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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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병인양요 (丙寅洋擾)
병인양요는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이다.
국내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 유적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평지에 둘러쌓은 성으로 비정된다. 전체 둘레는 약 2.7km이다. 현전하는 석축 성벽은 4세기에 쌓아져 만들어졌는데, 3세기 중반 이후부터 도성 경관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으로 천도하는 427년까지 고구려의 도성 역할을 하였다.
국내성 (國內城)
국내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 유적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평지에 둘러쌓은 성으로 비정된다. 전체 둘레는 약 2.7km이다. 현전하는 석축 성벽은 4세기에 쌓아져 만들어졌는데, 3세기 중반 이후부터 도성 경관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으로 천도하는 427년까지 고구려의 도성 역할을 하였다.
중국 요령성 해성시(海城市) 영성자둔(英城子屯) 영성자촌(英城子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요하유역에 설치한 방어성 중 하나인 성곽. 산성.
안시성 (安市城)
중국 요령성 해성시(海城市) 영성자둔(英城子屯) 영성자촌(英城子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가 요하유역에 설치한 방어성 중 하나인 성곽. 산성.
고구려가 도읍을 압록강변의 국내성(國內城)에서 대동강변의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긴 사건.
평양천도 (平壤遷都)
고구려가 도읍을 압록강변의 국내성(國內城)에서 대동강변의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긴 사건.
조령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새재, 문경새재라고 하고, 한자로 조령(鳥嶺), 초점(草岾)이라고 표기하였다. 새재의 새는 풀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억새, 속새라는 뜻이고, 재는 길이 통하여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있는 관문으로 화강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지이다. 1966년에는 문경 조령 관문이 사적으로, 1981년에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2007년에는 문경새재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조령 (鳥嶺)
조령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새재, 문경새재라고 하고, 한자로 조령(鳥嶺), 초점(草岾)이라고 표기하였다. 새재의 새는 풀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억새, 속새라는 뜻이고, 재는 길이 통하여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있는 관문으로 화강암 절벽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요새지이다. 1966년에는 문경 조령 관문이 사적으로, 1981년에는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2007년에는 문경새재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고국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9대왕이다. 재위 기간은 179년~197년이며, 신대왕의 둘째아들로 176년(신대왕 12) 태자에 책봉되었다. 184년 후한 요동태수의 침입을 격퇴하고, 190∼191년에 걸친 좌가려와 어비류의 난을 진압하는 등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다졌다. 또 왕비족과 연합하여 왕권지지 기반을 확대함으로써, 초부족적 지배 질서의 수립과 왕권 강화에 힘썼고, 왕위계승 방법도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전환했다. 191년 을파소를 국상에 임명하고 진대법을 실시하여 궁핍한 농민들에 대한 구휼책을 마련했다.
고국천왕 (故國川王)
고국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9대왕이다. 재위 기간은 179년~197년이며, 신대왕의 둘째아들로 176년(신대왕 12) 태자에 책봉되었다. 184년 후한 요동태수의 침입을 격퇴하고, 190∼191년에 걸친 좌가려와 어비류의 난을 진압하는 등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다졌다. 또 왕비족과 연합하여 왕권지지 기반을 확대함으로써, 초부족적 지배 질서의 수립과 왕권 강화에 힘썼고, 왕위계승 방법도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전환했다. 191년 을파소를 국상에 임명하고 진대법을 실시하여 궁핍한 농민들에 대한 구휼책을 마련했다.
무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00~641년이며, 제29대 법왕의 아들이자 제31대 의자왕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서동설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재위 초부터 동진정책에 주력하여 신라의 여러 지역을 함락시켰다. 수·당·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수나라의 고구려 침입 때는 신라의 역습을 우려하여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사비궁 중수나 왕흥사·미륵사 창건 같은 대규모 역사가 시행될 정도로 왕권이 안정·강화된 시기였다. 신라에 대한 압박은 신라와 당이 결합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무왕 (武王)
무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00~641년이며, 제29대 법왕의 아들이자 제31대 의자왕의 아버지이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서동설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재위 초부터 동진정책에 주력하여 신라의 여러 지역을 함락시켰다. 수·당·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수나라의 고구려 침입 때는 신라의 역습을 우려하여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사비궁 중수나 왕흥사·미륵사 창건 같은 대규모 역사가 시행될 정도로 왕권이 안정·강화된 시기였다. 신라에 대한 압박은 신라와 당이 결합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배중손은 고려 무신정권기의 장군으로 삼별초의 항쟁을 주도한 무신이다. 1270년 고려 원종은 강화도에서 철수하여 개경으로 환도하였는데 삼별초는 개경 환도를 거부하며 독자적 정부를 수립하였다. 삼별초는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본거지를 진도로 옮기고 장기 항전의 태세를 굳혔다. 연합군이 여러 차례 진도를 공략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271년 홍다구가 이끄는 몽골군에 의해 진도가 함락되었고, 배중손도 이때 남도석성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잔여세력은 김통정(金通精)의 지휘 하에 제주도로 본거지를 옮겨 계속 항전하였다.
배중손 (裵仲孫)
배중손은 고려 무신정권기의 장군으로 삼별초의 항쟁을 주도한 무신이다. 1270년 고려 원종은 강화도에서 철수하여 개경으로 환도하였는데 삼별초는 개경 환도를 거부하며 독자적 정부를 수립하였다. 삼별초는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본거지를 진도로 옮기고 장기 항전의 태세를 굳혔다. 연합군이 여러 차례 진도를 공략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271년 홍다구가 이끄는 몽골군에 의해 진도가 함락되었고, 배중손도 이때 남도석성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잔여세력은 김통정(金通精)의 지휘 하에 제주도로 본거지를 옮겨 계속 항전하였다.
평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9~590년이다. 양원왕의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한다. 부왕인 양원왕의 즉위 이래 계속된 내분과 민심 수습을 위해 노력했으나 왕권은 귀족들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았다. 또 남조의 진나라와 북조의 북제·북주가 대치하고 있던 중국 남북조와 다면 외교를 펼쳐 국제관계의 안정을 꾀했다. 하지만 589년에 수나라가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켜 대륙을 통일한 후 고구려에 국서를 보내 위협을 가하자 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다가 사망했다.
평원왕 (平原王)
평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9~590년이다. 양원왕의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한다. 부왕인 양원왕의 즉위 이래 계속된 내분과 민심 수습을 위해 노력했으나 왕권은 귀족들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았다. 또 남조의 진나라와 북조의 북제·북주가 대치하고 있던 중국 남북조와 다면 외교를 펼쳐 국제관계의 안정을 꾀했다. 하지만 589년에 수나라가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켜 대륙을 통일한 후 고구려에 국서를 보내 위협을 가하자 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다가 사망했다.
금정산성은 부산 금정구 금정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다. 동래산성이라고도 한다. 성벽은 18,845m, 성벽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문, 누가 없이 만들어진 암문 등이 있다. 1667년(현종 8)에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금정산성은 조선 시대 국방사 연구와 해안 관방체계 연구에 중요한 산성이다.
금정산성 (金井山城)
금정산성은 부산 금정구 금정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다. 동래산성이라고도 한다. 성벽은 18,845m, 성벽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문, 누가 없이 만들어진 암문 등이 있다. 1667년(현종 8)에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금정산성은 조선 시대 국방사 연구와 해안 관방체계 연구에 중요한 산성이다.
강원도 춘천지역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小國).
맥국 (貊國)
강원도 춘천지역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小國).
환도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이다. 유적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다. 지안시 북쪽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198년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개축을 거쳐 342년까지 도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 중반 이전에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환도성 (丸都城)
환도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이다. 유적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다. 지안시 북쪽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198년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개축을 거쳐 342년까지 도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 중반 이전에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협축 성곽. 산성.
단양 온달산성 (丹陽 溫達山城)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협축 성곽. 산성.
졸본(卒本)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에 있던 고구려의 첫 번째 도성이다. 오녀산성과 하고성자토성 등 고구려시대의 성 유적과 함께 고력묘자촌 고분군, 상고성자 고분군, 망강루 고분군 등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
졸본 (卒本)
졸본(卒本)은 중국 랴오닝성 환런현에 있던 고구려의 첫 번째 도성이다. 오녀산성과 하고성자토성 등 고구려시대의 성 유적과 함께 고력묘자촌 고분군, 상고성자 고분군, 망강루 고분군 등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 고분군이 밀집해 있다.
상당산성은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원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후부터 운영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충청 병영의 진수 산성으로 경영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성의 전체 둘레는 약 4.2km이며, 시설물로 동문·서문·남문 3개소 및 문루를 비롯하여 암문 2개소, 치성 3개소 등이 남아 있다.
상당산성 (上黨山城)
상당산성은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일원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후부터 운영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충청 병영의 진수 산성으로 경영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성의 전체 둘레는 약 4.2km이며, 시설물로 동문·서문·남문 3개소 및 문루를 비롯하여 암문 2개소, 치성 3개소 등이 남아 있다.
고려후기 낭장, 죽주방호별감, 좌우위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송문주 (宋文胄)
고려후기 낭장, 죽주방호별감, 좌우위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금성산(金城山)에 있는 고려시대 이후 입보용으로 사용된 성곽. 산성.
담양 금성산성 (潭陽 金城山城)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금성산(金城山)에 있는 고려시대 이후 입보용으로 사용된 성곽. 산성.
각성은 조선시대 판선교도총섭, 팔도도총섭, 규정도총섭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자는 징원(澄圓)이고 호는 벽암(碧巖)이며 각성은 법명이다. 10세에 출가하여, 부휴의 제자가 되어 속리산, 금강산 등에서 정진하였다. 임진왜란 때 해전에 참여하였다. 1624년 팔도도총섭이 되어 남한산성을 완성하였다. 1646년 화엄사에서 86세로 입적하였다. 선과 교에 모두 뛰어나 정혜쌍수와 교관겸수를 실천하였고, 화엄 등 교학에도 정통하였다. 저서로는 『선원집도중결의』, 『간화결의』, 『석문상의초』가 있다.
각성 (覺性)
각성은 조선시대 판선교도총섭, 팔도도총섭, 규정도총섭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자는 징원(澄圓)이고 호는 벽암(碧巖)이며 각성은 법명이다. 10세에 출가하여, 부휴의 제자가 되어 속리산, 금강산 등에서 정진하였다. 임진왜란 때 해전에 참여하였다. 1624년 팔도도총섭이 되어 남한산성을 완성하였다. 1646년 화엄사에서 86세로 입적하였다. 선과 교에 모두 뛰어나 정혜쌍수와 교관겸수를 실천하였고, 화엄 등 교학에도 정통하였다. 저서로는 『선원집도중결의』, 『간화결의』, 『석문상의초』가 있다.
북한산성은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있는 북한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둘레 12.7km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 신라의 북한산성이었던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성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조선시대의 북한산성은 한양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1711년(숙종 37)에 축성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산성에는 성문 14개소, 장대 3개소, 행궁·성랑 143개소, 창고 8개소, 사찰 21개소, 누각 3개소, 교량 7개소, 못 26개소, 우물 99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산성 (北漢山城)
북한산성은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에 있는 북한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된 둘레 12.7km에 달하는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 신라의 북한산성이었던 서울시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성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조선시대의 북한산성은 한양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1711년(숙종 37)에 축성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산성에는 성문 14개소, 장대 3개소, 행궁·성랑 143개소, 창고 8개소, 사찰 21개소, 누각 3개소, 교량 7개소, 못 26개소, 우물 99개소가 있었다고 한다.
삼년산성(三年山城)은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축조된 신라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성곽으로, 축조 시기 및 운영 시기가 명확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삼년산성은 한국 성곽 연구의 기준이 되는 산성이며, 6세기 중엽 신라의 북진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700m이며, 성곽에는 곡성 · 치성 · 보축성벽 · 여장 · 수구 등 여러 시설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삼년산성 (三年山城)
삼년산성(三年山城)은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축조된 신라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성곽으로, 축조 시기 및 운영 시기가 명확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삼년산성은 한국 성곽 연구의 기준이 되는 산성이며, 6세기 중엽 신라의 북진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700m이며, 성곽에는 곡성 · 치성 · 보축성벽 · 여장 · 수구 등 여러 시설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