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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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사고 (史庫)
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만사고』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 심지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시문 외에 저자가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을 때의 여정을 기록한 「연행일승」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저자 사후 손자인 심정최가 유고를 정리하고 교정하여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만사고 (晩沙稿)
『만사고』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 심지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시문 외에 저자가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을 때의 여정을 기록한 「연행일승」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저자 사후 손자인 심정최가 유고를 정리하고 교정하여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했다.
마니산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국가 주요 사적을 보관하던 강화도의 외사고(外史庫)이다. 임진왜란 이후 새롭게 제작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4곳의 외사고 설치가 추진됨에 따라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 사고가 신설되어 실록의 원본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다만, 최근의 연구를 통해 마니산사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지적됨에 따라, 정족산사고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강화도의 사고는 강화부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마니산사고 (摩尼山史庫)
마니산사고는 실록을 비롯한 국가 주요 사적을 보관하던 강화도의 외사고(外史庫)이다. 임진왜란 이후 새롭게 제작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4곳의 외사고 설치가 추진됨에 따라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 사고가 신설되어 실록의 원본을 보관하였던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다만, 최근의 연구를 통해 마니산사고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지적됨에 따라, 정족산사고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강화도의 사고는 강화부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충주사고 (忠州史庫)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이리역 폭발 사고 (裡里驛 爆發 事故)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이리역(현 익산역)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에서 발생한 여객선 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西海 Ferry號 沈沒事故)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위도에서 발생한 여객선 사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해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인정하는 법률이다. 교통사고 피해를 신속히 회복하고 국민의 편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 법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타인의 생명과 재물의 손괴를 야기하지 아니한다는 통념 하에 공익적 목적에서 인정된 위험의 원칙과 경미 범죄 비범죄화의 추세에 의한 처벌의 특례를 규정하였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交通事故處理 特例法)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해 형사처벌 등의 특례를 인정하는 법률이다. 교통사고 피해를 신속히 회복하고 국민의 편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 법은 고의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타인의 생명과 재물의 손괴를 야기하지 아니한다는 통념 하에 공익적 목적에서 인정된 위험의 원칙과 경미 범죄 비범죄화의 추세에 의한 처벌의 특례를 규정하였다.
각화사(覺華寺)는 통일신라 때 원효가 창건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覺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1606년(선조 39) 태백산사고를 건립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각화사가 그 수호사찰이 되었으며 이후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는 국내 3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1988년 사고 건물을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중요 문화유산으로는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귀부와 삼층석탑이 있다.
각화산 각화사 (覺華山 覺華寺)
각화사(覺華寺)는 통일신라 때 원효가 창건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覺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1606년(선조 39) 태백산사고를 건립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각화사가 그 수호사찰이 되었으며 이후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는 국내 3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1988년 사고 건물을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중요 문화유산으로는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귀부와 삼층석탑이 있다.
『간재집』은 1927년 조선 후기 학자 전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논산 용동에서 간행된 총 52책의 방대한 목판본이다. 저자 생전과 사후에 걸쳐 제자들이 수차례에 걸쳐 편찬한 전고·후고·재후고·별고 등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4,000여 편의 서간문을 통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학술 교류와 시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유학의 종합적 성과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간재집 (艮齋集)
『간재집』은 1927년 조선 후기 학자 전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논산 용동에서 간행된 총 52책의 방대한 목판본이다. 저자 생전과 사후에 걸쳐 제자들이 수차례에 걸쳐 편찬한 전고·후고·재후고·별고 등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4,000여 편의 서간문을 통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학술 교류와 시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유학의 종합적 성과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 후기에, 검열, 예문관봉교, 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민진형 (閔震炯)
조선 후기에, 검열, 예문관봉교, 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 사고(史庫)와 선원각(璿源閣)을 지키기 위해 부근의 사찰 주지(住持)에게 수호하게 하고 내린 칭호.
사대사총섭 (四大寺摠攝)
조선 후기 사고(史庫)와 선원각(璿源閣)을 지키기 위해 부근의 사찰 주지(住持)에게 수호하게 하고 내린 칭호.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남고사지 (南固寺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문종실록』은 조선 전기 제5대 왕 문종 재위 기간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문종공순대왕실록(文宗恭順大王實錄)’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2월 18일부터 1452년(문종 2) 5월 21일까지 문종 재위 약 3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문종실록 (文宗實錄)
『문종실록』은 조선 전기 제5대 왕 문종 재위 기간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문종공순대왕실록(文宗恭順大王實錄)’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2월 18일부터 1452년(문종 2) 5월 21일까지 문종 재위 약 3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실록 (實錄)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실록청 (實錄廳)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실록의 열람이나 이동 사항에 대한 목적·절차·규정 등을 기록한 문서. 관문서.
실록형지안 (實錄形止案)
실록의 열람이나 이동 사항에 대한 목적·절차·규정 등을 기록한 문서. 관문서.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성수대교 (聖水大橋)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영수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한국 불교 교단사의 체계를 정립한 불교 사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중앙불교전문학교, 동국대, 원광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조선불교사개설』, 『해인사지』, 『실상사지』 등을 저술하였다. 한국 불교 종파와 교단의 역사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기여했다.
영수 (映遂)
영수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한국 불교 교단사의 체계를 정립한 불교 사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중앙불교전문학교, 동국대, 원광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조선불교사개설』, 『해인사지』, 『실상사지』 등을 저술하였다. 한국 불교 종파와 교단의 역사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기여했다.
조선 후기에, 서인이 집권하게 되자 낙향하여 궁핍하게 살아갔으며, 『하정선생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덕주 (李德胄)
조선 후기에, 서인이 집권하게 되자 낙향하여 궁핍하게 살아갔으며, 『하정선생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1455년(세조 즉위) 윤6월 11일부터 1468년(세조 14) 11월 28일까지 세조 재위 약 14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세조실록 (世祖實錄)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1455년(세조 즉위) 윤6월 11일부터 1468년(세조 14) 11월 28일까지 세조 재위 약 14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