 작품이다. 동인 이근수에게 써 준 글씨로 추정되며, 한예의 고졸함을 추구했던 김정희의 예술적 경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정희 필 「침계」는 조선 후기, 김정희가 윤정현의 호 ‘침계’를 가로로 길게 쓴 글씨이다.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쓴 글씨로, 금석학에 정통했던 김정희의 학자로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관지도 함께 써 놓아 윤정현에게 이 글씨를 써서 준 배경을 알 수 있다.
김정희 필 침계 (金正喜 筆 梣溪)
김정희 필 「침계」는 조선 후기, 김정희가 윤정현의 호 ‘침계’를 가로로 길게 쓴 글씨이다.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쓴 글씨로, 금석학에 정통했던 김정희의 학자로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관지도 함께 써 놓아 윤정현에게 이 글씨를 써서 준 배경을 알 수 있다.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김정희가 이광사의 서예 이론서 『서결』의 내용을 반박한 행서 서첩이다. 이광사의 『서결』 중 모두 9가지 내용을 들어 비판했으며, 마지막에는 운필법과 당비의 선행 학습을 통해 왕희지 고법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 (金正喜 筆 書員嶠筆訣後)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김정희가 이광사의 서예 이론서 『서결』의 내용을 반박한 행서 서첩이다. 이광사의 『서결』 중 모두 9가지 내용을 들어 비판했으며, 마지막에는 운필법과 당비의 선행 학습을 통해 왕희지 고법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김정희 필 『난맹첩』은 조선 후기, 김정희의 묵란화 16점과 제발 글씨 6점을 모아 놓은 서화첩이다.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 유명훈에게 주기 위해 제작하였다. 김정희 자신이 난법을 익혀온 연원과 요체를 서술하여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김정희 필 난맹첩 (金正喜 筆 蘭盟帖)
김정희 필 『난맹첩』은 조선 후기, 김정희의 묵란화 16점과 제발 글씨 6점을 모아 놓은 서화첩이다.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 유명훈에게 주기 위해 제작하였다. 김정희 자신이 난법을 익혀온 연원과 요체를 서술하여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추사 김정희 서신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가 동생 김명희 · 김상희와 민태호 등 주변 인물에게 보낸 편지 모음이다. 추사 연구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후지츠카 치카시가 수집한 김정희 관련 자료 가운데 과천시에 기증된 23점의 편지이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로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 13점과 과천에 머물던 시기에 민태호, 이상적,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 10점으로 구분된다.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는 가장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시기에 쓴 편지이다. 주변 인물에게 보낸 편지에는 과천에서 보낸 말년의 삶과 그가 평생 추구한 서예미라는 형식의 정중함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추사 김정희 서신 (秋史 金正喜 書信)
추사 김정희 서신은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가 동생 김명희 · 김상희와 민태호 등 주변 인물에게 보낸 편지 모음이다. 추사 연구의 개척자로 평가되는 후지츠카 치카시가 수집한 김정희 관련 자료 가운데 과천시에 기증된 23점의 편지이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자료로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 13점과 과천에 머물던 시기에 민태호, 이상적,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 10점으로 구분된다.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는 가장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시기에 쓴 편지이다. 주변 인물에게 보낸 편지에는 과천에서 보낸 말년의 삶과 그가 평생 추구한 서예미라는 형식의 정중함 등이 잘 나타나 있다.
골동품은 오래되고 유서 깊은 서화와 각종 기물로서 희소적·미술적 가치를 지닌 물품이다. 현재에는 고미술품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골동품을 수집하고 완상하는 풍조는 조선 후기에 실학파 문인들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이들은 골동품을 선인들의 고아한 운치가 깃든 것으로 여기며 미적으로 감상하였다. 1905년을 전후하여 골동품이 경제적 이익 추구의 대상으로 변질되며 도굴과 위조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골동품 수집가는 전형필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유산을 수호하려는 차원에서 대규모로 골동품을 수집했다.
골동품 (骨董品)
골동품은 오래되고 유서 깊은 서화와 각종 기물로서 희소적·미술적 가치를 지닌 물품이다. 현재에는 고미술품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골동품을 수집하고 완상하는 풍조는 조선 후기에 실학파 문인들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이들은 골동품을 선인들의 고아한 운치가 깃든 것으로 여기며 미적으로 감상하였다. 1905년을 전후하여 골동품이 경제적 이익 추구의 대상으로 변질되며 도굴과 위조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골동품 수집가는 전형필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유산을 수호하려는 차원에서 대규모로 골동품을 수집했다.
조선 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권돈인 (權敦仁)
조선 후기에,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사군자의 하나인 난초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묵란 (墨蘭)
사군자의 하나인 난초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문인화는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 사대부들이 여기로 그린 그림이다. 중국 북송시대에 소식 등이 사대부의 그림은 신분적·교양적 차이로 인해 화공의 그림과 차이가 난다는 사대부 화론을 제창한 이후로 문인화라는 개념이 정착되었다. 이후 명나라 때에는 남종화를 문인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기법에 얽매이거나 세부 묘사에 치중하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내적인 면을 표현하는 사의를 중시하며, 그림에 기교가 나타나지 않도록 치졸한 맛을 살려 그림으로써 천진함을 강조하는 특징을 갖는다. 수묵산수화와 사군자가 주요 소재였으며 대체로 시 형식의 화제를 곁들이는 경향이 있다.
문인화 (文人畵)
문인화는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 사대부들이 여기로 그린 그림이다. 중국 북송시대에 소식 등이 사대부의 그림은 신분적·교양적 차이로 인해 화공의 그림과 차이가 난다는 사대부 화론을 제창한 이후로 문인화라는 개념이 정착되었다. 이후 명나라 때에는 남종화를 문인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기법에 얽매이거나 세부 묘사에 치중하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내적인 면을 표현하는 사의를 중시하며, 그림에 기교가 나타나지 않도록 치졸한 맛을 살려 그림으로써 천진함을 강조하는 특징을 갖는다. 수묵산수화와 사군자가 주요 소재였으며 대체로 시 형식의 화제를 곁들이는 경향이 있다.
『방산집』은 조선 후기 처사인 안기원(安基遠, 1825~1896)이 창작한 한시와 두 편의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표제, 권수제, 판심제 모두 동일하게 ‘방산집(方山集)’이다. 1896년 3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방산집 (方山集)
『방산집』은 조선 후기 처사인 안기원(安基遠, 1825~1896)이 창작한 한시와 두 편의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표제, 권수제, 판심제 모두 동일하게 ‘방산집(方山集)’이다. 1896년 3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진봉산(進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통장이 창건한 사찰.
진봉산 망해사 (進鳳山 望海寺)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진봉산(進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통장이 창건한 사찰.
긍선(亙璇, 1767~1852)은 19세기에 초의 의순(草衣意恂)과 선 논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호남의 선승이다. 화엄학의 대가인 설파 상언(雪坡尙彦)에게 교학을 배워 설법을 시작했으며,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이었다. 40대 중반 이후 선 수행에 전념하였고, 선 관련 주석서인 『사기(私記)』를 다수 남겼다. 선 논쟁과 관련해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긍선 (亙璇)
긍선(亙璇, 1767~1852)은 19세기에 초의 의순(草衣意恂)과 선 논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호남의 선승이다. 화엄학의 대가인 설파 상언(雪坡尙彦)에게 교학을 배워 설법을 시작했으며,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이었다. 40대 중반 이후 선 수행에 전념하였고, 선 관련 주석서인 『사기(私記)』를 다수 남겼다. 선 논쟁과 관련해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구암사(龜巖寺)는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도집산(都集山)에 있는 사찰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숭제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392년(태조 1)에 각운(覺雲)이 절을 고쳐 짓고, 구암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임진왜란으로 절이 소실되어 전란 이후에 다시 지었다.
도집산 구암사 (都集山 龜巖寺)
구암사(龜巖寺)는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도집산(都集山)에 있는 사찰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숭제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392년(태조 1)에 각운(覺雲)이 절을 고쳐 짓고, 구암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임진왜란으로 절이 소실되어 전란 이후에 다시 지었다.
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난(蘭) 그림.
부작란도 (不作蘭圖)
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난(蘭) 그림.
『삼봉집』은 조선 후기 승려 화악 지탁(華嶽知濯, 1750~1839)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9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지탁은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이었고 삼각산(북한산) 인근에서 활동하여 별호를 삼봉(三峰)이라 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시와 기문, 서문 등의 산문, 그리고 그와 제자 화담 경화(華潭敬和, 1786∼1848)의 행장, 비문, 영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삼봉집 (三峰集)
『삼봉집』은 조선 후기 승려 화악 지탁(華嶽知濯, 1750~1839)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9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지탁은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이었고 삼각산(북한산) 인근에서 활동하여 별호를 삼봉(三峰)이라 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시와 기문, 서문 등의 산문, 그리고 그와 제자 화담 경화(華潭敬和, 1786∼1848)의 행장, 비문, 영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한산(北漢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관련 비터.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지 (北漢山 眞興王 巡狩碑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한산(北漢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관련 비터.
신해조천의는 1851년(철종 2) 진종(효장세자)의 신주를 종묘에서 영녕전으로 옮기는 문제로 일어났던 예송이다. 헌종이 죽은 뒤 그의 9촌 숙부에 해당하는 철종이 순조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왕위 계승으로 왕실의 호칭 등 전례에 여러 가지 논란이 야기되었다. 특히 철종의 증조부인 진종의 신주를 종묘에서 옮기는 문제와 관련하여 안동 김씨가 주장하는 조천론과 풍양 조씨의 불천론이 대립하였다. 왕실의 종통 체계의 난맥상을 노출하는 가운데 조천론이 승리하면서 안동 김씨가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신해조천의 (辛亥祧遷議)
신해조천의는 1851년(철종 2) 진종(효장세자)의 신주를 종묘에서 영녕전으로 옮기는 문제로 일어났던 예송이다. 헌종이 죽은 뒤 그의 9촌 숙부에 해당하는 철종이 순조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왕위 계승으로 왕실의 호칭 등 전례에 여러 가지 논란이 야기되었다. 특히 철종의 증조부인 진종의 신주를 종묘에서 옮기는 문제와 관련하여 안동 김씨가 주장하는 조천론과 풍양 조씨의 불천론이 대립하였다. 왕실의 종통 체계의 난맥상을 노출하는 가운데 조천론이 승리하면서 안동 김씨가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선운사(禪雲寺)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검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는 사찰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선불장을 열었으며, 1472년부터 10여 년 동안 극유가 크게 중창하였다. 정유재란으로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608년부터 10여 년 동안 중창이 이어졌다. 이후 중건과 중수가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3건의 지장보살상 외에도 다수의 지정문화재(현, 지정문화유산)가 있다.
선운사 (禪雲寺)
선운사(禪雲寺)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산(兜率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검단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는 사찰이다. 후백제의 견훤이 선불장을 열었으며, 1472년부터 10여 년 동안 극유가 크게 중창하였다. 정유재란으로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1608년부터 10여 년 동안 중창이 이어졌다. 이후 중건과 중수가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3건의 지장보살상 외에도 다수의 지정문화재(현, 지정문화유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