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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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묘 및 계성사·숭절사 등에 제향되는 위패의 배치를 도시(圖示)하고, 그 뒤에 각각 향사인(享祀人)의 간단한 신상명세와 약력 등을 기록한 의례서. 향사록.
문묘향사록 (文廟享祀錄)
조선시대 문묘 및 계성사·숭절사 등에 제향되는 위패의 배치를 도시(圖示)하고, 그 뒤에 각각 향사인(享祀人)의 간단한 신상명세와 약력 등을 기록한 의례서. 향사록.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문묘출향 (文廟黜享)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서울 성균관대학교 내에 공자와 중국·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신 문묘이다. 1398년에 창건했다. 앞쪽에 대성전, 뒤쪽에 명륜당을 둔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배치 형식이다. 창건 당시 이곳은 96칸으로 사당 기능과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1895년부터는 교육 기능을 상실한 채 문묘 기능만 유지하게 되었다. 광복 후에 다시 명륜전문학교로 개교하였고 이듬해 성균관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63년에 성균관대학교와 성균관이 분리되었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 (서울 文廟와 成均館)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서울 성균관대학교 내에 공자와 중국·우리나라 유학자를 모신 문묘이다. 1398년에 창건했다. 앞쪽에 대성전, 뒤쪽에 명륜당을 둔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배치 형식이다. 창건 당시 이곳은 96칸으로 사당 기능과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역할을 했다. 1895년부터는 교육 기능을 상실한 채 문묘 기능만 유지하게 되었다. 광복 후에 다시 명륜전문학교로 개교하였고 이듬해 성균관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63년에 성균관대학교와 성균관이 분리되었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강릉향교는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강릉에 설립한 지방의 유학교육 기관이다. 1411년 화재로 향교가 소실되자, 2년 뒤 강릉대도호부 판관 이맹상과 최치운을 비롯한 강릉 유생 68명이 건의하여 중건되었다. 다른 지방 향교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전국 향교 설립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건물 구조, 춘추로 거행하는 석전제 등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 및 전승되고 있는 점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향교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강릉향교 (江陵鄕校)
강릉향교는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강릉에 설립한 지방의 유학교육 기관이다. 1411년 화재로 향교가 소실되자, 2년 뒤 강릉대도호부 판관 이맹상과 최치운을 비롯한 강릉 유생 68명이 건의하여 중건되었다. 다른 지방 향교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전국 향교 설립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건물 구조, 춘추로 거행하는 석전제 등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 및 전승되고 있는 점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향교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도창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노래 잘하는 악사를 말한다. 아악 제례에서 노래는 등가에만 편성되었고, 도창은 등가에서 가자를 이끌며 노래를 지도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복식은 복두와 강공복을 착용해 가자 및 악생과 구별하였다. 숙종 이후 문묘 제례에서는 헌가에도 노래가 포함되어 도창이 편성되었다. 문묘의 등가·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종묘 제례에서는 도창이 없었으나 현재는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가창자를 모두 도창이라 한다. 또한 20세기 창극에서 무대 옆 해설자 역할을 도창이라 한다.
도창 (導唱)
도창은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가자를 이끄는 노래 잘하는 악사를 말한다. 아악 제례에서 노래는 등가에만 편성되었고, 도창은 등가에서 가자를 이끌며 노래를 지도하는 악사 역할을 담당하였다. 복식은 복두와 강공복을 착용해 가자 및 악생과 구별하였다. 숙종 이후 문묘 제례에서는 헌가에도 노래가 포함되어 도창이 편성되었다. 문묘의 등가·헌가에 각각 가자 2인과 도창 2인을 편성하였다. 종묘 제례에서는 도창이 없었으나 현재는 종묘와 문묘 등의 제사에서 가창자를 모두 도창이라 한다. 또한 20세기 창극에서 무대 옆 해설자 역할을 도창이라 한다.
문묘제례에 사용되는 악곡명.
명안지악 (明安之樂)
문묘제례에 사용되는 악곡명.
조선후기 고종 연간에 문묘와 각 지역 서원·사우를 모아 기록한 유교서. 편람.
동국문헌원우편 (東國文獻院宇篇)
조선후기 고종 연간에 문묘와 각 지역 서원·사우를 모아 기록한 유교서. 편람.
고려 후기에, 국학학정, 사헌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김문정 (金文鼎)
고려 후기에, 국학학정, 사헌규정 등을 역임한 문신.
문묘의 시설 가운데 공자의 위판을 봉안한 유교건축물.
대성전 (大成殿)
문묘의 시설 가운데 공자의 위판을 봉안한 유교건축물.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는 문묘(文廟)의 정전(正殿)인 대성전에서 모시는 공자와 제자들의 위패 배열 위치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린 일종의 반차도(班次圖)이다. 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제작연대 미상이다. 목판본으로 찍고 그 위에 다시 진한 채색을 사용하여 그렸다. 가운데 정면을 향한 인물이 공자이고, 곁에는 사성에 해당하는 안회·증자·자사·맹자를 소목법에 따라 좌우로 배열했다. 아래쪽에는 십철에 해당하는 인물과 한대 72제자, 당대 유학자 10명을 배열했다. 사실적인 형상으로 공자와 제자들의 배치를 재현한 이 작품은 매우 특이한 사례다.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는 문묘(文廟)의 정전(正殿)인 대성전에서 모시는 공자와 제자들의 위패 배열 위치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인물의 모습을 그린 일종의 반차도(班次圖)이다. 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제작연대 미상이다. 목판본으로 찍고 그 위에 다시 진한 채색을 사용하여 그렸다. 가운데 정면을 향한 인물이 공자이고, 곁에는 사성에 해당하는 안회·증자·자사·맹자를 소목법에 따라 좌우로 배열했다. 아래쪽에는 십철에 해당하는 인물과 한대 72제자, 당대 유학자 10명을 배열했다. 사실적인 형상으로 공자와 제자들의 배치를 재현한 이 작품은 매우 특이한 사례다.
중국 진나라의 태학생 동양(董養), 당나라의 태학생 하번(何蕃), 송나라의 태학생 진동(陳東)·구양철(歐陽澈) 등을 배향한 사우.
사현사 (四賢祠)
중국 진나라의 태학생 동양(董養), 당나라의 태학생 하번(何蕃), 송나라의 태학생 진동(陳東)·구양철(歐陽澈) 등을 배향한 사우.
관악기의 하나.
약 (籥)
관악기의 하나.
종묘·문묘 기타 나라 제사에서 기장쌀·핍쌀을 담는 데 쓴 제기.
궤 (簋)
종묘·문묘 기타 나라 제사에서 기장쌀·핍쌀을 담는 데 쓴 제기.
「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성안지곡 (成安之曲)
「성안지곡」은 고려시대부터 연주되어온 제례아악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선농과 문선왕묘 제례의식의 초헌 절차에서 등가가 각각 ‘태주궁’과 ‘협종궁’으로 연주하였으나, 조선 전기에 오직 문선왕묘의 작헌악으로만 쓰이게 되었고, 곡 이름도 「성안지악」으로 바뀌었다. 이후 세종대에 「성안지악」의 악보가 신제아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악조도 남려궁과 고선궁으로 바뀌었다. 이후 제례악이 15곡으로 축소되었고, 그 중 ‘남려궁’과 ‘고선궁’이 바로 문선왕묘 제례의 작헌악 「명안지악」의 악보로 쓰였다.
「영안지곡」은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례에서 연주되었던 중국 전래 아악곡명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사직제례의 영신과 송신에서, 조선 전기에는 문묘제례 및 원구제례의 송신 절차에서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악곡은 4언 1구, 8구 1장의 형식에 1자1음으로 된 황종궁의 선율이다. 문묘제례의 송신례를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악곡인 「영안지악」과는 별개의 곡이다.
영안지악 (寧安之曲)
「영안지곡」은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제례에서 연주되었던 중국 전래 아악곡명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는 사직제례의 영신과 송신에서, 조선 전기에는 문묘제례 및 원구제례의 송신 절차에서 연주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악곡은 4언 1구, 8구 1장의 형식에 1자1음으로 된 황종궁의 선율이다. 문묘제례의 송신례를 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악곡인 「영안지악」과는 별개의 곡이다.
천재지변으로 문묘에 경동(驚動)한 일 발생할 때 문선왕위(文宣王位)에게 올리는 제례.
위안제 (尉安祭)
천재지변으로 문묘에 경동(驚動)한 일 발생할 때 문선왕위(文宣王位)에게 올리는 제례.
현악기의 일종.
슬 (瑟)
현악기의 일종.
승배(陞配) 다음날 문묘에 종사(從祀)하기 위하여 위판(位版)을 조성하여 올리는 유교의식.
예성제 (禮成祭)
승배(陞配) 다음날 문묘에 종사(從祀)하기 위하여 위판(位版)을 조성하여 올리는 유교의식.
종묘·문묘·향교·서원 등의 출입문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신삼문.
신문 (神門)
종묘·문묘·향교·서원 등의 출입문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신삼문.
장수향교 대성전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읍 장수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 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이다. 장수향교는 1407년에 장수읍 선창리 당곡마을에 처음 창건되었다. 보통 평지에 세워진 향교는 앞쪽에 대성전이 있고 뒤에 명륜당이 자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장수향교는 뒤쪽에 대성전이 있다. 장수향교 대성전은 조선 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이다. 숙종 연간에 이건되었지만 2차례 왜란 때도 소실되지 않아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대성전의 지붕부를 받치는 부재 및 건축 수법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장수향교 대성전 (長水鄕校 大成殿)
장수향교 대성전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읍 장수향교 경내에 있는 조선 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이다. 장수향교는 1407년에 장수읍 선창리 당곡마을에 처음 창건되었다. 보통 평지에 세워진 향교는 앞쪽에 대성전이 있고 뒤에 명륜당이 자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장수향교는 뒤쪽에 대성전이 있다. 장수향교 대성전은 조선 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이다. 숙종 연간에 이건되었지만 2차례 왜란 때도 소실되지 않아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대성전의 지붕부를 받치는 부재 및 건축 수법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