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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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1933년 김약수 주도로 대중과학연구사에서 발행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종합잡지이다. 김약수가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았다. 창간호는 3월 발행되었지만, 일제의 압수로 인해 창간임시호가 4월 1일자로 발행되었다. 월간으로 발행되었으나, 1933년 6월까지 통권 3권까지만 발행되었다.
대중 (大衆)
『대중』은 1933년 김약수 주도로 대중과학연구사에서 발행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종합잡지이다. 김약수가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았다. 창간호는 3월 발행되었지만, 일제의 압수로 인해 창간임시호가 4월 1일자로 발행되었다. 월간으로 발행되었으나, 1933년 6월까지 통권 3권까지만 발행되었다.
근대 이후 대중매체와 상업적 공연을 통해 전달되면서 대중 사이에서 즐겨 불려온 노래. 유행가.
대중가요 (大衆歌謠)
근대 이후 대중매체와 상업적 공연을 통해 전달되면서 대중 사이에서 즐겨 불려온 노래. 유행가.
대중매체에 의해 상품으로 대량 생산, 재생산되어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문화.
대중문화 (大衆文化)
대중매체에 의해 상품으로 대량 생산, 재생산되어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문화.
대중음악은 대중, 매체로 연결된 사람들이 향유하는 호소력 있는 음악이다. 순수음악, 즉 예술음악이 아니어서 특별한 음악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이며,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공동체에 의해 향유되고 해석되는 민속·전통음악이 아니어서 공간의 제약 없이 익명의 대중이 향유하는 음악이다. 그 결과 오락성·상업성·유행성 등의 기본적 특징을 가진다. 20세기에 정착한 대량 생산·매개·소비되는 대량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우리에게 서양음악의 한 갈래로 19세기 말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대중음악은 현재는 K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속에서 환영받고 즐기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대중음악 (大衆音樂)
대중음악은 대중, 매체로 연결된 사람들이 향유하는 호소력 있는 음악이다. 순수음악, 즉 예술음악이 아니어서 특별한 음악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이며,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공동체에 의해 향유되고 해석되는 민속·전통음악이 아니어서 공간의 제약 없이 익명의 대중이 향유하는 음악이다. 그 결과 오락성·상업성·유행성 등의 기본적 특징을 가진다. 20세기에 정착한 대량 생산·매개·소비되는 대량문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우리에게 서양음악의 한 갈래로 19세기 말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대중음악은 현재는 K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속에서 환영받고 즐기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대중공론』은 1930년 2월, 시천교에서 활동하던 신림의 주도로 『조선강단』의 이름을 바꾸어 창간한 월간 잡지이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신림이고, 인쇄인은 이기종이다. 1930년 5월에 간행 예정이었던 통권6호[제2권 4호]는 조선총독부에 압수되어 간행되지 못하였다. 1930년 9월 통권 제8호[제2권 7호]까지 간행하고 중단되었다. 1931년 3월 속간 3호가 조선총독부에 압수되었다고 신문에 보도된 것으로 보아 속간호가 간행된 것으로 보이나, 속간호는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대중공론 (大衆公論)
『대중공론』은 1930년 2월, 시천교에서 활동하던 신림의 주도로 『조선강단』의 이름을 바꾸어 창간한 월간 잡지이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신림이고, 인쇄인은 이기종이다. 1930년 5월에 간행 예정이었던 통권6호[제2권 4호]는 조선총독부에 압수되어 간행되지 못하였다. 1930년 9월 통권 제8호[제2권 7호]까지 간행하고 중단되었다. 1931년 3월 속간 3호가 조선총독부에 압수되었다고 신문에 보도된 것으로 보아 속간호가 간행된 것으로 보이나, 속간호는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회 주관으로 2004년 3월부터 시작된 대중음악 우수작품 선정 및 시상을 목적으로 하는시상식.
한국대중음악상 (韓國大衆音樂賞)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회 주관으로 2004년 3월부터 시작된 대중음악 우수작품 선정 및 시상을 목적으로 하는시상식.
『마도의 향불』은 1932년 11월 5일부터 1933년 6월 12일까지 방인근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대중소설이다. 이 작품은 재미와 통속성을 함께 갖춘 1930년대 전형적인 신문 연재 통속 대중소설이다. 인물 형상화의 전형성과 우연의 남발, 뚜렷한 선악 구도와 권선징악적 결말 등은 작품의 한계이지만, 1930년대의 애정관, 사회관, 윤리관 등과 함께 대중 독자들의 취향을 알 수 있게 해주며, 당시 사회 및 현실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들과 그 원인을 사회 제도나 나아가 식민 현실에서 찾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마도의 향불 (魔都의 香불)
『마도의 향불』은 1932년 11월 5일부터 1933년 6월 12일까지 방인근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대중소설이다. 이 작품은 재미와 통속성을 함께 갖춘 1930년대 전형적인 신문 연재 통속 대중소설이다. 인물 형상화의 전형성과 우연의 남발, 뚜렷한 선악 구도와 권선징악적 결말 등은 작품의 한계이지만, 1930년대의 애정관, 사회관, 윤리관 등과 함께 대중 독자들의 취향을 알 수 있게 해주며, 당시 사회 및 현실이 안고 있던 여러 문제들과 그 원인을 사회 제도나 나아가 식민 현실에서 찾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국왕이 승려를 초청하여 접대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만승회 (萬僧會)
국왕이 승려를 초청하여 접대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차장, 한국독립당 선전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민필호 (閔弼鎬)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차장, 한국독립당 선전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낙종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자와 8·15광복 후 조선정판사 사장을 지낸 사회주의운동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월회 기관지인 『사상운동』의 발행인 겸 편집인, 1926년 『대중신문』의 발행인을 역임하였다. 1927년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비서로 선임되었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1934년 1월 만기 출옥하였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박낙종 (朴洛鍾)
박낙종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자와 8·15광복 후 조선정판사 사장을 지낸 사회주의운동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일월회 기관지인 『사상운동』의 발행인 겸 편집인, 1926년 『대중신문』의 발행인을 역임하였다. 1927년 조선공산당 일본부 책임비서로 선임되었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1934년 1월 만기 출옥하였다.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변희용 (卞熙瑢)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1946년에, 부산에서 박수형 등이 일제강점기의 부산일보를 인수받아 창간한 일간 신문.
부산일보 (釜山日報)
1946년에, 부산에서 박수형 등이 일제강점기의 부산일보를 인수받아 창간한 일간 신문.
유럽 동북부 발트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
리투아니아 (Lithuania)
유럽 동북부 발트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다. 서양에서 문화를 뜻하는 말 culture는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했는데, 정치나 경제, 법과 제도, 문학과 예술, 도덕, 종교, 풍속 등 인간의 모든 산물이 포함되며,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과 상징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화는 담론에 따라 교양으로서의 문화, 진보로서의 문화, 예술 및 정신적 산물로서의 문화,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된다. 문화의 본질적 기능은 사회의 재생산이며 긴 기간을 통해 변동해 가는 특징이 있다.
문화 (文化)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다. 서양에서 문화를 뜻하는 말 culture는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하는 라틴어 cultus에서 유래했는데, 정치나 경제, 법과 제도, 문학과 예술, 도덕, 종교, 풍속 등 인간의 모든 산물이 포함되며,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과 상징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문화는 담론에 따라 교양으로서의 문화, 진보로서의 문화, 예술 및 정신적 산물로서의 문화,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된다. 문화의 본질적 기능은 사회의 재생산이며 긴 기간을 통해 변동해 가는 특징이 있다.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약수 (金若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순애보』는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박계주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매일신보』의 ‘특별문예현상공모’ 당선작으로, 연재 당시는 물론 단행본 출간 후 독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은 명희와 문선, 혜순과 철진 네 명의 연애를 통해서 헌신적이고 숭고한 사랑의 완성을 그려내고 있다. 현실도피적, 상업주의적 대중소설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통속성을 확보하면서도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표방하며 독자에게 낭만적 환상과 위안을 제공하였다.
순애보 (殉愛譜)
『순애보』는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박계주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소설이다. 『매일신보』의 ‘특별문예현상공모’ 당선작으로, 연재 당시는 물론 단행본 출간 후 독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은 명희와 문선, 혜순과 철진 네 명의 연애를 통해서 헌신적이고 숭고한 사랑의 완성을 그려내고 있다. 현실도피적, 상업주의적 대중소설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통속성을 확보하면서도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표방하며 독자에게 낭만적 환상과 위안을 제공하였다.
『승방비곡』은 1927년 5월 10일부터 9월 12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최독견의 장편소설이다. 1920년대 후반 신문사들의 독자 확보 경쟁 속에서 탄생한 저널리즘 기획 문예물인 이 작품은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발표되었다. 연재 지면에 삽화가 아닌 스틸 사진을 싣고, 소설 내용에 대한 독자 ‘현상공모-퀴즈’를 진행하는 등 신문 연재소설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1920년대 후반의 대표적인 대중소설이다.
승방비곡 (僧房悲曲)
『승방비곡』은 1927년 5월 10일부터 9월 12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최독견의 장편소설이다. 1920년대 후반 신문사들의 독자 확보 경쟁 속에서 탄생한 저널리즘 기획 문예물인 이 작품은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발표되었다. 연재 지면에 삽화가 아닌 스틸 사진을 싣고, 소설 내용에 대한 독자 ‘현상공모-퀴즈’를 진행하는 등 신문 연재소설의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1920년대 후반의 대표적인 대중소설이다.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조선농민사 (朝鮮農民社)
1925년 10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농민운동단체.
이우적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와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대중신문』과 『이론투쟁』의 기자이자, 『대중신문』과 『현계단』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 일본부 선전부장과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우적 (李友狄)
이우적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일본부와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대중신문』과 『이론투쟁』의 기자이자, 『대중신문』과 『현계단』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 일본부 선전부장과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최독견은 일제강점기에 「유린」, 「유모」, 「승방비곡」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본명은 최상덕(崔象德)이고,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상하이(上海) 유학생 출신으로 상하이일일신문에서 교정기사로 활동 중 등단하고, 귀국 후 1920년대 프로문학적 성격의 소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1927년 『조선일보』에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연재한 「승방비곡」이다. 대중연재소설 작가의 길을 걷는 동시에 중외일보사, 매일신보사, 평화신문사, 서울신문사 등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최독견 (崔獨鵑)
최독견은 일제강점기에 「유린」, 「유모」, 「승방비곡」 등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본명은 최상덕(崔象德)이고,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상하이(上海) 유학생 출신으로 상하이일일신문에서 교정기사로 활동 중 등단하고, 귀국 후 1920년대 프로문학적 성격의 소설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1927년 『조선일보』에 ‘영화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연재한 「승방비곡」이다. 대중연재소설 작가의 길을 걷는 동시에 중외일보사, 매일신보사, 평화신문사, 서울신문사 등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