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산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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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준은 조선 후기에 「하경산수도」, 「군선도」, 「교원추순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관직은 군수를 지냈다고 전한다. 문방과 매죽, 인물화 등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남종화풍의 산수도도 그렸으나 개성을 드러낸 화풍을 이루지는 못했다. 1852년과 1861년에 있었던 어진 도사에 참여했다.
박기준 (朴基駿)
박기준은 조선 후기에 「하경산수도」, 「군선도」, 「교원추순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관직은 군수를 지냈다고 전한다. 문방과 매죽, 인물화 등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남종화풍의 산수도도 그렸으나 개성을 드러낸 화풍을 이루지는 못했다. 1852년과 1861년에 있었던 어진 도사에 참여했다.
김두량은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산수·인물·영모·풍속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제, 아들, 조카까지 화원으로 활동했다. 공재 윤두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산수화 「월야산수도」,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흑구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아들 김덕하와 합작한 작품도 있다.
김두량 (金斗樑)
김두량은 조선 후기 「월야산수도」, 「춘하도리원호흥도권」, 「흑구도」 등의 작품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산수·인물·영모·풍속 등 여러 화목에 뛰어났다. 조선 후기의 화원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김씨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제, 아들, 조카까지 화원으로 활동했다. 공재 윤두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 김두량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전한다. 전통적인 산수화 「월야산수도」,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한 「흑구도」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아들 김덕하와 합작한 작품도 있다.
『서경』 무일편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풍속화.
무일도 (無逸圖)
『서경』 무일편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풍속화.
문청은 조선 전기에 「유마거사상」, 「누각산수도」를 그린 화가이다. 관련 문헌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일본 다이토쿠지 승려들의 후원을 받았음이 확인되며, 「누각산수도」에서는 안견파 화풍의 영향이 강하게 발견된다.
문청 (文淸)
문청은 조선 전기에 「유마거사상」, 「누각산수도」를 그린 화가이다. 관련 문헌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일본 다이토쿠지 승려들의 후원을 받았음이 확인되며, 「누각산수도」에서는 안견파 화풍의 영향이 강하게 발견된다.
김수규는 조선 후기에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하였다. 궁중의 화업에 종사하면서 개인 작업으로 소상팔경이나 강남춘의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여러 점 남겼다.
김수규 (金壽奎)
김수규는 조선 후기에 「강남춘의도」, 「산수도」 등의 남종문인화풍 산수화를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까지 활동하였다. 궁중의 화업에 종사하면서 개인 작업으로 소상팔경이나 강남춘의 등의 고전적 주제와 연관된,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여러 점 남겼다.
안중식은 조선 후기 「산수도」, 「성재수간도」, 「도원문진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881년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 일행의 제도사로 톈진에서 1년 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 1902년 어진도사에 조석진과 더불어 화사로 선발되어 화명을 높였다. 이후 그의 화실인 경묵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11년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조석진·김응원 등과 같이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8년 서화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안중식의 화풍은 서화미술원 출신의 제자를 통해 근대 전통 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안중식 (安中植)
안중식은 조선 후기 「산수도」, 「성재수간도」, 「도원문진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881년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 일행의 제도사로 톈진에서 1년 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 1902년 어진도사에 조석진과 더불어 화사로 선발되어 화명을 높였다. 이후 그의 화실인 경묵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11년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조석진·김응원 등과 같이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8년 서화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안중식의 화풍은 서화미술원 출신의 제자를 통해 근대 전통 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고연휘는 현재 활동 시기와 국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화가이다. 일본 문헌인 『군대관좌우장기』에는 “고연휘는 원대 사람이고, 혹 일본에서는 그의 자가 연휘라고 전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대 화가 고극공의 자인 ‘언경’이 고연휘의 ‘연휘’로 와전된 까닭에 고언경과 고연휘가 같은 인물이며, 고극공이 고연휘로 잘못 알려져 왔다. 또한 고연휘의 전칭작인 「하경산수도」가 중국 및 일본 미법산수화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어, 고연휘를 한국 화가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고연휘 (高然暉)
고연휘는 현재 활동 시기와 국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화가이다. 일본 문헌인 『군대관좌우장기』에는 “고연휘는 원대 사람이고, 혹 일본에서는 그의 자가 연휘라고 전해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대 화가 고극공의 자인 ‘언경’이 고연휘의 ‘연휘’로 와전된 까닭에 고언경과 고연휘가 같은 인물이며, 고극공이 고연휘로 잘못 알려져 왔다. 또한 고연휘의 전칭작인 「하경산수도」가 중국 및 일본 미법산수화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어, 고연휘를 한국 화가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고문, 홍익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이상범 (李象範)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고문, 홍익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조선후기 「강산무진도」, 「송하담소도」, 「하경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이인문 (李寅文)
조선후기 「강산무진도」, 「송하담소도」, 「하경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이조묵은 조선 후기 「산수도」, 「한강낙안도」 등을 그린 문인 서화가이다. 일생 동안 김정희, 옹방강과 같은 조선과 청나라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학문과 예술에 침잠하였다.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도 전념하였으며, 오세창으로부터 수장가로서 ‘조선의 으뜸’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조묵 (李祖默)
이조묵은 조선 후기 「산수도」, 「한강낙안도」 등을 그린 문인 서화가이다. 일생 동안 김정희, 옹방강과 같은 조선과 청나라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학문과 예술에 침잠하였다.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도 전념하였으며, 오세창으로부터 수장가로서 ‘조선의 으뜸’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