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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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자 김사엽이 국문학의 성립과 발달사를 정리하여 1956년에 간행한 학술서. 국문학사서.
개고국문학사 (改稿國文學史)
국문학자 김사엽이 국문학의 성립과 발달사를 정리하여 1956년에 간행한 학술서. 국문학사서.
조선 후기, 미상 인물의 상량문·시·제문·축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가헌집 (稼軒集)
조선 후기, 미상 인물의 상량문·시·제문·축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홍여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93년에 간행한 시문집.
목재문집 (木齋文集)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홍여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93년에 간행한 시문집.
공장부(工匠府)는 통일신라시대에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때 전사서(典祀署)로 관호를 바꾸었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 다시 공장부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경덕왕 18년(759) 정월 기록에 전사서와 공장부를 함께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를 경덕왕 때에 전사서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 직관지의 오기로,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개의 관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장부 (工匠府)
공장부(工匠府)는 통일신라시대에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때 전사서(典祀署)로 관호를 바꾸었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 다시 공장부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경덕왕 18년(759) 정월 기록에 전사서와 공장부를 함께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를 경덕왕 때에 전사서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 직관지의 오기로,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개의 관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강서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서 사서오경에 대한 이해를 구두(口頭)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강서에도 난이도와 중요성에 따라서 서적을 펴놓고 읽으면서 뜻을 해석하는 임문(臨文), 책을 보지 않고 뜻을 해석하는 배강(背講), 책을 보지 않고 글을 외우게 하는 배송(背誦) 등으로 구분하였다. 배송으로 시험본 책은 문과 식년시 복시에서의 사서오경과 명경시에서의 사서오경, 잡과 중 의과에서 중국 의서인 『찬도맥』과 『동인경』 등이었다.
강서 (講書)
강서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에서 사서오경에 대한 이해를 구두(口頭)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강서에도 난이도와 중요성에 따라서 서적을 펴놓고 읽으면서 뜻을 해석하는 임문(臨文), 책을 보지 않고 뜻을 해석하는 배강(背講), 책을 보지 않고 글을 외우게 하는 배송(背誦) 등으로 구분하였다. 배송으로 시험본 책은 문과 식년시 복시에서의 사서오경과 명경시에서의 사서오경, 잡과 중 의과에서 중국 의서인 『찬도맥』과 『동인경』 등이었다.
『광재물보』는 사물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한글과 한문으로 설명한 어휘집이다. 1798년 간행된 『재물보』를 확대한 것으로 볼 때 그보다 후대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4권 4책 필사본이다. 각 권은 천도부·예절부·화부 등 각각의 부를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 사물 명칭을 풀이하였다. 세상만물을 자연세계, 인간세계, 사물의 세계로 분류하고 있다. 항목을 한글과 한문으로 풀이하고, 이칭과 별칭을 들었다. 대체로 20세기 초 국어 표기 원칙에 따르고 있는 듯하다. 방대한 어휘가 수록되어 당시의 언어 연구, 차용어 및 외래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광재물보 (廣才物譜)
『광재물보』는 사물을 항목별로 분류하여 한글과 한문으로 설명한 어휘집이다. 1798년 간행된 『재물보』를 확대한 것으로 볼 때 그보다 후대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4권 4책 필사본이다. 각 권은 천도부·예절부·화부 등 각각의 부를 세부 항목으로 나누어 사물 명칭을 풀이하였다. 세상만물을 자연세계, 인간세계, 사물의 세계로 분류하고 있다. 항목을 한글과 한문으로 풀이하고, 이칭과 별칭을 들었다. 대체로 20세기 초 국어 표기 원칙에 따르고 있는 듯하다. 방대한 어휘가 수록되어 당시의 언어 연구, 차용어 및 외래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해서장(大慧書狀)』은 송나라 임제종 승려 대혜종고가 42명의 제자 및 신도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62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대혜서(大慧書)』, 『서장(書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임제 간화선을 정립한 종고의 사상을 담고 있어,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중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승려들의 교육과정인 이력(履歷)의 교재로 채택되어 널리 읽혔다.
대혜서장 (大慧書狀)
『대해서장(大慧書狀)』은 송나라 임제종 승려 대혜종고가 42명의 제자 및 신도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62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대혜서(大慧書)』, 『서장(書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임제 간화선을 정립한 종고의 사상을 담고 있어,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중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승려들의 교육과정인 이력(履歷)의 교재로 채택되어 널리 읽혔다.
『고려사』는 조선전기 문신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이다. 세종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문종 원년에 편찬된 기전체의 관찬사서이다. 태조에서 공양왕까지 32명의 왕의 연대기인 세가 46권, 천문지에서 형법지까지 10조목의 지 39권, 연표 2권, 1,008명의 열전 50권, 목록 2권을 합해 총 139권 75책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건국의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고려 무신정권기에서 우왕·창왕까지의 폐정을 권계하고 교훈을 찾으려는 목적에서 편찬되었지만 사료 선택의 엄정성과 객관적 서술 태도를 유지하였다.
고려사 (高麗史)
『고려사』는 조선전기 문신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이다. 세종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문종 원년에 편찬된 기전체의 관찬사서이다. 태조에서 공양왕까지 32명의 왕의 연대기인 세가 46권, 천문지에서 형법지까지 10조목의 지 39권, 연표 2권, 1,008명의 열전 50권, 목록 2권을 합해 총 139권 75책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건국의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고려 무신정권기에서 우왕·창왕까지의 폐정을 권계하고 교훈을 찾으려는 목적에서 편찬되었지만 사료 선택의 엄정성과 객관적 서술 태도를 유지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신, 신개·권제 등이 고려시대 역사를 엮어 편년체로 편찬하였으나, 인물평가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포가 중단된 역사서.
고려사전문 (高麗史全文)
조선 전기의 문신, 신개·권제 등이 고려시대 역사를 엮어 편년체로 편찬하였으나, 인물평가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포가 중단된 역사서.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고려실록 (高麗實錄)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조선후기 승려 유일이 송나라 승려 대혜의 『서장』을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서장사기 (書狀私記)
조선후기 승려 유일이 송나라 승려 대혜의 『서장』을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삼국사절요는 조선전기 서거정·노사신 등이 단군조선에서 삼국의 멸망까지를 서술하여 1476년에 편찬한 역사서이다. 표문에는 총 14권으로 되어 있지만 삼국시대 이전 시기는 별도로 작성되어 실제는 15권이다. 세조의 『동국통감』의 편찬 명령으로 시작하여 신숙주, 이파 등이 참여하여 성종 때 마무리되었다. 편년체로 서술되었으며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삼국유사』·『수이전』 등을 참고하여 서술하였다. 삼국사절요는 조선시대 삼국사 서술의 기본틀이 되었다는 점과 『삼국사기』에 이용되지 않은 자료를 보완한 점 등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국사절요 (三國史節要)
삼국사절요는 조선전기 서거정·노사신 등이 단군조선에서 삼국의 멸망까지를 서술하여 1476년에 편찬한 역사서이다. 표문에는 총 14권으로 되어 있지만 삼국시대 이전 시기는 별도로 작성되어 실제는 15권이다. 세조의 『동국통감』의 편찬 명령으로 시작하여 신숙주, 이파 등이 참여하여 성종 때 마무리되었다. 편년체로 서술되었으며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삼국유사』·『수이전』 등을 참고하여 서술하였다. 삼국사절요는 조선시대 삼국사 서술의 기본틀이 되었다는 점과 『삼국사기』에 이용되지 않은 자료를 보완한 점 등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경은 조선 초기,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 7월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제정할 때 강학(講學)과 시위(侍衛) 등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기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사경과 우사경을 1명씩 두었다. 문종 대부터 사경이 경연에도 자주 참여하면서 『경국대전』에 세자시강원 사경은 정6품의 사서로 바뀌고 사경은 경연의 정7품 관직으로 수록되어 있다.
사경 (司經)
사경은 조선 초기, 세자시강원의 정6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 7월에 문무백관의 관제를 제정할 때 강학(講學)과 시위(侍衛) 등의 일을 겸하여 관장하기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 가운데 정6품의 좌사경과 우사경을 1명씩 두었다. 문종 대부터 사경이 경연에도 자주 참여하면서 『경국대전』에 세자시강원 사경은 정6품의 사서로 바뀌고 사경은 경연의 정7품 관직으로 수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시정(時政)의 기록을 관장하던 관청.
사관 (史館)
고려시대 시정(時政)의 기록을 관장하던 관청.
조사시찰단은 1881년(고종 18) 4월 10일부터 윤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던 문물시찰단이다. 당시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일본의 국정과 문물을 탐방하기 위해 12명의 전문위원을 비롯해 12반 총 6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암행어사의 자격을 유지하며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행동하였다. 비용은 전적으로 조선 정부가 부담하고 일본에도 출발 이후 통보하는 등 자주성 유지에 노력했다. 전문위원들은 분야를 나누어 각기 국정 시찰을 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사시찰단의 활동은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국내 개화세력의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조사시찰단 (朝士視察團)
조사시찰단은 1881년(고종 18) 4월 10일부터 윤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던 문물시찰단이다. 당시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일본의 국정과 문물을 탐방하기 위해 12명의 전문위원을 비롯해 12반 총 6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암행어사의 자격을 유지하며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행동하였다. 비용은 전적으로 조선 정부가 부담하고 일본에도 출발 이후 통보하는 등 자주성 유지에 노력했다. 전문위원들은 분야를 나누어 각기 국정 시찰을 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사시찰단의 활동은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국내 개화세력의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어윤중은 개항기 조사시찰단 조사, 동래암행어사, 탁지부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8년 칠석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청나라에 파견되었고, 초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93년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동학교도를 ‘민당(民黨)’이라고 지칭하는 등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아관파천으로 갑오경장 내각이 붕괴한 후 국외로 망명하지 않고 보은으로 피신하였다가 향반 무리의 기습으로 피살되었다.
어윤중 (魚允中)
어윤중은 개항기 조사시찰단 조사, 동래암행어사, 탁지부대신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896년(고종 33)에 사망했다. 1868년 칠석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1년 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청나라에 파견되었고, 초기 개화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893년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동학교도를 ‘민당(民黨)’이라고 지칭하는 등 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아관파천으로 갑오경장 내각이 붕괴한 후 국외로 망명하지 않고 보은으로 피신하였다가 향반 무리의 기습으로 피살되었다.
신라시대의 관서.
예부 (禮部)
신라시대의 관서.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신채호의 한국고대사에 관련된 6편의 논문을 수록하여 1929년에 간행한 학술서.
조선사연구초 (朝鮮史硏究草)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신채호의 한국고대사에 관련된 6편의 논문을 수록하여 1929년에 간행한 학술서.
조선 중기에, 집경전참봉, 종묘서직장, 세자익위사부수, 영춘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주역질의』, 『사서질의』, 『계산기선록』 등을 저술한 학자.
이덕홍 (李德弘)
조선 중기에, 집경전참봉, 종묘서직장, 세자익위사부수, 영춘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주역질의』, 『사서질의』, 『계산기선록』 등을 저술한 학자.
장복추는 조선 후기에 유학의 전통성 유지에 힘쓴 영남 지방의 유학자로, 『태극도설문답』, 『숙흥야매잠집설』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15년 출생으로 경북 예천 출신이다. 1859년 유학의 기본 골격을 정리한 후, 앞으로의 학문 방향을 설정하였다. 1862년 민란이 발생하자 몸소 현장에 뛰어들어 난민들을 설득해 안정을 회복시켰다. 우산서원이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자 복건을 앞장서 주청하는 등 유학의 전통성 유지와 실천에 힘쓴 정통 유학자였다. 일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영남 유학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계속 재야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장복추 (張福樞)
장복추는 조선 후기에 유학의 전통성 유지에 힘쓴 영남 지방의 유학자로, 『태극도설문답』, 『숙흥야매잠집설』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15년 출생으로 경북 예천 출신이다. 1859년 유학의 기본 골격을 정리한 후, 앞으로의 학문 방향을 설정하였다. 1862년 민란이 발생하자 몸소 현장에 뛰어들어 난민들을 설득해 안정을 회복시켰다. 우산서원이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자 복건을 앞장서 주청하는 등 유학의 전통성 유지와 실천에 힘쓴 정통 유학자였다. 일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영남 유학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계속 재야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