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제5대 왕 문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서지 사항
편찬 및 간행 경위
『문종실록』은 1455년 11월에 완성되었는데, 그 사이 황보인 · 김종서 등이 죽고 수양대군이 감수 책임을 맡았다. 수양대군이 즉위한 이후에는 정인지가 감수의 책임을 맡았다. 이런 이유로 『문종실록』 말미의 부록에는, 편찬관으로 활동했던 사람을 모두 기록한다고 하여 정인지 이하의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다.
편찬이 완료되자 다음 달 실록각(實錄閣)에 봉안하고 의정부에서 수찬관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도승지 박원형과 좌부승지 성삼문에게 명해 술을 하사하게 하고, 환관 전균(田畇)을 시켜 향온(香醞) · 장록(獐鹿) · 감귤(柑橘) 등도 하사하였다.
1473년(성종 4) 6월 『세종실록』 · 『세조실록』 · 『예종실록』과 함께 활자로 인쇄되었다. 이에 종사한 책임자로 춘추관당상관인 신숙주 · 한명회 · 최항과 강희맹 · 양성지에게 각각 말 한 필씩이 하사되고, 감인관(監印官)들에게도 호랑이 가죽과 사슴 가죽이 하사되었다.
편찬관 및 특징
현존하는 『문종실록』은 문종 1년 12월과 다음해 1월의 두 달 분 기록에 해당하는 제11권이 빠져 있다. 이러한 오류는 1600년(선조 33) 8월, 묘향산의 실록을 살핀 예문관대교(藝文館待敎) 권태일(權泰一)이 처음 발견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춘추관사고 · 성주사고 · 충주사고가 불타고, 전주사고의 실록만 남아 묘향산으로 옮겨졌는데, 전주사고본 『문종실록』 11권의 표지와 내용이 다른 실록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표지에는 11권이라 되어 있는데, 그 안의 내용은 9권이어서 실제로는 11권이 없고 9권이 중첩되었던 것이었다. 이에 대해 권태일은 인쇄하여 각 사고에 나누어 보관할 때 착오가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인쇄한 후 제본하는 과정에서 표지를 잘못 붙인 착오분이 전주사고에 보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 때 인쇄 봉안한 이후 당시 오류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하는 실록 관련 각종 형지안(形止案)으로 볼 때, 임진왜란 이후 실록이 재출판되던 1606년(선조 39) 사이에 없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구성과 내용
현황
참고문헌
원전
- 『세종실록』
- 『문종실록』
- 『단종실록』
- 『세조실록』
단행본
- 김경수, 『조선시대의 사관연구』(국학자료원, 1998)
- 배현숙, 『조선실록 연구서설』(태일사, 2002)
- 오항녕, 『한국 사관제도 성립사연구』(한국연구원, 2003)
- 이성무,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동방미디어, 1999)
논문
- 강문식, 「『조선왕조실록』 연구의 현황」(『조선시대사학보』 74, 조선시대사학회, 2015)
- 신석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사총』 5, 고대사학회, 1960)
- 신석호, 「태조실록해제」(『태조강헌대왕실록』 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 신석호, 「태종실록해제」(『태종공정대왕실록』 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 정구복, 「조선초기 춘추관의 실록 편찬」(『허선도정년기념사학논총』, 1987)
- 차용걸, 「실록·사관·사고에 대하여」(『사고지조사보고서』, 국사편찬위원회, 1986)
- 차용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태도와 사관의 역사인식」(『한국사론』 6, 서울대학교 한국사학회, 1979)
인터넷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소개」(http://sillok.history.g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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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인쇄한 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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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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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실어다가 바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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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조선 시대에, 죄과 혹은 신분의 허물이 있는 사람을 벼슬에 쓰지 않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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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죄를 지어 면관(免官)되었던 사람을 다시 벼슬자리에 등용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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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멥쌀과 찹쌀을 쪄서 식힌 것에 보리와 녹두를 섞어 만든 누룩을 넣어 담근 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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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시대에 둔 춘추관의 정이품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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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조선 시대에, 춘추관에 속한 종이품 벼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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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권두 서명: 책 본문 첫머리에 쓴 책의 제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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