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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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경상남도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항쟁 사건.
부마민주항쟁 (釜馬民主抗爭)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경상남도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항쟁 사건.
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윤보선 (尹潽善)
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개항장 (開港場)
개항장은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에서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하여 개방한 항구이다. 우리나라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부산, 인천, 원산의 3개 항구가 개항장(開港場)이 되었으며, 이후 목포, 진남포(鎭南浦), 군산, 마산, 성진(城津), 용암포(龍巖浦) 등이 추가되었다. 개항장에는 관세를 징수하는 해관(海關)과 외국인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감리서(監理署) 등이 설치되었으며, 외국인이 거류하는 지역인 조계(租界)가 설정되었다.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집 (金集)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용문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 수도사단장, 남부지구 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주둔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근무하였다.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현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귀국 후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육사 제8기 특대생으로 소령에 임관하였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 명령을 거부하였다가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지휘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이용문 (李龍文)
이용문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 수도사단장, 남부지구 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주둔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근무하였다.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현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귀국 후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육사 제8기 특대생으로 소령에 임관하였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 명령을 거부하였다가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지휘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임응식은 해방 이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사진가이다. 와세다중학교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받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44~46년 일본물리탐광주식회사에서 과학사진을 찍었다. 1946년부터 사진현상소 ‘아르스(ARS)’를 운영했으며 부산광화회를 결성했다. 한국전쟁에 종군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살롱 사진’과 ‘회화주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1950년대부터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사진 이념을 주장했다. 1966년부터는 한국 고건축사진을 연재했고, 이를 모아 사진집 『한국의 고건축』(1977)을 출간했다.
임응식 (林應植)
임응식은 해방 이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사진가이다. 와세다중학교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받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44~46년 일본물리탐광주식회사에서 과학사진을 찍었다. 1946년부터 사진현상소 ‘아르스(ARS)’를 운영했으며 부산광화회를 결성했다. 한국전쟁에 종군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살롱 사진’과 ‘회화주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1950년대부터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사진 이념을 주장했다. 1966년부터는 한국 고건축사진을 연재했고, 이를 모아 사진집 『한국의 고건축』(1977)을 출간했다.
소형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의 해상침투 사건.
북한잠수정 침투사건 (北韓潛水艇 浸透事件)
소형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의 해상침투 사건.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은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부민동)에 있는 동아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2013년 9월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25년에 일제 강점기에 준공한 건물로 경남도청으로 사용되었다. 6·25전쟁 때에는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로, 이후 경남도청과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사용되었다. 연건평 4,504㎡로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 전시실에서는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건물의 역사를 패널과 모형 등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2002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東亞大學校 石堂博物館)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은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부민동)에 있는 동아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2013년 9월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25년에 일제 강점기에 준공한 건물로 경남도청으로 사용되었다. 6·25전쟁 때에는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로, 이후 경남도청과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사용되었다. 연건평 4,504㎡로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 전시실에서는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건물의 역사를 패널과 모형 등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다. 2002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영화의 새로운 혁신을 지향하며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영화로, 한국영화사에서 최초로 하나의 사조로 지칭된 영화용어.
코리안 뉴 웨이브 (Korean new wave)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영화의 새로운 혁신을 지향하며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영화로, 한국영화사에서 최초로 하나의 사조로 지칭된 영화용어.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개성고등학교 (開成高等學校)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우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경여 (李敬輿)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우의정,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허웅은 해방 이후 『국어음운론』, 『우리 옛말본』,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918년에 태어나 2004년에 사망하였으며 호는 눈뫼이다.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읽고 국어를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 해방 후에 부산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국어음운론』(1958)에서 국어의 음운론을 공시적·통시적 기술을 시도하였다. 『우리 옛말본』(1975)에서 15세기 국어의 형태론을 공시적으로 기술하였다.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1995)에서 우리말 연구의 정통성을 이었다.
허웅 (許雄)
허웅은 해방 이후 『국어음운론』, 『우리 옛말본』,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918년에 태어나 2004년에 사망하였으며 호는 눈뫼이다.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읽고 국어를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 해방 후에 부산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국어음운론』(1958)에서 국어의 음운론을 공시적·통시적 기술을 시도하였다. 『우리 옛말본』(1975)에서 15세기 국어의 형태론을 공시적으로 기술하였다. 『20세기 우리말의 형태론』(1995)에서 우리말 연구의 정통성을 이었다.
대구부산고속도로는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과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이다. 총 연장 82.05㎞, 너비 23.4m의 왕복 4차로 고속국도이다. 2001년 중앙고속도로와 동일한 노선번호(제55호)를 부여받았으나 타 구간과 달리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었다. 대구·부산 지역의 통행량을 적절하게 분산시켜 지역 교통난 완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명지·녹산국가공단과 부산신항, 김해공항 등의 물동량 수송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영남 내륙지역의 접근성을 향상시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방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부산고속도로 (大邱釜山高速道路)
대구부산고속도로는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과 대구광역시 동구 용계동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이다. 총 연장 82.05㎞, 너비 23.4m의 왕복 4차로 고속국도이다. 2001년 중앙고속도로와 동일한 노선번호(제55호)를 부여받았으나 타 구간과 달리 민간 자본으로 건설되었다. 대구·부산 지역의 통행량을 적절하게 분산시켜 지역 교통난 완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명지·녹산국가공단과 부산신항, 김해공항 등의 물동량 수송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영남 내륙지역의 접근성을 향상시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방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부산광역시에서 매년 가을에 개최하는 예술축제. 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釜山國際映畵祭)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부산광역시에서 매년 가을에 개최하는 예술축제. 국제영화제.
부산광역시 중앙 남단에 위치한 구.
부산광역시 동구 (釜山廣域市 東區)
부산광역시 중앙 남단에 위치한 구.
1983년 2월부터 전두환 정부에서 단계적으로 시행한 정치적 유화조치.
국민화합조치 (國民和合措置)
1983년 2월부터 전두환 정부에서 단계적으로 시행한 정치적 유화조치.
영도는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섬이다. 말 사육장으로 유명하여 목도(牧島)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사육된 명마가 빨리 달려 그림자를 볼 수 없다고 하여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거칠산국, 고려시대에는 동래현, 조선시대에는 동래부에 속하였다. 1914년에 부산부 소속으로 개편되었고, 1957년에 영도구로 승격되었고, 1995년에 부산광역시 영도구가 되었다. 북서 해안은 일제강점기에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남동부에는 태종대와 신선대(神仙臺) 등 관광 명소가 있다. 우리나라의 핵심적 조선공업단지로 조선소가 밀집해 있다.
영도 (影島)
영도는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섬이다. 말 사육장으로 유명하여 목도(牧島)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사육된 명마가 빨리 달려 그림자를 볼 수 없다고 하여 절영도(絶影島)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거칠산국, 고려시대에는 동래현, 조선시대에는 동래부에 속하였다. 1914년에 부산부 소속으로 개편되었고, 1957년에 영도구로 승격되었고, 1995년에 부산광역시 영도구가 되었다. 북서 해안은 일제강점기에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남동부에는 태종대와 신선대(神仙臺) 등 관광 명소가 있다. 우리나라의 핵심적 조선공업단지로 조선소가 밀집해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임자 (任子)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사립여자전문대학.
부산여자대학교 (釜山女子大學校)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사립여자전문대학.
경주 부산성(慶州 富山城)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195-2 일대에 있는 포곡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9㎞이고 남은 성벽의 높이는 2m이다. 신라 진평왕 대에 초축되었다는 설과 문무왕 대에 축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성 내부에서는 경주 남산신성(南山新城)의 서창지와 비슷한 규모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신라시대에 초축된 경주 부산성은 왕경의 외곽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 경주와 영천, 포항 지역을 관할하는 군창의 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관방시설이었다.
경주 부산성 (慶州 富山城)
경주 부산성(慶州 富山城)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195-2 일대에 있는 포곡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9㎞이고 남은 성벽의 높이는 2m이다. 신라 진평왕 대에 초축되었다는 설과 문무왕 대에 축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성 내부에서는 경주 남산신성(南山新城)의 서창지와 비슷한 규모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신라시대에 초축된 경주 부산성은 왕경의 외곽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 경주와 영천, 포항 지역을 관할하는 군창의 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관방시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