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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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덕천고 (德泉庫)
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한제국기 제26대 고종 때 궁중 악사 책임자인 초대 국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 가야금명인.
김종남 (金宗南)
대한제국기 제26대 고종 때 궁중 악사 책임자인 초대 국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 가야금명인.
일제강점기 조선정악전습소에서 활동한 음악인. 가야금명인.
명완벽 (明完璧)
일제강점기 조선정악전습소에서 활동한 음악인. 가야금명인.
경공장은 왕실과 정부 관서에 소속되어 무기 제조와 궁궐 영건, 왕실에 진상하는 각종 수공품을 제작하던 장인층을 일컫는다. 조선 초 관제 개혁 과정에서 고려시대 사원 노비 중 일부와 왕실용 세공품을 제작하던 숙련공들을 경공장으로 편입시켰다. 또 지방 관아에서 뽑은 선상 노비 중 일부를 경공장으로 만들어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품을 제작하도록 했다. 조선 전기에는 30개 관청에 129종 2,795명의 경공장이 소속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경공장에 기반을 둔 수공업 제도는 점차 형해화되고 사장(私匠)을 고용하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경공장 (京工匠)
경공장은 왕실과 정부 관서에 소속되어 무기 제조와 궁궐 영건, 왕실에 진상하는 각종 수공품을 제작하던 장인층을 일컫는다. 조선 초 관제 개혁 과정에서 고려시대 사원 노비 중 일부와 왕실용 세공품을 제작하던 숙련공들을 경공장으로 편입시켰다. 또 지방 관아에서 뽑은 선상 노비 중 일부를 경공장으로 만들어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수공품을 제작하도록 했다. 조선 전기에는 30개 관청에 129종 2,795명의 경공장이 소속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경공장에 기반을 둔 수공업 제도는 점차 형해화되고 사장(私匠)을 고용하는 방식이 일반화됐다.
궁사전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왕실 재정을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고려 초기에는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장택(內莊宅)과 내고(內庫) 중에서 내장택에 지급되었으며, 고려 중기 이후 내장택이 소멸되자, 고려 말에는 내고가 발달해 설치된, 이른바 창고궁사(倉庫宮司) 에도 지급되었다. 창고궁사전이 지급된 곳을 이른바 오고칠궁(五庫七宮)이라고 하였다. 창고궁사전은 사전이었으므로 전주가 직접 답험(踏驗)과 수조(收租)를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면세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내수사전으로 흡수되면서 명칭이 소멸되었다.
궁사전 (宮司田)
궁사전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왕실 재정을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고려 초기에는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장택(內莊宅)과 내고(內庫) 중에서 내장택에 지급되었으며, 고려 중기 이후 내장택이 소멸되자, 고려 말에는 내고가 발달해 설치된, 이른바 창고궁사(倉庫宮司) 에도 지급되었다. 창고궁사전이 지급된 곳을 이른바 오고칠궁(五庫七宮)이라고 하였다. 창고궁사전은 사전이었으므로 전주가 직접 답험(踏驗)과 수조(收租)를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면세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내수사전으로 흡수되면서 명칭이 소멸되었다.
남북국시대 발해의 관직.
승 (丞)
남북국시대 발해의 관직.
송분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아버지 송송례와 더불어 임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주역으로서 출륙환도(出陸還都)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원간섭기에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에 다녀오고 일본원정 준비를 위해 경상도에 도지휘사로 파견되어 대대적인 전함건조를 실행하였으며, 원나라의 선무장군진변만호에 임명되는 등 충렬왕 측근에서 중요한 정치·군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송분 (宋玢)
송분은 1270년(원종 11) 무인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무신정권 종식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원간섭기에 첨의찬성, 선무장군진변만호, 지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아버지 송송례와 더불어 임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주역으로서 출륙환도(出陸還都)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원간섭기에 충렬왕을 호종하여 원에 다녀오고 일본원정 준비를 위해 경상도에 도지휘사로 파견되어 대대적인 전함건조를 실행하였으며, 원나라의 선무장군진변만호에 임명되는 등 충렬왕 측근에서 중요한 정치·군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제술업은 고려시대 과거에서 사장(詞章)에 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과목이다. 과거제는 무인의 기질이 컸던 호족을 약화시켜 중앙 집권화하려는 광종의 개혁 정치에서 비롯되었고, 과거의 여러 과목 중에서도 제술업은 가장 중요시되었다. 즉, 문한(文翰)을 통해 호족을 회유하고 외교를 위한 문인을 뽑을 필요성에서 설치되었다.
제술업 (製述業)
제술업은 고려시대 과거에서 사장(詞章)에 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과목이다. 과거제는 무인의 기질이 컸던 호족을 약화시켜 중앙 집권화하려는 광종의 개혁 정치에서 비롯되었고, 과거의 여러 과목 중에서도 제술업은 가장 중요시되었다. 즉, 문한(文翰)을 통해 호족을 회유하고 외교를 위한 문인을 뽑을 필요성에서 설치되었다.
함재운은 근대에 제2대 국악사장 및 초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이다. 1908년에 장례원의 제2대 국악사장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에 장례원의 업무가 이왕직으로 이관되고 악원의 조직이 아악부로 변경되었을 때 초대 아악사장을 맡았다. 인원 감축 혹은 해산 논의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전래의 황실 제례와 연향 등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 초창기 아악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함재운 (咸在韻)
함재운은 근대에 제2대 국악사장 및 초대 이왕직아악부 아악사장을 역임한 음악인이다. 1908년에 장례원의 제2대 국악사장으로 임명되었고, 1911년에 장례원의 업무가 이왕직으로 이관되고 악원의 조직이 아악부로 변경되었을 때 초대 아악사장을 맡았다. 인원 감축 혹은 해산 논의로 존립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전래의 황실 제례와 연향 등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 초창기 아악부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다.
조선후기 학자 이근중이 인도(人道)의 뜻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도설서. 유학서.
인도의 (人道義)
조선후기 학자 이근중이 인도(人道)의 뜻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도설서. 유학서.
구한말의 장악원과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 소속되어 있던 악원들의 인명록. 음악인명단.
장악원악원이력서 (掌樂院樂員履歷書)
구한말의 장악원과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에 소속되어 있던 악원들의 인명록. 음악인명단.
고려시대 왕실 재정을 관리하는 창고에 절급된 토지.
창고전 (倉庫田)
고려시대 왕실 재정을 관리하는 창고에 절급된 토지.
현일영은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주의 사진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각종 사진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개인적인 순수한 창작 사진 활동에 몰두하였으며, 아홉 번의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익숙한 한국인의 삶과 일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 사진 예술에 대한 기대를 가볍게 배반하는 방법을 통해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선보였다.
현일영 (玄一榮)
현일영은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주의 사진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두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각종 사진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개인적인 순수한 창작 사진 활동에 몰두하였으며, 아홉 번의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익숙한 한국인의 삶과 일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 사진 예술에 대한 기대를 가볍게 배반하는 방법을 통해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