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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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이다. 통일신라 말에 중창되어 고려 초에 큰 사찰이 되었다. 지증대사 도헌, 원공국사 지종, 정각국사 지겸 등이 주석하였으며 조선중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3층석탑, 원공국사 승묘탑비가 남아 있다.
현계산 거돈사지 (玄溪山 居頓寺址)
거돈사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이다. 통일신라 말에 중창되어 고려 초에 큰 사찰이 되었다. 지증대사 도헌, 원공국사 지종, 정각국사 지겸 등이 주석하였으며 조선중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3층석탑, 원공국사 승묘탑비가 남아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터.
합천 영암사지 (陜川 靈巖寺址)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사리감.
부여 능산리 사지 석조 사리감 (扶餘 陵山里 寺址 石造 舍利龕)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사리감.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쌍탑 중 동쪽의 불탑이다.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이다. 탑신부는 삼층 모두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되어 있다. 옥개석은 3층 모두 5단의 옥개받침을 두었으며, 상단에는 1단의 괴임을 두어 위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옥개받침 5단의 신라 석탑에서는 옥개석 상단 받침 1단은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으로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탑은 9세기 신라 석탑의 선두적 양식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山淸 斷俗寺址 東 三層石塔)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쌍탑 중 동쪽의 불탑이다.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이다. 탑신부는 삼층 모두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되어 있다. 옥개석은 3층 모두 5단의 옥개받침을 두었으며, 상단에는 1단의 괴임을 두어 위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옥개받침 5단의 신라 석탑에서는 옥개석 상단 받침 1단은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으로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탑은 9세기 신라 석탑의 선두적 양식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산청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쌍탑 중 서쪽의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상하층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올렸다. 탑신부는 삼층 모두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이며, 옥개석에는 5개의 옥개받침을 두었으며, 2단의 괴임을 두었다. 동탑에 비하면 기단부의 훼손 상태가 심하며 상륜부의 부재도 많이 결실되었다. 쌍탑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당시 석탑 건립에 분화된 직능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9세기 소형화되는 신라 석탑의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산청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 (山淸 斷俗寺址 西 三層石塔)
산청 단속사지 서 삼층석탑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쌍탑 중 서쪽의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상하층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올렸다. 탑신부는 삼층 모두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이며, 옥개석에는 5개의 옥개받침을 두었으며, 2단의 괴임을 두었다. 동탑에 비하면 기단부의 훼손 상태가 심하며 상륜부의 부재도 많이 결실되었다. 쌍탑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당시 석탑 건립에 분화된 직능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9세기 소형화되는 신라 석탑의 양식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서산시 보원사터에 있는 고려 시대 일반형 석조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원사는 백제 때의 절로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절터에 5층 석탑 외에 법인국사탑과 탑비, 당간지주, 석조 등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이중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올린 일반형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환되는 과정의 탑 형식을 보여준다. 아래층 기단에 사자상을, 위층 기단에 팔부중상을 새긴 것이 특징적이다. 백제계 양식과 신라계 양식이 동시에 나타난 석탑으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충청남도 서산시 보원사터에 있는 고려 시대 일반형 석조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원사는 백제 때의 절로 사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절터에 5층 석탑 외에 법인국사탑과 탑비, 당간지주, 석조 등이 남아 있다. 이 탑은 이중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올린 일반형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환되는 과정의 탑 형식을 보여준다. 아래층 기단에 사자상을, 위층 기단에 팔부중상을 새긴 것이 특징적이다. 백제계 양식과 신라계 양식이 동시에 나타난 석탑으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영암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귀부(龜趺).
합천 영암사지 귀부 (陜川 靈岩寺址 龜趺)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영암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귀부(龜趺).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터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조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진각국사혜심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월남사는 정유재란 시기에 큰 타격을 받은 뒤, 18세기에 폐사되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모전석탑 양식을 보이는 3층 석탑이다. 2층 이상의 탑신 높이가 일 층에 비해 크게 줄지 않은 점 등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탑임을 보여준다. 이 양식은 단순한 지역적 양식의 계승이 아니라 백제계 사찰의 확산에 기인함을 짐작할 수 있다.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사터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조 불탑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진각국사혜심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월남사는 정유재란 시기에 큰 타격을 받은 뒤, 18세기에 폐사되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모전석탑 양식을 보이는 3층 석탑이다. 2층 이상의 탑신 높이가 일 층에 비해 크게 줄지 않은 점 등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백제계열의 석탑임을 보여준다. 이 양식은 단순한 지역적 양식의 계승이 아니라 백제계 사찰의 확산에 기인함을 짐작할 수 있다.
김천 갈항사지 석조 여래 좌상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길항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22m의 등신대 불상으로, 앙련이 새겨진 상대석와 몸체인 불신만 남아 있고 광배와 하대석은 남아 있지 않다. 얼굴은 매우 동그란 편이고 신체는 얼굴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대의는 8세기 중엽에 성행하던 편단우견이다. 이상적인 인체를 상징하는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온화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친다. 이 불상은 1758년 갈항사 중창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김천 갈항사지 석조 여래 좌상 (金泉 葛項寺址 石造 如來 坐像)
김천 갈항사지 석조 여래 좌상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길항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조 불상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22m의 등신대 불상으로, 앙련이 새겨진 상대석와 몸체인 불신만 남아 있고 광배와 하대석은 남아 있지 않다. 얼굴은 매우 동그란 편이고 신체는 얼굴과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대의는 8세기 중엽에 성행하던 편단우견이다. 이상적인 인체를 상징하는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온화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친다. 이 불상은 1758년 갈항사 중창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 보살 좌상 (江陵 神福寺址 石造 菩薩 坐像)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2기의 석조 불탑.
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 (聞慶 道川寺址 東·西 三層石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2기의 석조 불탑.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홍법국사의 탑비.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碑)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홍법국사의 탑비.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정혜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특수형 석조 불탑.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정혜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특수형 석조 불탑.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림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화강암으로 건조한 일반형 석조 불탑.
안동 봉림사지 삼층석탑 (安東 鳳林寺址 三層石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림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화강암으로 건조한 일반형 석조 불탑.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목우사 터에서 출토된 불상이다. 2005년 5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 목암사의 승려가 봉황사 주지로 오면서 봉황사로 이관되었다. 목우사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기간에 존재했을 사찰로 생각되며, 이 석조여래입상 역시 이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는 208㎝이며, 통형의 신체는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불의(佛衣)는 통견형식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Y자형 옷주름을 보이는 석불입상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된다.
청주 목우사지 석조 여래 입상 (淸州 牧牛寺址 石造 如來 立像)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목우사 터에서 출토된 불상이다. 2005년 5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 목암사의 승려가 봉황사 주지로 오면서 봉황사로 이관되었다. 목우사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기에 이르는 기간에 존재했을 사찰로 생각되며, 이 석조여래입상 역시 이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는 208㎝이며, 통형의 신체는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불의(佛衣)는 통견형식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Y자형 옷주름을 보이는 석불입상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된다.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경상북도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의 사리장엄구이다.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758년에 건립된 쌍탑이다. 1916년 갈항사지에 있던 두 석탑을 경복궁으로 옮기기 위해 해체했을 때 탑 기단부에서 각각 청동사리호, 금동사리병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2016년 7월 1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金泉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 出土 舍利莊嚴具)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경상북도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의 사리장엄구이다.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758년에 건립된 쌍탑이다. 1916년 갈항사지에 있던 두 석탑을 경복궁으로 옮기기 위해 해체했을 때 탑 기단부에서 각각 청동사리호, 금동사리병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2016년 7월 1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칠곡 가산산성은 내성, 외성, 중성의 복합식으로 축조된 성곽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전국에 대대적으로 산성을 구축한 시기에 동래-한양 간 대로상 경상도 최적의 요충지에 지어진 명실상부한 ‘영남 제일 관방’이다. 1640년 내성을 1차적으로 완성하고, 1648년 중수를 통해 현재의 내성이 축조되었다. 1701년 외성, 1741년 내성의 가운데에 중성 벽을 완축하였다. 1971년 사적 제216호 지정되었고 1977년부터 2018년까지 남문, 동문, 중성문, 수문, 성벽 몸체 등의 성곽 보수 및 복원이 이루어졌다.
칠곡 가산산성 (漆谷 架山山城)
칠곡 가산산성은 내성, 외성, 중성의 복합식으로 축조된 성곽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전국에 대대적으로 산성을 구축한 시기에 동래-한양 간 대로상 경상도 최적의 요충지에 지어진 명실상부한 ‘영남 제일 관방’이다. 1640년 내성을 1차적으로 완성하고, 1648년 중수를 통해 현재의 내성이 축조되었다. 1701년 외성, 1741년 내성의 가운데에 중성 벽을 완축하였다. 1971년 사적 제216호 지정되었고 1977년부터 2018년까지 남문, 동문, 중성문, 수문, 성벽 몸체 등의 성곽 보수 및 복원이 이루어졌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기린산(麒麟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승려 도선 관련 사찰.
기린산 만복사 (麒麟山 萬福寺)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기린산(麒麟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승려 도선 관련 사찰.
공장부(工匠府)는 통일신라시대에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때 전사서(典祀署)로 관호를 바꾸었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 다시 공장부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경덕왕 18년(759) 정월 기록에 전사서와 공장부를 함께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를 경덕왕 때에 전사서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 직관지의 오기로,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개의 관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공장부 (工匠府)
공장부(工匠府)는 통일신라시대에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때 전사서(典祀署)로 관호를 바꾸었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 다시 공장부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경덕왕 18년(759) 정월 기록에 전사서와 공장부를 함께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를 경덕왕 때에 전사서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 직관지의 오기로,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개의 관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각화사(覺華寺)는 통일신라 때 원효가 창건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覺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1606년(선조 39) 태백산사고를 건립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각화사가 그 수호사찰이 되었으며 이후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는 국내 3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1988년 사고 건물을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중요 문화유산으로는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귀부와 삼층석탑이 있다.
각화산 각화사 (覺華山 覺華寺)
각화사(覺華寺)는 통일신라 때 원효가 창건한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覺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1606년(선조 39) 태백산사고를 건립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각화사가 그 수호사찰이 되었으며 이후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는 국내 3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1988년 사고 건물을 발굴하고 사고지를 정비하여 1991년 2월 26일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중요 문화유산으로는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귀부와 삼층석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