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가"
검색결과 총 14건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가교 (駕轎)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능행(陵行) 및 열무(閱武) 참관 등 장거리 행차 때에 사용하던 가마.
도가(導駕)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행차할 때 어가 행렬의 가장 선두에 서는 시위 인원이다. 어가 행렬의 수행 인원 및 의장물의 전체 구성을 노부라고 하며, 행사의 성격 및 장소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가장 높은 등급인 대가 노부에서 도가는 당부주부(當部主簿), 한성부 판윤,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대사헌, 병조 판서, 의금부 당하관 2인으로 구성되었다.
도가 (導駕)
도가(導駕)는 조선시대에 국왕이 행차할 때 어가 행렬의 가장 선두에 서는 시위 인원이다. 어가 행렬의 수행 인원 및 의장물의 전체 구성을 노부라고 하며, 행사의 성격 및 장소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가장 높은 등급인 대가 노부에서 도가는 당부주부(當部主簿), 한성부 판윤,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대사헌, 병조 판서, 의금부 당하관 2인으로 구성되었다.
고려의 제21대 왕, 희종의 셋째 왕자.
경원공 (慶原公)
고려의 제21대 왕, 희종의 셋째 왕자.
조선시대 정3품 하계(下階) 문·무관의 품계.
계궁 (階窮)
조선시대 정3품 하계(下階) 문·무관의 품계.
고구려시대 왕명출납(王命出納) 등의 행정업무를 맡은 관명.
대주부 (大主簿)
고구려시대 왕명출납(王命出納) 등의 행정업무를 맡은 관명.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삼가 고분군 (三嘉 古墳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덧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우보(右輔)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이다. 25년(대무신왕 8) 을두지가 우보로 임명되는 기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166년(신대왕 2) 좌보와 우보를 최고위 관직인 국상으로 개편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우보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왕권과 밀접한 측근 세력이 임명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계루부와 나부 출신의 대표자가 좌보와 우보를 나눠 맡으면서 공동정치 운영방식을 구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보 (右輔)
우보(右輔)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고위 관직이다. 25년(대무신왕 8) 을두지가 우보로 임명되는 기사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166년(신대왕 2) 좌보와 우보를 최고위 관직인 국상으로 개편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우보의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왕권과 밀접한 측근 세력이 임명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계루부와 나부 출신의 대표자가 좌보와 우보를 나눠 맡으면서 공동정치 운영방식을 구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 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식 (李植)
조선 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선인(先人)은 삼국시대, 3세기부터 고구려에 있었던 관등이다. 선인이 설치된 기원은 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7세기에도 총 13등급 관등제의 최하위 관등으로 등장한다. 말기에는 보통 관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 처음 임용되면서 받는 관등이었다.
선인 (先人)
선인(先人)은 삼국시대, 3세기부터 고구려에 있었던 관등이다. 선인이 설치된 기원은 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7세기에도 총 13등급 관등제의 최하위 관등으로 등장한다. 말기에는 보통 관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 처음 임용되면서 받는 관등이었다.
이건창은 개항기 한성부소윤, 안핵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학자이다. 1852년(철종 3)에 태어나 1898년(고종 35)에 사망했다. 5세에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고 불렀는데 15세에 문과로 급제하였다. 강위·김택영·황현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1890년 외국인이 소유권 보호를 명목으로 일으킬 문제를 예견하여 외국인에게 부동산을 매매하지 못하는 금지령을 실시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암행어사와 안핵사로 부임하였을 때 선정을 베풀어 신정비가 각처에 세워졌다. 갑오경장 이후로는 새로운 관제에 의해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이건창 (李建昌)
이건창은 개항기 한성부소윤, 안핵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학자이다. 1852년(철종 3)에 태어나 1898년(고종 35)에 사망했다. 5세에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고 불렀는데 15세에 문과로 급제하였다. 강위·김택영·황현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1890년 외국인이 소유권 보호를 명목으로 일으킬 문제를 예견하여 외국인에게 부동산을 매매하지 못하는 금지령을 실시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암행어사와 안핵사로 부임하였을 때 선정을 베풀어 신정비가 각처에 세워졌다. 갑오경장 이후로는 새로운 관제에 의해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0대 문무왕 관련 대(臺).
이견대 (利見臺)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0대 문무왕 관련 대(臺).
전부고취는 조선시대에 임금 또는 왕비의 공식적인 행차 때 어연(御輦) 앞에서 이동하며 연주한 악대이다. 행차의 규모에 따라 후부고취와 함께 쓰이거나 단독으로 쓰였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박‧피리‧대금‧당적‧퉁소‧당비파‧장고‧해금‧방향‧교방고 등,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편성되었는데, 이중 해금은 조선 전기에는 전부고취에 편성되지 않다가 후기에 추가되었다.
전부고취 (前部鼓吹)
전부고취는 조선시대에 임금 또는 왕비의 공식적인 행차 때 어연(御輦) 앞에서 이동하며 연주한 악대이다. 행차의 규모에 따라 후부고취와 함께 쓰이거나 단독으로 쓰였고,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박‧피리‧대금‧당적‧퉁소‧당비파‧장고‧해금‧방향‧교방고 등,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로 편성되었는데, 이중 해금은 조선 전기에는 전부고취에 편성되지 않다가 후기에 추가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 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진주 옥봉 고분군 (晉州 玉峰 古墳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 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한주학파는 1870년대에 형성된 한주 이진상의 유학을 계승한 철학유파이다. 1860년 이진상이 ‘심즉리’라는 학설을 제창하였다. 허유와 곽종석 등 그의 문인이 심즉리설을 지지하면서 1878년 선석사의 학술모임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퇴계학파 내에서 이황의 학설에 정면 배치되는 학설이라고 비난하였으나 점차 경북 서남부, 경남북동부 등 퇴계학의 중심지로 확산되었다. 균형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실용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만국공법과 외교적 협력을 통한 독립운동을 중시하였다. 1919년에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에 가장 많이 서명한 학파이다.
한주학파 (寒洲學派)
한주학파는 1870년대에 형성된 한주 이진상의 유학을 계승한 철학유파이다. 1860년 이진상이 ‘심즉리’라는 학설을 제창하였다. 허유와 곽종석 등 그의 문인이 심즉리설을 지지하면서 1878년 선석사의 학술모임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퇴계학파 내에서 이황의 학설에 정면 배치되는 학설이라고 비난하였으나 점차 경북 서남부, 경남북동부 등 퇴계학의 중심지로 확산되었다. 균형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실용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만국공법과 외교적 협력을 통한 독립운동을 중시하였다. 1919년에 파리 평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에 가장 많이 서명한 학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