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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해서장(大慧書狀)』은 송나라 임제종 승려 대혜종고가 42명의 제자 및 신도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62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대혜서(大慧書)』, 『서장(書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임제 간화선을 정립한 종고의 사상을 담고 있어,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중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승려들의 교육과정인 이력(履歷)의 교재로 채택되어 널리 읽혔다.
#저자 및 편자 『대해서장(大慧書狀)』 저자의 법명은 종고(宗杲), 존호는 대혜(大慧), 시호는 보각(普覺)이다. 1089년(송 원우 4) 선주(宣州) 영국현(寧國縣)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해(奚)씨, 자는 담회(曇晦), 호는 묘희(妙喜), 운문(雲門)이다. 출가 후 담당문준(湛堂文準)에게서 수학했고, 원오극근(圜悟克勤)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1137년 항주(杭州) 경산(徑山) 능인사(能仁寺)에서 선종을 선양하여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찾아와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정치적인 문제로 승려로서의 신분도 박탈당하고 14년간 유배형을 받기도 했다. 『대혜서장』에 수록된 대부분의 편지는 귀양 기간에 작성한 것이다. 사면을 받은 뒤 묘희사(妙喜寺)에 돌아와 효종(孝宗)에게 설법을 했고, 1163년 입적하였다. 1163년 세수 75세, 법랍 58세로 입적했으며, 어록이 전한다. 종고는 금의 침략으로 남송이 시작되던 정치적 혼란기를 살았던 인물로, 사대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현실 참여적인 성격이 강했던 선승이다. 간화선을 집대성한 인물로, 간화선의 경직화를 경계하며 스승인 원오극근의 『벽암록(碧巖錄)』을 불태우기도 했다. 종고 이후 임제 간화선이 선의 주류를 이루었고, 고려 후기 이래로 한국 선종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서지 사항
『대해서장(大慧書狀)』은 1책이며 11행 20자, 책 크기는 25.2x15.5cm이다. 광곽은 사주 단변이며 계선은 없다. 1166년 송나라 항주 묘희암에서 간행할 당시의 간기와 1387년 고려에서 간행하면서 작성한 간기 및 이색(李穡)이 쓴 발문(跋文)과 시주자 명단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대혜 종고가 입적한 뒤 30권으로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이 편찬되었는데, 이 가운데 권25~권30만을 따로 뽑아 『대혜서장』으로 편찬하였다. 『대혜서장』의 편찬은 종고의 제자 혜연(慧然)과 거사 황문창(黃文昌)이 주관하였으며, 황제의 명으로 1166년 항주 경산 묘희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후기에 전래되어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1387년(우왕 13) 승려 지담(志淡)과 각전(覺全)이 보조국사 지눌의 뜻을 추모하며 간행한 것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승려뿐만 아니라 우왕의 왕비 근비 이씨(謹妃 李氏), 환관 강인부(姜仁富), 판사 이세진(李世珍) 등 왕실과 중앙 관료들이 간행에 참여했으며 이색이 발문을 썼다. 조선 전기 국립중앙박물관본과 동일한 판본을 여러 사찰에서 복각하여 간행했고, 조선 중기 이후 새로 판하본을 만들어 간행하였다. 조선시대 간행본으로는 다음이 있다. 1537년(중종 32) 경상도 지리산 신흥사(神興寺)본, 1545년(인종 1) 함경도 홍원 묘봉암(妙峰庵)본, 1546년(명종 1) 황해도 학봉산 석두사(石頭寺)본, 1568년(선조 1) 전라도 장흥 천관사(天冠寺)본, 1574년(선조 7) 황해도 문화 월정사(月精寺)본, 1576년(선조 9) 전라도 대웅산 안심선원(安心禪院)본, 1604년(선조 37) 경상도 산청 능인암(能仁庵)본, 1630년(인조 8) 평안도 성천 영천사(靈泉寺)본, 1633년(인조 11) 함경도 안변 석왕사(釋王寺)본, 1728년(영조 4) 평안도 영변 보현사(普賢寺)본 등이 있다.
구성과 내용
승속의 제자 및 신도들과 교환한 서신 6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승려 2인과 여성 1인을 제외하면 모두 사대부들과 교환한 서신으로, 내용은 이들의 질문에 대한 종고의 답신이다. 대부분 종고의 답신만 수록되어 있지만 참정(叅政) 이한로(李漢老)에게 보낸 편지 등처럼 종고가 받았던 질문도 함께 수록된 경우도 있다. 대개 일념으로 화두(話頭)를 참구하고 대원(大願)을 세울 것, 정식(情識)을 놓아 버릴 것, 단상이견(斷常二見)에 떨어지지 말고 활구(活句)를 참구할 것, 조용한 곳에서보다 시끄러운 곳의 공부가 더 효과가 있으며, 방편(方便)을 좇아 도(道)에 들어간 뒤 방편을 버릴 것, 깨달음을 조속히 이루려고 하지 말 것, 도를 깨친 사람은 반드시 보임(保任)을 할 것, 지해(知解)에 끄달리지 말 것 등 화두참구나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둔한 사람이 총명에 사로잡힌 사람보다 공부를 착실히 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히고, 도의 깨침은 신심(信心)에 달려 있음을 밝혔으며, 묵조선(默照禪)에 빠져들지 말 것을 당부하고, 무자화두(無字話頭)를 참구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등 간화선을 강조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대혜의 사상은 고려시대 이후 한국 선종의 전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고려 후기 수선사를 개창한 보조 지눌은 『육조단경(六祖壇經)』‚ 『화엄론(華嚴論)』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깨달음을 얻은 뒤 마지막으로 『대혜어록』을 통해 그의 깨달음을 완성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 이력에서 사집과(四集科)의 하나로 채택되어 승려들의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인악의첨(仁岳義沾)이나 연담유일(蓮潭有一) 등이 서장사기(書狀私記)를 저술하기도 했다. 이 책은 고려시대 이후 한국 선종 사상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