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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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은 조선 세종~세조 대 집현전 부제학. 승정원 좌승지, 형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에 제수되면서 세종 대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였고, 혹독한 고문으로 죽었다. 숙종 대 관작이 회복되고 증직 및 증시되었다.
박팽년 (朴彭年)
박팽년은 조선 세종~세조 대 집현전 부제학. 승정원 좌승지, 형조참판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에 제수되면서 세종 대의 여러 사업에 참여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였고, 혹독한 고문으로 죽었다. 숙종 대 관작이 회복되고 증직 및 증시되었다.
성삼문은 조선 세종~세조 대 사간원 우사간, 집현전 부제학. 예조참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세종 대의 주요 사업에 참여하였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요동에 질정관으로 파견되어 어문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였던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성삼문 (成三問)
성삼문은 조선 세종~세조 대 사간원 우사간, 집현전 부제학. 예조참의 등을 지낸 문신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이다. 세종 대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현전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세종 대의 주요 사업에 참여하였다. 특히, 신숙주와 함께 요동에 질정관으로 파견되어 어문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였으나 정창손의 사위였던 김질의 고발로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조선 세조 때 성삼문(成三問)이 지은 시조.
봉래산가 (蓬萊山歌)
조선 세조 때 성삼문(成三問)이 지은 시조.
조선 전기에, 풍저창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송현수 (宋玹壽)
조선 전기에, 풍저창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심문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예조정랑, 평안도판관‚ 종사관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후대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실패하여 박팽년·성삼문 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심문 (朴審問)
박심문은 조선 전기 세종~세조 대 예조정랑, 평안도판관‚ 종사관 등을 지낸 문신이다. 세종 대 과거에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후대에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가 실패하여 박팽년·성삼문 등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변안열 (邊安烈)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전기에, 좌부승지, 우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권자신 (權自愼)
조선 전기에, 좌부승지, 우승지,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우왕복위와 창왕폐위모의사건 당시의 장수.
김저 (金佇)
고려후기 우왕복위와 창왕폐위모의사건 당시의 장수.
영풍군은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이다. 이름은 전(瑔)이다. 세종의 서자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혜빈양씨의 3남이다. 단종을 보호하려다 세조 즉위 후 예안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임실로 귀양을 갔으며,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에 연루되어 위리안치 중 죽임을 당하였다.
영풍군 (永豊君)
영풍군은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이다. 이름은 전(瑔)이다. 세종의 서자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혜빈양씨의 3남이다. 단종을 보호하려다 세조 즉위 후 예안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임실로 귀양을 갔으며,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에 연루되어 위리안치 중 죽임을 당하였다.
조선 전기에,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왕방연 (王邦衍)
조선 전기에,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한훈은 조선 전기 언관으로 활동하다 화를 당한 문신 관료이다. 한확과 소혜왕후의 인척으로서 1494년(성종 25) 별시에 입격하였다. 연산군 즉위 후 사간원 정언에 제수된 뒤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무오사화 당시 소릉 복위를 논한 것이 문제가 되어 유배되었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사형된 뒤 부관참시되었다.
한훈 (韓訓)
한훈은 조선 전기 언관으로 활동하다 화를 당한 문신 관료이다. 한확과 소혜왕후의 인척으로서 1494년(성종 25) 별시에 입격하였다. 연산군 즉위 후 사간원 정언에 제수된 뒤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무오사화 당시 소릉 복위를 논한 것이 문제가 되어 유배되었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사형된 뒤 부관참시되었다.
조선 전기에, 행돈녕부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로 처형된 문신.
권완 (權完)
조선 전기에, 행돈녕부판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로 처형된 문신.
조선 전기에, 공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권담 (權湛)
조선 전기에, 공주목사, 황해도관찰사,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우정언, 사헌부지평, 집현전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인년 (朴引年)
조선 전기에, 우정언, 사헌부지평, 집현전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온릉(溫陵)은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폐위된 뒤 묘소가 친정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739년 복위되면서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온릉은 정순왕후 사릉 돌거리의 수량과 크기를 따랐으며, 이 돌거리 제작 전반을 별간역(別看役) 최천약(崔天若)이 지휘하였다. 사적 ‘양주 온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온릉 (溫陵)
온릉(溫陵)은 조선 제11대 국왕 중종의 비 단경왕후 거창신씨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폐위된 뒤 묘소가 친정 선산에 조성되었으며, 1739년 복위되면서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온릉은 정순왕후 사릉 돌거리의 수량과 크기를 따랐으며, 이 돌거리 제작 전반을 별간역(別看役) 최천약(崔天若)이 지휘하였다. 사적 ‘양주 온릉’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후기에, 동북면병마사, 대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금휘 (琴輝)
고려 후기에, 동북면병마사, 대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지신사, 밀직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인연 (金仁沇)
고려 후기에, 지신사, 밀직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분도장군, 상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노인수 (盧仁綏)
고려후기 분도장군, 상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대부윤, 비서소윤,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응문 (金應文)
고려 후기에, 대부윤, 비서소윤,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후기 김충주의 9세손 김처일이 건립한 누정. 정자.
고송정지 (枯松亭址)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후기 김충주의 9세손 김처일이 건립한 누정.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