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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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연구와 학술 진흥을 위하여 일정한 능력을 갖춘 자 또는 업적이 있는 자에 대해 대학이 수여하는 최고의 학위 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
박사 (博士)
학문연구와 학술 진흥을 위하여 일정한 능력을 갖춘 자 또는 업적이 있는 자에 대해 대학이 수여하는 최고의 학위 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
대박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전문기술관직이다. 대백사(大伯士)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인들을 거느리고 해당 작업의 책임을 맡은 우두머리로, 삼국시대부터 일컬어졌다. 박사 또는 백사의 칭호를 가진 자는 4두품부터 6두품에 해당하는 관등을 가지고 있었다. 8세기 중엽에 대박사·차박사로 분화되었는데 해당 공사의 책임자와 이를 보조하는 장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종래 관등을 가진 장인에 국한되었던 박사의 명칭이 9세기 초엽 일반 승장에게까지 부여되기 시작했다. 박사의 명칭이 대장의 의미를 지닌 공사의 책임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전환·확산된 것이다.
대박사 (大博士)
대박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전문기술관직이다. 대백사(大伯士)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인들을 거느리고 해당 작업의 책임을 맡은 우두머리로, 삼국시대부터 일컬어졌다. 박사 또는 백사의 칭호를 가진 자는 4두품부터 6두품에 해당하는 관등을 가지고 있었다. 8세기 중엽에 대박사·차박사로 분화되었는데 해당 공사의 책임자와 이를 보조하는 장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종래 관등을 가진 장인에 국한되었던 박사의 명칭이 9세기 초엽 일반 승장에게까지 부여되기 시작했다. 박사의 명칭이 대장의 의미를 지닌 공사의 책임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전환·확산된 것이다.
고려 및 조선시대의 성균관의 교수관.
성균박사 (成均博士)
고려 및 조선시대의 성균관의 교수관.
와박사는 백제에서 기와를 만드는 전문기술자에게 수여했던 관직이다. 백제는 4세기 후반에 유학에 조예가 깊은 고흥이나 왕인 등을 오경박사나 태학박사에 중용하였다. 6세기 초반에 이르러 박사제도가 확대되어 역박사·의박사·와박사·노반박사 등 다양한 직능의 박사가 나타났다. 와박사는 도공이나 와공을 총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연꽃무늬의 반전 수법 등 와당 제작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백제의 독자적인 와당 양식은 신라와 일본에 전파되었다. 특히 야마토정권의 요청에 따라 파견된 와박사는 와당 제조 기술을 일본에 전파함으로써 동아시아 문화의 교류와 활성화에 이바지하였다.
와박사 (瓦博士)
와박사는 백제에서 기와를 만드는 전문기술자에게 수여했던 관직이다. 백제는 4세기 후반에 유학에 조예가 깊은 고흥이나 왕인 등을 오경박사나 태학박사에 중용하였다. 6세기 초반에 이르러 박사제도가 확대되어 역박사·의박사·와박사·노반박사 등 다양한 직능의 박사가 나타났다. 와박사는 도공이나 와공을 총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연꽃무늬의 반전 수법 등 와당 제작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백제의 독자적인 와당 양식은 신라와 일본에 전파되었다. 특히 야마토정권의 요청에 따라 파견된 와박사는 와당 제조 기술을 일본에 전파함으로써 동아시아 문화의 교류와 활성화에 이바지하였다.
고려시대 승직(僧職)·지리업자(地理業者)에게 지급되던 토지.
별사전시 (別賜田柴)
고려시대 승직(僧職)·지리업자(地理業者)에게 지급되던 토지.
고려시대의 과거에서 잡업(雜業) 중 한 시험.
명법업 (明法業)
고려시대의 과거에서 잡업(雜業) 중 한 시험.
고려시대 과거의 잡업(雜業) 중 한 시험.
명산업 (明算業)
고려시대 과거의 잡업(雜業) 중 한 시험.
고려시대 관청의 기록을 담당할 기술관을 뽑는 시험.
명서업 (明書業)
고려시대 관청의 기록을 담당할 기술관을 뽑는 시험.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형조좌랑,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박처륜 (朴處綸)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형조좌랑,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 과거의 잡업(雜業) 중 한 과(科).
복업 (卜業)
고려시대 과거의 잡업(雜業) 중 한 과(科).
고려시대 국자감(國子監)의 관직.
국자조교 (國子助敎)
고려시대 국자감(國子監)의 관직.
국자학은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유학부(儒學部) 가운데 하나이다. 국자학에는 문 · 무관 3품 이상의 아들과 손자 등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국자학 생도는 규정된 교육과정과 수업연한에 따라 국자감에서 공부하였다. 국자박사와 국자조교가 국자학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국자학 (國子學)
국자학은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유학부(儒學部) 가운데 하나이다. 국자학에는 문 · 무관 3품 이상의 아들과 손자 등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국자학 생도는 규정된 교육과정과 수업연한에 따라 국자감에서 공부하였다. 국자박사와 국자조교가 국자학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대학은 고려시대 최고의 교육 기관인 국자감 유학부의 하나이다. 인종 대에 정해진 규정에 따르면 문·무 5품 이상의 자·손에게 입학 자격이 부여되었으며, 정원은 3백 명이었다. 대학은 국자학·사문학과 마찬가지로 『효경』과 『논어』를 필수 과목으로 이수한 후 여러 유교 경전 중에서 선택하여 단계별로 이수하게 하였다. 대학의 학관(學官)으로는 대학박사·대학조교가 있었는데, 경학에 뛰어나고 언행이 독실한 자를 선발하였다.
대학 (大學)
대학은 고려시대 최고의 교육 기관인 국자감 유학부의 하나이다. 인종 대에 정해진 규정에 따르면 문·무 5품 이상의 자·손에게 입학 자격이 부여되었으며, 정원은 3백 명이었다. 대학은 국자학·사문학과 마찬가지로 『효경』과 『논어』를 필수 과목으로 이수한 후 여러 유교 경전 중에서 선택하여 단계별로 이수하게 하였다. 대학의 학관(學官)으로는 대학박사·대학조교가 있었는데, 경학에 뛰어나고 언행이 독실한 자를 선발하였다.
대학 학부 과정의 상위에 설치되어 있는 고도의 학술연구 기관이자 연구 인력과 전문 직업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대학원 (大學院)
대학 학부 과정의 상위에 설치되어 있는 고도의 학술연구 기관이자 연구 인력과 전문 직업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고려시대 국자감에 편제된 경사육학(京師六學)의 하나.
산학 (算學)
고려시대 국자감에 편제된 경사육학(京師六學)의 하나.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신영 (申瑛)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삼국시대 때, 역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
왕도량 (王道良)
삼국시대 때, 역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
삼국시대 때, 오경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
왕유귀 (王柳貴)
삼국시대 때, 오경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
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왕인 (王仁)
왕인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학자이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와니기시[和邇吉師]’라 하였고,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사기』에는 근초고왕 때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 그러나 『천자문』이 편찬된 시기 등을 근거로 윤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서기』에는 아신왕 말기에 태자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성립하였는데, 그 답례로 인적자원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백제의 오경박사 등이 왜국으로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하여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삼국시대 때, 오경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
고안무 (高安茂)
삼국시대 때, 오경박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백제의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