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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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우리나라 개화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자 갑신정변의 주모자이다. 1870년대 개화사상을 수용하였고 개화당을 조직하였다. 1884년 12월 우정국 준공 축하연 날에 갑신정변을 단행하였다. 청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양반 지배체제 청산 등의 정령을 반포하는 개혁을 진행하였지만, 4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1894년 다시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갑오개혁 시기에 사면 복권되었고, 1910년에 충달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김옥균 (金玉均)
김옥균은 우리나라 개화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자 갑신정변의 주모자이다. 1870년대 개화사상을 수용하였고 개화당을 조직하였다. 1884년 12월 우정국 준공 축하연 날에 갑신정변을 단행하였다. 청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양반 지배체제 청산 등의 정령을 반포하는 개혁을 진행하였지만, 4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가 1894년 다시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갑오개혁 시기에 사면 복권되었고, 1910년에 충달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862년(철종 13) 4월 경상도 개령 에서 현감 김후근(金厚根)의 탐욕과 폭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
개령민란 (開寧民亂)
1862년(철종 13) 4월 경상도 개령 에서 현감 김후근(金厚根)의 탐욕과 폭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
『벽위신편(闢衛新編)』은 고종 때 문신 윤종의가 척사(斥邪)와 해방(海防) 이론을 수록한 저술서이다. 1848년(헌종 14) 7권의 초고본을 완성하였으며, 이후 1880년대 초까지 계속 새로운 자료를 보완하여 7권 5책의 현행본을 완성하였으나 간행되지 않았다.
벽위신편 (闢衛新編)
『벽위신편(闢衛新編)』은 고종 때 문신 윤종의가 척사(斥邪)와 해방(海防) 이론을 수록한 저술서이다. 1848년(헌종 14) 7권의 초고본을 완성하였으며, 이후 1880년대 초까지 계속 새로운 자료를 보완하여 7권 5책의 현행본을 완성하였으나 간행되지 않았다.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개항 (開港)
일반적인 의미의 개항은 외국과 국교를 맺고 통상 관계를 갖는 일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의 개항은 근대 개항기인 1876년 2월 26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일을 말한다. 조선은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취하다가 1876년(고종 13) 2월 26일 강화도에서 체결된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을 일본과 체결하고 개항하게 되었다.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개화당 (開化黨)
개화당은 근대 개화기 독립과 개화를 기치로 조선 사회의 개혁을 위하여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킨 정치 집단이다. 1870년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형성한 초기 개화사상, 중국을 통해 수용한 서구 문물 등을 공부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현실 정치에서 개화사상을 실현하고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형성한 정치 세력이다. 개화당은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고자 1884년 12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조선후기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영종진첨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백낙신 (白樂莘)
조선후기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영종진첨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후기에, 철산부사, 제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백낙연 (白樂淵)
조선 후기에, 철산부사, 제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휘릉별검,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윤 (李命允)
조선 후기에, 휘릉별검, 성균관전적,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문신.
서유영은 조선 후기에, 사릉참봉,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호는 운고이다. 1830∼1860년은 낙산시사를 결성해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1860년에 음덕으로 사릉참봉을 제수받았다. 1865년 의령현감에 부임하였다가 4년 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1870년 고향인 충청도 금계로 낙향하였다. 유학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실학·도선·불교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은 전·야담·소설 등 서사양식을 두루 수용하였다. 우리 역사와 풍속을 연작시로 읊는 죽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운고시선』, 『금계필담』, 『육미당기』가 남아 있다.
서유영 (徐有英)
서유영은 조선 후기에, 사릉참봉, 의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호는 운고이다. 1830∼1860년은 낙산시사를 결성해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1860년에 음덕으로 사릉참봉을 제수받았다. 1865년 의령현감에 부임하였다가 4년 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갔다. 1870년 고향인 충청도 금계로 낙향하였다. 유학사상에 기초하고 있지만, 실학·도선·불교 등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학은 전·야담·소설 등 서사양식을 두루 수용하였다. 우리 역사와 풍속을 연작시로 읊는 죽지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운고시선』, 『금계필담』, 『육미당기』가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 도총관,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신석희 (申錫禧)
조선 후기에, 도총관, 예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정청등록(釐整廳謄錄)은 철종 연간 발생한 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고 삼정이정절목을 작성하기 위하여 1862년 설치된 이정청의 기록물이다. 이정청등록에는 삼정을 개혁하기 위한 조선 정부의 정무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삼정 문란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이정청등록 (釐整廳謄錄)
이정청등록(釐整廳謄錄)은 철종 연간 발생한 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고 삼정이정절목을 작성하기 위하여 1862년 설치된 이정청의 기록물이다. 이정청등록에는 삼정을 개혁하기 위한 조선 정부의 정무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삼정 문란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혼평의는 조선 후기 박규수가 제작한 금속제 별자리 판이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의 원리를 응용하여 제작하였고, 혼상(渾象)의 별자리를 평평한 판에 옮겨 놓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별자리 판은 적도 남북의 별자리를 앞과 뒷면에 새겨 넣었는데, 중앙에 별을 조준하는 규형(窺衡)이 있고, 적도규(赤道規), 지평호(地平弧), 몽영호(朦影弧), 황도선(黃道線) 등을 나타냈다.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고 중성(中星)을 찾을 수 있으며, 절후마다 보이는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혼평의 (渾平儀)
혼평의는 조선 후기 박규수가 제작한 금속제 별자리 판이다.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의 원리를 응용하여 제작하였고, 혼상(渾象)의 별자리를 평평한 판에 옮겨 놓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별자리 판은 적도 남북의 별자리를 앞과 뒷면에 새겨 넣었는데, 중앙에 별을 조준하는 규형(窺衡)이 있고, 적도규(赤道規), 지평호(地平弧), 몽영호(朦影弧), 황도선(黃道線) 등을 나타냈다.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고 중성(中星)을 찾을 수 있으며, 절후마다 보이는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지세의(地勢儀)는 19세기 중엽 박규수가 제작한 천문 관측 장치를 갖춘 지구의이다. 『해국도지(海國圖志)』에 담긴 지리적 정보를 담은 지구의 위에 천문 관측 장치를 덧붙여 세계 지리에 대한 탐구와 천문 관측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도록 한 기구이다.
지세의 (地勢儀)
지세의(地勢儀)는 19세기 중엽 박규수가 제작한 천문 관측 장치를 갖춘 지구의이다. 『해국도지(海國圖志)』에 담긴 지리적 정보를 담은 지구의 위에 천문 관측 장치를 덧붙여 세계 지리에 대한 탐구와 천문 관측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도록 한 기구이다.
「오경석 초상」은 1872년 개화사상가 오경석이 박규수를 정사로 하는 사절단의 역관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때 찍은 사진이다. 원본 사진은 소실되었으나 오경석의 아들인 오세창이 일본 방문 중에 복사본을 만들어 집안에서 보존하고 있다.
오경석 초상 (吳慶錫 肖像)
「오경석 초상」은 1872년 개화사상가 오경석이 박규수를 정사로 하는 사절단의 역관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때 찍은 사진이다. 원본 사진은 소실되었으나 오경석의 아들인 오세창이 일본 방문 중에 복사본을 만들어 집안에서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