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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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는 조선 후기 『안자편』, 『연원정종』, 『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41년(헌종 7)에 출생하여 1922년 사망하였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 추담(秋潭), 간재(艮齋)이다. 이재-홍직필-임헌회-전우로 이어지는 낙론 계열의 학자로 분류된다. 1908년(순종 2)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왕등도, 군산도 등으로 들어가 나라는 망하더라도 도학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겠다고 결심하였다. 1912년 계화도에 정착하여 계화도(繼華島: 중화를 잇는다는 뜻)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전우 (田愚)
전우는 조선 후기 『안자편』, 『연원정종』, 『간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41년(헌종 7)에 출생하여 1922년 사망하였다.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 추담(秋潭), 간재(艮齋)이다. 이재-홍직필-임헌회-전우로 이어지는 낙론 계열의 학자로 분류된다. 1908년(순종 2)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왕등도, 군산도 등으로 들어가 나라는 망하더라도 도학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겠다고 결심하였다. 1912년 계화도에 정착하여 계화도(繼華島: 중화를 잇는다는 뜻)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술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사고 (史庫)
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이리역 폭발 사고 (裡里驛 爆發 事故)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조선시대 국책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실록의 편찬이 완성되면, 사관의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사용되었던 편찬 자료들을 물에 세척하는 것을 말한다. 세초를 시행한 이유는 사초의 비밀을 유지하고 재생 종이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세초 (洗草)
조선시대 국책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실록의 편찬이 완성되면, 사관의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사용되었던 편찬 자료들을 물에 세척하는 것을 말한다. 세초를 시행한 이유는 사초의 비밀을 유지하고 재생 종이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실록청 (實錄廳)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실록 (實錄)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국왕의 어영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정읍 용굴암에 옮겨 보관한 문신.
손홍록 (孫弘祿)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국왕의 어영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정읍 용굴암에 옮겨 보관한 문신.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1455년(세조 즉위) 윤6월 11일부터 1468년(세조 14) 11월 28일까지 세조 재위 약 14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세조실록 (世祖實錄)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1455년(세조 즉위) 윤6월 11일부터 1468년(세조 14) 11월 28일까지 세조 재위 약 14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이다. 1401년(태종 1) 1월 1일부터 1418년(태종 18) 8월 8일까지 태종의 재위 18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태종실록 (太宗實錄)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이다. 1401년(태종 1) 1월 1일부터 1418년(태종 18) 8월 8일까지 태종의 재위 18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해방 이후 『조선독립사상사고』, 『한국문화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유홍렬 (柳洪烈)
해방 이후 『조선독립사상사고』, 『한국문화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마니산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국가 주요 사적을 보관하던 강화도의 외사고(外史庫)이다. 임진왜란 이후 새롭게 제작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4곳의 외사고 설치가 추진됨에 따라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 사고가 신설되어 실록의 원본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다만, 최근의 연구를 통해 마니산사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지적됨에 따라, 정족산사고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강화도의 사고는 강화부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마니산사고 (摩尼山史庫)
마니산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국가 주요 사적을 보관하던 강화도의 외사고(外史庫)이다. 임진왜란 이후 새롭게 제작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4곳의 외사고 설치가 추진됨에 따라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 사고가 신설되어 실록의 원본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다만, 최근의 연구를 통해 마니산사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지적됨에 따라, 정족산사고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강화도의 사고는 강화부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충주사고 (忠州史庫)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태조실록(太祖實錄)』은 조선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이다. 1392년(태조 1) 7월 1일부터 1398년(태조 7) 12월 29일까지 태조 재위 7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태조실록 (太祖實錄)
『태조실록(太祖實錄)』은 조선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이다. 1392년(태조 1) 7월 1일부터 1398년(태조 7) 12월 29일까지 태조 재위 7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인조실록』은 조선 후기 제16대 왕 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인조대왕실록’이다. 1623년(인조 1) 3월 13일부터 1649년(인조 27) 5월 8일까지 인조 재위 약 27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인조실록 (仁祖實錄)
『인조실록』은 조선 후기 제16대 왕 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인조대왕실록’이다. 1623년(인조 1) 3월 13일부터 1649년(인조 27) 5월 8일까지 인조 재위 약 27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에서 발생한 여객선 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西海 Ferry號 沈沒事故)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에서 발생한 여객선 사고.
『문종실록』은 조선 전기 제5대 왕 문종 재위 기간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문종공순대왕실록(文宗恭順大王實錄)’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2월 18일부터 1452년(문종 2) 5월 21일까지 문종 재위 약 3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문종실록 (文宗實錄)
『문종실록』은 조선 전기 제5대 왕 문종 재위 기간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문종공순대왕실록(文宗恭順大王實錄)’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2월 18일부터 1452년(문종 2) 5월 21일까지 문종 재위 약 3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중종실록』은 제11대 왕 중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실록(中宗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實錄)’이다. 1506년(중종 1) 9월 2일부터 1544년(중종 39) 12월 30일까지 중종 재위 39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105권에는 인종(仁宗)이 즉위한 1544년 11월 16일부터 12월 말일까지의 기사가 합편되어 있다.
중종실록 (中宗實錄)
『중종실록』은 제11대 왕 중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중종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실록(中宗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實錄)’이다. 1506년(중종 1) 9월 2일부터 1544년(중종 39) 12월 30일까지 중종 재위 39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105권에는 인종(仁宗)이 즉위한 1544년 11월 16일부터 12월 말일까지의 기사가 합편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성수대교 (聖水大橋)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은 『현종실록』을 추후에 수정한 역사서이다. 모두 28권 29책의 활자본으로, 조선시대 다른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현종실록』을 개수한 뒤에도 그대로 남겨놓아 당대의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현종개수실록 (顯宗改修實錄)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은 『현종실록』을 추후에 수정한 역사서이다. 모두 28권 29책의 활자본으로, 조선시대 다른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현종실록』을 개수한 뒤에도 그대로 남겨놓아 당대의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창인동에 있는 기차역.
익산역 (益山驛)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창인동에 있는 기차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