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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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백마산성 (白馬山城)
북한 평안북도 의주군에 있는 고려전기 이후 내성과 조선후기의 외성으로 구성된 석축 성곽. 산성.
671년(문무왕 11)에 지은 당나라의 행군총관(行軍摠管) 설인귀(薛仁貴)의 서신에 대한 작자 미상의 답서(答書).
답당설총관인귀서 (答唐薛摠管仁貴書)
671년(문무왕 11)에 지은 당나라의 행군총관(行軍摠管) 설인귀(薛仁貴)의 서신에 대한 작자 미상의 답서(答書).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산성 (山城)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성곽을 만드는 건축기술.
축성술 (築城術)
성곽을 만드는 건축기술.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은 낙안의 진산인 금전산(金錢山, 해발 668m), 오봉산, 개운산, 제석산, 백이산이 외곽을 두른 평지인 낙안들에 있는 연해읍성이다. 이 읍성은 1424년(세종 6) 9월 낙안군의 토성이 낮고 작아서 왜변이 있을 경우 지키기 어려우니 돌을 섞어서 토성 옛터를 좀 넓혀 성을 쌓았다고 한다. 성벽은 전 구간에 걸쳐 내외벽을 구축한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성하였고, 외벽의 길이는 1,468m에 이른다.
순천 낙안읍성 (順天 樂安邑城)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은 낙안의 진산인 금전산(金錢山, 해발 668m), 오봉산, 개운산, 제석산, 백이산이 외곽을 두른 평지인 낙안들에 있는 연해읍성이다. 이 읍성은 1424년(세종 6) 9월 낙안군의 토성이 낮고 작아서 왜변이 있을 경우 지키기 어려우니 돌을 섞어서 토성 옛터를 좀 넓혀 성을 쌓았다고 한다. 성벽은 전 구간에 걸쳐 내외벽을 구축한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성하였고, 외벽의 길이는 1,468m에 이른다.
임진왜란 당시 부산첨사(釜山僉使) 정발(鄭撥)이 왜군의 선봉을 맞아 맨 처음 격전을 벌였던 성곽.
부산포성 (富山浦城)
임진왜란 당시 부산첨사(釜山僉使) 정발(鄭撥)이 왜군의 선봉을 맞아 맨 처음 격전을 벌였던 성곽.
전주 남고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의 고덕산 정상부에서 중복에 걸쳐 삼태기식으로 축조된 석성이다. 산성의 축성 연대는 기록에 없다. 발굴 조사도 극히 일부만 이루어져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기 어렵다. 다만 『세종실록지리지』에 고덕산 석성이라 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폐성된 것으로 나온다. 『국조보감』에는 순조 13년(1813)에 전주부에 남고산성을 쌓고 진(鎭)을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다. 전주의 요해처에 해당되어 관찰사 이상황이 순조 11년(1811)에 증축하기 시작해 이듬해 관찰사 박윤수(朴崙壽)가 완공하였다.
전주 남고산성 (全州 南固山城)
전주 남고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의 고덕산 정상부에서 중복에 걸쳐 삼태기식으로 축조된 석성이다. 산성의 축성 연대는 기록에 없다. 발굴 조사도 극히 일부만 이루어져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기 어렵다. 다만 『세종실록지리지』에 고덕산 석성이라 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폐성된 것으로 나온다. 『국조보감』에는 순조 13년(1813)에 전주부에 남고산성을 쌓고 진(鎭)을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다. 전주의 요해처에 해당되어 관찰사 이상황이 순조 11년(1811)에 증축하기 시작해 이듬해 관찰사 박윤수(朴崙壽)가 완공하였다.
원주 영원산성은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40-2번지 일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1999~2002년에 영원산성의 남벽 410m가 복원되었고, 2013~15년까지 3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된 결과 둘레는 약 2,400m이며, 잔존 상태가 좋은 구간에서는 성벽의 높이는 3m이다. 대몽항쟁기에 입보용 산성으로 축조되었고, 임진왜란에 재활용되어 18세기까지 운용되었다.
원주 영원산성 (原州 鴒原山城)
원주 영원산성은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40-2번지 일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1999~2002년에 영원산성의 남벽 410m가 복원되었고, 2013~15년까지 3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된 결과 둘레는 약 2,400m이며, 잔존 상태가 좋은 구간에서는 성벽의 높이는 3m이다. 대몽항쟁기에 입보용 산성으로 축조되었고, 임진왜란에 재활용되어 18세기까지 운용되었다.
부여 석성산성(扶餘 石城山城)은 백제 사비도성의 남동쪽 외곽 관문을 방어하기 위하여 6세기 전반에 축조된 석축 산성이다. 성벽은 3중으로 축조되었다. 1차 성벽은 가장 외곽에 위치하며 그 둘레가 1,605m이며, 2차 성벽은 중앙에 위치하며 둘레가 751m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3차 성벽의 둘레는 607m이다. 성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로 축소되면서 순차적으로 사용되었다.
부여 석성산성 (扶餘 石城山城)
부여 석성산성(扶餘 石城山城)은 백제 사비도성의 남동쪽 외곽 관문을 방어하기 위하여 6세기 전반에 축조된 석축 산성이다. 성벽은 3중으로 축조되었다. 1차 성벽은 가장 외곽에 위치하며 그 둘레가 1,605m이며, 2차 성벽은 중앙에 위치하며 둘레가 751m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3차 성벽의 둘레는 607m이다. 성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로 축소되면서 순차적으로 사용되었다.
북한 평양직할시에 있는 조선후기 명나라의 병부상서 석성 관련 사당.
무열사 (武烈祠)
북한 평양직할시에 있는 조선후기 명나라의 병부상서 석성 관련 사당.
통영성지(統營城址)는 1678년(숙종 4년)에 통제사 윤천뢰가 경상남도 통영에 만든 통영성 성곽의 터를 말한다. 통영성은 삼도수군통제영성의 준말이다. 이 성은 북쪽 여항산 정상에서 동쪽과 서쪽의 고지를 연결하여 산지는 흙으로 성을 쌓았고 나머지 부분은 돌로 성곽을 쌓았다. 사대문과 동서 암문, 세 곳의 포루가 있었고, 원문성이 바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통영성은 통제영이 해체되면서 성벽과 문루를 헐어버려서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통영성지 (統營城址)
통영성지(統營城址)는 1678년(숙종 4년)에 통제사 윤천뢰가 경상남도 통영에 만든 통영성 성곽의 터를 말한다. 통영성은 삼도수군통제영성의 준말이다. 이 성은 북쪽 여항산 정상에서 동쪽과 서쪽의 고지를 연결하여 산지는 흙으로 성을 쌓았고 나머지 부분은 돌로 성곽을 쌓았다. 사대문과 동서 암문, 세 곳의 포루가 있었고, 원문성이 바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통영성은 통제영이 해체되면서 성벽과 문루를 헐어버려서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려전기 장군, 병마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이관진 (李冠珍)
고려전기 장군, 병마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석성초등학교 (石城初等學校)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석성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석성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남도 석성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편자 및 편찬 시기는 알 수 없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호구 항목이 따로 없고, 방리 항목에 각 면의 ‘이’ 단위로 해당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조선시대 석성현의 지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석성읍지 (石城邑誌)
『석성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남도 석성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편자 및 편찬 시기는 알 수 없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호구 항목이 따로 없고, 방리 항목에 각 면의 ‘이’ 단위로 해당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조선시대 석성현의 지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인당은 고려 후기 첨의평리, 서북면병마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356년(공민왕 5)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 강중경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 8참과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 등 3참을 공략하였다. 이는 공민왕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원의 침략에 대비하는 한편, 원을 오가는 교통로를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 조정은 고려가 원나라 국경을 침범한 것은 공민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변방의 장수가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라 변명하였다. 그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 인당이 소환되어 처형당하였다.
인당 (印璫)
인당은 고려 후기 첨의평리, 서북면병마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356년(공민왕 5)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동지밀직사사 강중경 등과 함께 압록강 서쪽 8참과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 등 3참을 공략하였다. 이는 공민왕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원의 침략에 대비하는 한편, 원을 오가는 교통로를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 조정은 고려가 원나라 국경을 침범한 것은 공민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변방의 장수가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이라 변명하였다. 그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 인당이 소환되어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