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북풍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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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항일학생운동단체.
공학회 (共學會)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항일학생운동단체.
김종범은 일제강점기, 조선노농총동맹과 북풍회, 만주 정통단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으로, 재일 사상단체인 코스모구락부 회장을 지냈고, 1923년 1월 북성회에 참여하였다. 1924년 1월 부산노동동맹회 집행위원, 3월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 임시의장,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 전형위원 및 상무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비밀결사 고려총국 국내부와 까엔당에 하였고, 사상단체 건설사 북풍회에 참여하였다. 1926년 중국 지린〔吉林〕에서 무장단체 정통단(正統團)을 결성하여 단장이 되었다.
김종범 (金鍾範)
김종범은 일제강점기, 조선노농총동맹과 북풍회, 만주 정통단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출신으로, 재일 사상단체인 코스모구락부 회장을 지냈고, 1923년 1월 북성회에 참여하였다. 1924년 1월 부산노동동맹회 집행위원, 3월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 임시의장,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 전형위원 및 상무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비밀결사 고려총국 국내부와 까엔당에 하였고, 사상단체 건설사 북풍회에 참여하였다. 1926년 중국 지린〔吉林〕에서 무장단체 정통단(正統團)을 결성하여 단장이 되었다.
192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본능아연맹 (本能兒聯盟)
1926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조직되었던 무정부주의 운동단체.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상단체.
사회주의자동맹 (社會主義者同盟)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상단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약수 (金若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신철은 북풍파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르뷰로의 국내 공작원으로 입국하여 코르뷰로 국내부를 조직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의 책임비서가 되었다. 김약수 등과 까엔당이라는 공산주의 그룹을 조직하였다. 북풍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신철 (辛鐵)
신철은 북풍파의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코르뷰로의 국내 공작원으로 입국하여 코르뷰로 국내부를 조직하고,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의 책임비서가 되었다. 김약수 등과 까엔당이라는 공산주의 그룹을 조직하였다. 북풍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
연문사 (硏文社)
1920년대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
정운해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이다. 조선노동공제회 내에 ‘마르크스주의 크루조크’를 결성하였고, 남선노농동맹과 조선노농총동맹 등에서 노농운동을 전개하였다. 북풍파로,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이자 노농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건국동맹 경북지부 책임자와 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에서 활동하였다.
정운해 (鄭雲海)
정운해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이다. 조선노동공제회 내에 ‘마르크스주의 크루조크’를 결성하였고, 남선노농동맹과 조선노농총동맹 등에서 노농운동을 전개하였다. 북풍파로,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이자 노농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건국동맹 경북지부 책임자와 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에서 활동하였다.
조봉암은 해방 이후 농림부장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9년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강화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간 투옥되었다. 일본 유학 시절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의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참여 등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
조봉암 (曺奉岩)
조봉암은 해방 이후 농림부장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9년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강화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1년간 투옥되었다. 일본 유학 시절 사회주의·무정부주의 계열의 흑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참여 등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