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독립군"
검색결과 총 37건
독립군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조직된 독립군들이 지어서 불렀던 노래이다.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의 광복군, 하와이에서 조직된 국민군이 부르던 곡들과 민족청년군가, 학도군가 등을 포함한다.
독립군가 (獨立軍歌)
독립군가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조직된 독립군들이 지어서 불렀던 노래이다.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의 광복군, 하와이에서 조직된 국민군이 부르던 곡들과 민족청년군가, 학도군가 등을 포함한다.
19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졌던 망명 정부.
대한광복군정부 (大韓光復軍政府)
1914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졌던 망명 정부.
1919년 8월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이 함경남도의 갑산·혜산진으로 진출하여 일본군과 벌인 전투.
갑산 혜산진전투 (甲山 惠山津戰鬪)
1919년 8월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이 함경남도의 갑산·혜산진으로 진출하여 일본군과 벌인 전투.
일제강점기 때,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상모 (姜尙模)
일제강점기 때,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4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간도국민회 (間島國民會)
1914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공진원 (公震遠)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군비단 참모장, 대한국민단 군사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찬 (金燦)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군비단 참모장, 대한국민단 군사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경박호전투는 1933년 한국독립군과 길림구국군이 연합해 일본군과 만주국군을 만주의 경박호에서 섬멸한 전투이다. 일제가 만주국을 수립하자 북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 어려워진 한국독립군은 일제에 맞서기 위해 중국 항일의용군인 길림구국군과 연합하였다. 연합부대는 이동하는 길에 우연히 일·만군의 정보를 듣고 경박호에서 매복하였다가 공격하였다. 연합부대는 일·만군 후속부대 1개 대대를 거의 전멸시키고 많은 물품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었다. 경박호전투는 연합부대 최초의 승리로 항일무장 투쟁을 더욱 고양시켰다.
경박호전투 (鏡泊湖戰鬪)
경박호전투는 1933년 한국독립군과 길림구국군이 연합해 일본군과 만주국군을 만주의 경박호에서 섬멸한 전투이다. 일제가 만주국을 수립하자 북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 어려워진 한국독립군은 일제에 맞서기 위해 중국 항일의용군인 길림구국군과 연합하였다. 연합부대는 이동하는 길에 우연히 일·만군의 정보를 듣고 경박호에서 매복하였다가 공격하였다. 연합부대는 일·만군 후속부대 1개 대대를 거의 전멸시키고 많은 물품을 빼앗는 대승을 거두었다. 경박호전투는 연합부대 최초의 승리로 항일무장 투쟁을 더욱 고양시켰다.
경신참변은 1920년 일본군이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3·1운동 이후 활발해진 만주지역 독립군의 국내 위협으로 인한 일제의 재만 독립군 초토화 작전 실패가 발단이 되었다.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무차별 한인 학살 작전을 감행하였다. 마을을 포위 습격해 총이나 창으로 학살했고 부녀자들은 보이는 대로 겁탈하고 살해하였다. 간도 일대에서 학살된 한국인은 1920년 10월 9일부터 11월 5일까지 3,469명으로, 3, 4개월 동안 일본군의 학살로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경신참변 (庚申慘變)
경신참변은 1920년 일본군이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3·1운동 이후 활발해진 만주지역 독립군의 국내 위협으로 인한 일제의 재만 독립군 초토화 작전 실패가 발단이 되었다. 일본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무차별 한인 학살 작전을 감행하였다. 마을을 포위 습격해 총이나 창으로 학살했고 부녀자들은 보이는 대로 겁탈하고 살해하였다. 간도 일대에서 학살된 한국인은 1920년 10월 9일부터 11월 5일까지 3,469명으로, 3, 4개월 동안 일본군의 학살로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낙양군관학교는 1933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에 설립되었던 국민정부 군관학교이다. 1932년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투탄의거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장개석과 김구는 낙양군관학교 내에 한인훈련반이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모집한 한국인 99명이 입학하여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를 편성하였다. 중국식 훈련이 아니라 한국인 교관이 학생의 정치·군사훈련을 담당하였다. 일본 영사의 해산 요구로 1935년 1기생 65명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졸업생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독립군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낙양군관학교 (洛陽軍官學校)
낙양군관학교는 1933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에 설립되었던 국민정부 군관학교이다. 1932년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투탄의거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장개석과 김구는 낙양군관학교 내에 한인훈련반이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모집한 한국인 99명이 입학하여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를 편성하였다. 중국식 훈련이 아니라 한국인 교관이 학생의 정치·군사훈련을 담당하였다. 일본 영사의 해산 요구로 1935년 1기생 65명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졸업생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독립군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연해주에서 대한독립군결사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문창학 (文昌學)
일제강점기 때, 연해주에서 대한독립군결사대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군무도독부 (軍務都督府)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행정 조직.
군무부 (軍務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행정 조직.
1925년 3월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소속 독립군이 만주 집안현(輯安縣) 고마령 산곡에서 평안북도 초산경찰서 경찰대의 기습을 받고 전개한 전투.
고마령전투 (古馬嶺戰鬪)
1925년 3월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소속 독립군이 만주 집안현(輯安縣) 고마령 산곡에서 평안북도 초산경찰서 경찰대의 기습을 받고 전개한 전투.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 상실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운동으로 이어지는 개화 자강 계열의 운동을 계승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지식인들은 교육, 계몽, 언론 활동 등을 통해 우리나라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치사회단체, 학회, 학교를 설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애국계몽운동 (愛國啓蒙運動)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 상실의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협회운동으로 이어지는 개화 자강 계열의 운동을 계승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지식인들은 교육, 계몽, 언론 활동 등을 통해 우리나라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치사회단체, 학회, 학교를 설립하여 애국계몽운동을 펼쳤다.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이다. 서간도의 무장 항일 운동 단체가 결성한 군정부(軍政府)로 남만주 일대 독립 운동 총본영이었다. 신흥중학교를 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소속 독립군을 편성하였다.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및 민족반역자의 색출·처단, 친일 기관들을 소탕하였다. 한족 회원의 헌금으로 유지되었는데 국내에 재정 후원을 위한 조선독립 후원 의용단과 같은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다. 1922년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통합되었다.
서로군정서 (西路軍政署)
서로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이다. 서간도의 무장 항일 운동 단체가 결성한 군정부(軍政府)로 남만주 일대 독립 운동 총본영이었다. 신흥중학교를 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소속 독립군을 편성하였다.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및 민족반역자의 색출·처단, 친일 기관들을 소탕하였다. 한족 회원의 헌금으로 유지되었는데 국내에 재정 후원을 위한 조선독립 후원 의용단과 같은 비밀 결사가 조직되었다. 1922년 효과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로 통합되었다.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림 (柳林)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대한제국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군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병·독립운동가.
이명하 (李命夏)
대한제국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군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병·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