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전"
검색결과 총 68건
고려는 918년 개성 출신 왕건이 건국하여 936년 후삼국을 통합한 뒤 1392년 멸망 때까지 34명의 왕씨 출신 국왕이 474년 동안 통치한 왕조이다. 고려 초에 광종의 과거제 시행, 성종의 체제 정비를 거쳐 문종 때 전성기에 도달하였다. 고려 중기에는 이자겸과 묘청 난, 무신정변, 하층민의 봉기, 대몽항쟁 등으로 기존 질서가 크게 변동되었다. 고려 후기에는 원 간섭기, 성리학 수용, 위화도 회군과 사전 개혁 등의 진통을 겪은 끝에 조선이 건국되었다.
고려 (高麗)
고려는 918년 개성 출신 왕건이 건국하여 936년 후삼국을 통합한 뒤 1392년 멸망 때까지 34명의 왕씨 출신 국왕이 474년 동안 통치한 왕조이다. 고려 초에 광종의 과거제 시행, 성종의 체제 정비를 거쳐 문종 때 전성기에 도달하였다. 고려 중기에는 이자겸과 묘청 난, 무신정변, 하층민의 봉기, 대몽항쟁 등으로 기존 질서가 크게 변동되었다. 고려 후기에는 원 간섭기, 성리학 수용, 위화도 회군과 사전 개혁 등의 진통을 겪은 끝에 조선이 건국되었다.
조선어학회사건은 1942년 10월부터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검거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만주사변 후 일제가 조선민족 말살을 위해 조선어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중에도 조선어학회는 민족정신의 상징인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편찬작업에 참가 중이던 교사 정태진을 취조하던 중에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낸 일제는 조선민족 노예화에 방해가 되는 단체를 해산시킬 꼬투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어학회 핵심 관련자들을 내란죄로 검거·기소함으로써 학회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조선어학회 사건 (朝鮮語學會 事件)
조선어학회사건은 1942년 10월부터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검거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만주사변 후 일제가 조선민족 말살을 위해 조선어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중에도 조선어학회는 민족정신의 상징인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편찬작업에 참가 중이던 교사 정태진을 취조하던 중에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낸 일제는 조선민족 노예화에 방해가 되는 단체를 해산시킬 꼬투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어학회 핵심 관련자들을 내란죄로 검거·기소함으로써 학회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과전법(科田法)은 고려 말 토지 제도 개혁 과정에서 제정된, 조선 초기 관직자들에 대한 수조지 분급을 규정한 제도이다. 고려 말에 사전이 혁파되고 과전법이 제정되는 과정은 조선 건국의 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 초기 토지 제도의 종합적인 면모를 넓은 의미에서 과전법 체제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과전법 (科田法)
과전법(科田法)은 고려 말 토지 제도 개혁 과정에서 제정된, 조선 초기 관직자들에 대한 수조지 분급을 규정한 제도이다. 고려 말에 사전이 혁파되고 과전법이 제정되는 과정은 조선 건국의 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 초기 토지 제도의 종합적인 면모를 넓은 의미에서 과전법 체제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전시과는 고려시대 국가에서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분급한 토지제도이다. 협의로는 문무 관료 및 직역(職役) 부담자에 대한 수조지(收租地) 분급을 규정한 토지제도를 의미하고, 광의로는 이 토지제도를 기축으로 구성된 토지 지배 관계의 광범한 체계를 의미한다. 농경지인 전지와 땔나무 등을 공급해 주는 시지를 아울러 분급했기 때문에 전시과라고 하였다.
전시과 (田柴科)
전시과는 고려시대 국가에서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분급한 토지제도이다. 협의로는 문무 관료 및 직역(職役) 부담자에 대한 수조지(收租地) 분급을 규정한 토지제도를 의미하고, 광의로는 이 토지제도를 기축으로 구성된 토지 지배 관계의 광범한 체계를 의미한다. 농경지인 전지와 땔나무 등을 공급해 주는 시지를 아울러 분급했기 때문에 전시과라고 하였다.
최영은 고려 후기 도형벽상1등공신, 진충분의좌명1등공신, 안사공신 등에 책록된 무신이다. 고려 말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공민왕을 시해하려던 흥왕사의 난, 덕흥군 옹립 시도 등을 평정하였다. 1388년(우왕 14) 문하시중으로서 염흥방·임견미 일당을 숙청하였고, 딸이 우왕의 비가 되었다. 명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하자 요동 정벌에 나섰으나 이성계 세력이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정벌은 중단되고 최영은 처형되었다.
최영 (崔瑩)
최영은 고려 후기 도형벽상1등공신, 진충분의좌명1등공신, 안사공신 등에 책록된 무신이다. 고려 말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공민왕을 시해하려던 흥왕사의 난, 덕흥군 옹립 시도 등을 평정하였다. 1388년(우왕 14) 문하시중으로서 염흥방·임견미 일당을 숙청하였고, 딸이 우왕의 비가 되었다. 명에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하자 요동 정벌에 나섰으나 이성계 세력이 위화도에서 회군함으로써 정벌은 중단되고 최영은 처형되었다.
공양왕은 고려시대 제34대(재위: 1389~1392) 왕이다. 고려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신종(神宗)의 7대손으로 이성계 세력이 창왕을 폐위하고 왕으로 옹립했다. 재위 기간 동안 관제 개편, 유학 진흥, 사원 재산 몰수, 한양 천도 시도, 과전법 실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이루어졌다.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정치적 분쟁 속에서 고려 왕실의 존속을 주장하던 정몽주가 살해되면서 이성계가 왕으로 추대되고 공양왕은 폐위되었다.
공양왕 (恭讓王)
공양왕은 고려시대 제34대(재위: 1389~1392) 왕이다. 고려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신종(神宗)의 7대손으로 이성계 세력이 창왕을 폐위하고 왕으로 옹립했다. 재위 기간 동안 관제 개편, 유학 진흥, 사원 재산 몰수, 한양 천도 시도, 과전법 실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이루어졌다. 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정치적 분쟁 속에서 고려 왕실의 존속을 주장하던 정몽주가 살해되면서 이성계가 왕으로 추대되고 공양왕은 폐위되었다.
한글학회는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세운 민족학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의 시초인 ‘가갸날’로 정하였다. 1928년에 착수한 『큰사전』 편찬 작업을 28년 만인 1957년 마무리 하였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41년에는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간행하였다. 광복을 맞은 후에는 교과서를 편찬·보급하였으며, 국어 교사를 양성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말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글학회 (한글學會)
한글학회는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세운 민족학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의 시초인 ‘가갸날’로 정하였다. 1928년에 착수한 『큰사전』 편찬 작업을 28년 만인 1957년 마무리 하였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41년에는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간행하였다. 광복을 맞은 후에는 교과서를 편찬·보급하였으며, 국어 교사를 양성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말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창왕은 고려 제33대(재위: 1388~1389) 왕이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 이후 왕위에서 물러난 우왕을 이어 9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왕이 직접 명나라 조정에 가는 것으로 왕위 계승을 인정받고자 했으나, 명 측에서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 1389년(창왕 1)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명분으로 폐위되었다가 강화에서 처형되었다. 재위 기간 중 조준(趙浚) 등이 전제(田制)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정책을 발의하였다.
창왕 (昌王)
창왕은 고려 제33대(재위: 1388~1389) 왕이다.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 이후 왕위에서 물러난 우왕을 이어 9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왕이 직접 명나라 조정에 가는 것으로 왕위 계승을 인정받고자 했으나, 명 측에서 허락하지 않는 가운데, 1389년(창왕 1)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명분으로 폐위되었다가 강화에서 처형되었다. 재위 기간 중 조준(趙浚) 등이 전제(田制)의 폐단을 개혁하기 위한 정책을 발의하였다.
음반 출반, 방송, 공연 등의 공적 발표가 금지된 노래.
금지곡 (禁止曲)
음반 출반, 방송, 공연 등의 공적 발표가 금지된 노래.
남북한의 국어학자들이 언어통일을 위해 공동으로 집필 중인 사전. 국어대사전.
겨레말큰사전 (겨레말큰辭典)
남북한의 국어학자들이 언어통일을 위해 공동으로 집필 중인 사전. 국어대사전.
일제의 대륙병참기지화 정책에 따라 실시된 전시 식량통제 정책.
식량배급제도 (食量配給制度)
일제의 대륙병참기지화 정책에 따라 실시된 전시 식량통제 정책.
민전은 고려시대에 민이 소유한 토지로 국가의 양전(量田)과 조세 수취, 수조권(收租權) 분급의 대상이 된 토지이다. 전시과 제도 아래에서 양반 관료에게 수조권이 분급되기도 한 토지를 가리킨다. 통일신라 연수유전답(烟受有田畓)의 성격을 계승하여 국가 수조지라는 측면에서 공전으로 파악되기도 하고, 소유권적 의미에서 민의 소유 토지로서 민전이라고 파악되기도 하였다.
민전 (民田)
민전은 고려시대에 민이 소유한 토지로 국가의 양전(量田)과 조세 수취, 수조권(收租權) 분급의 대상이 된 토지이다. 전시과 제도 아래에서 양반 관료에게 수조권이 분급되기도 한 토지를 가리킨다. 통일신라 연수유전답(烟受有田畓)의 성격을 계승하여 국가 수조지라는 측면에서 공전으로 파악되기도 하고, 소유권적 의미에서 민의 소유 토지로서 민전이라고 파악되기도 하였다.
과전은 1391년(공양왕 3)에 사전 개혁(私田改革)을 거쳐 제정된 과전법에 따라 양반 관료에게 지급한 분급 수조지이다. 과전이 지급됨으로써 관료는 안정적인 관직 생활과 신분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이성계와 신진사류는 이를 통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전은 태종 대부터 토지 부족과 재정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축소되었으며, 1466년(세조 12),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으로 변경되었다가 명종 대 이후에는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과전 (科田)
과전은 1391년(공양왕 3)에 사전 개혁(私田改革)을 거쳐 제정된 과전법에 따라 양반 관료에게 지급한 분급 수조지이다. 과전이 지급됨으로써 관료는 안정적인 관직 생활과 신분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이성계와 신진사류는 이를 통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전은 태종 대부터 토지 부족과 재정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축소되었으며, 1466년(세조 12),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으로 변경되었다가 명종 대 이후에는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궁방전이란 조선 후기에 왕실의 궁(宮)이나 방(房)이 소유 또는 수조하던 토지이다. 일명 궁장토(宮庄土)라고 하며, 통상적으로 내수사전(內需司田)을 포함하여 지칭하므로 사궁장토(司宮庄土)라고도 하였다. 궁방전은 출세결과 면세결로 구분되며, 면세결은 다시 유토면세(有土免稅)와 무토면세(無土免稅)로 나뉜다.
궁방전 (宮房田)
궁방전이란 조선 후기에 왕실의 궁(宮)이나 방(房)이 소유 또는 수조하던 토지이다. 일명 궁장토(宮庄土)라고 하며, 통상적으로 내수사전(內需司田)을 포함하여 지칭하므로 사궁장토(司宮庄土)라고도 하였다. 궁방전은 출세결과 면세결로 구분되며, 면세결은 다시 유토면세(有土免稅)와 무토면세(無土免稅)로 나뉜다.
1963년 이홍직이 편찬한 한국사 사전.
국사대사전 (國史大事典)
1963년 이홍직이 편찬한 한국사 사전.
농장은 권세가들이 사사로이 차지하고 있던 대규모의 농업용 토지이다. 전장(田莊), 전장(田庄), 전원, 농장이라고 한다. 무신정권의 출현과 몽골의 침입 등으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전시과 체제가 붕괴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농장은 불법적인 탈점(奪占)을 전제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국가 재정을 파괴하고 민생에 해독을 끼쳤다. 그러나 농장에 수용된 몰락 농민이 농장주와 지대를 주고받는 생산관계를 형성하면서 경제적 차원의 합법적 경영으로 변화되었다. 이후 농장의 경영으로 대표되는 지주적 토지지배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농장 (農莊)
농장은 권세가들이 사사로이 차지하고 있던 대규모의 농업용 토지이다. 전장(田莊), 전장(田庄), 전원, 농장이라고 한다. 무신정권의 출현과 몽골의 침입 등으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전시과 체제가 붕괴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농장은 불법적인 탈점(奪占)을 전제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국가 재정을 파괴하고 민생에 해독을 끼쳤다. 그러나 농장에 수용된 몰락 농민이 농장주와 지대를 주고받는 생산관계를 형성하면서 경제적 차원의 합법적 경영으로 변화되었다. 이후 농장의 경영으로 대표되는 지주적 토지지배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국가나 민간 기관이 국민이 사용하는 말을 통일·발전시키려는 정책.
언어 정책 (言語 政策)
국가나 민간 기관이 국민이 사용하는 말을 통일·발전시키려는 정책.
사전(賜田)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국왕이 신하에게 특별히 지급한 토지이다. 고려 초부터 공을 세운 신하에게 사전이 지급되었다. 고려 후기 사전은 사패전(賜牌田)이 주종이라 할 수 있는데 공신사패전 · 개간사패전이 지급되었으며, 공신사패전은 원 간섭기에 왕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조선 초기 사전의 변화는 공신전 가운데 사패를 받지 못한 공신전이 있었고, 별사전 가운데 사패를 받은 별사전이 나타났다.
사전 (賜田)
사전(賜田)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국왕이 신하에게 특별히 지급한 토지이다. 고려 초부터 공을 세운 신하에게 사전이 지급되었다. 고려 후기 사전은 사패전(賜牌田)이 주종이라 할 수 있는데 공신사패전 · 개간사패전이 지급되었으며, 공신사패전은 원 간섭기에 왕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조선 초기 사전의 변화는 공신전 가운데 사패를 받지 못한 공신전이 있었고, 별사전 가운데 사패를 받은 별사전이 나타났다.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은 가산(伽山) 이지관(李智冠, 1932~2012)이 설립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이 15만여 항목의 불교 술어를 집대성하여 간행한 불교 종합 대백과사전이다. ‘일반 불교 및 한국 불교 술어를 최초로 결집’했다고 평가 받는 『가산불교대사림』은 기존의 불교 사전보다 한국 불교 항목을 30% 가량을 더 추가한 대항목 사전이다. 불교 사상과 불교 문화 전반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민족의 주체성을 자각하고 세계의 보편적 시각으로 불교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하고자 하였다.
가산불교대사림 (伽山佛敎大辭林)
『가산불교대사림(伽山佛敎大辭林)』은 가산(伽山) 이지관(李智冠, 1932~2012)이 설립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이 15만여 항목의 불교 술어를 집대성하여 간행한 불교 종합 대백과사전이다. ‘일반 불교 및 한국 불교 술어를 최초로 결집’했다고 평가 받는 『가산불교대사림』은 기존의 불교 사전보다 한국 불교 항목을 30% 가량을 더 추가한 대항목 사전이다. 불교 사상과 불교 문화 전반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민족의 주체성을 자각하고 세계의 보편적 시각으로 불교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하고자 하였다.
양반전은 고려시대, 토지제도인 전시과(田柴科) 규정에 따라 문무(文武) 관료에게 지급한 토지이다. 양반과전(兩班科田)이라고도 부른다. 양반전은 관료가 국가에 봉사하는 대가로 지급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양반의 신분을 보장하고 유지하는 기능도 하였다. 양반전의 실체는 농민에게 전조를 수취할 수 있는 권리, 곧 수조권(收租權)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양반전 (兩班田)
양반전은 고려시대, 토지제도인 전시과(田柴科) 규정에 따라 문무(文武) 관료에게 지급한 토지이다. 양반과전(兩班科田)이라고도 부른다. 양반전은 관료가 국가에 봉사하는 대가로 지급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양반의 신분을 보장하고 유지하는 기능도 하였다. 양반전의 실체는 농민에게 전조를 수취할 수 있는 권리, 곧 수조권(收租權)을 부여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