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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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이루어진 혁신불교적인 신앙결사의 단체명인 동시에 사찰의 명칭이다. 무신정변 이후 불교계와 불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비판의식이 대두되었고 학문불교이자 체제불교적 성격이 강한 교종을 대신해 선종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각 지방의 신앙단체로서 결사가 유행했는데 선종에서는 수선사가, 천태종에서는 백련사가 탄생했다. 지눌은 수선사 결사를 통해 돈오점수설에 입각한 정혜쌍수의 법을 주창했고 다시 화엄사상과 결합하여 화엄과 선이 하나임을 밝혔다. 수선사의 불교는 오늘날까지도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선사 (修禪社)
수선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이루어진 혁신불교적인 신앙결사의 단체명인 동시에 사찰의 명칭이다. 무신정변 이후 불교계와 불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비판의식이 대두되었고 학문불교이자 체제불교적 성격이 강한 교종을 대신해 선종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각 지방의 신앙단체로서 결사가 유행했는데 선종에서는 수선사가, 천태종에서는 백련사가 탄생했다. 지눌은 수선사 결사를 통해 돈오점수설에 입각한 정혜쌍수의 법을 주창했고 다시 화엄사상과 결합하여 화엄과 선이 하나임을 밝혔다. 수선사의 불교는 오늘날까지도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개경 승도의 난 (開京 僧徒의 亂)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선정(禪定)에 통달한 승려.
선사 (禪師)
선정(禪定)에 통달한 승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무염 (無染)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선문구산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개산한 승려.
조선후기 농학자 김장순이 고구마의 재배·이용에 관하여 1813년에 편찬한 농업서.
감저신보 (甘藷新譜)
조선후기 농학자 김장순이 고구마의 재배·이용에 관하여 1813년에 편찬한 농업서.
성적등지문·경절문과 함께 우리나라 선종의 3대 수행법으로 원만한 화엄의 교리를 일순간에 깨달아 믿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불교수행법.
원돈신해문 (圓頓信解門)
성적등지문·경절문과 함께 우리나라 선종의 3대 수행법으로 원만한 화엄의 교리를 일순간에 깨달아 믿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불교수행법.
조선전기 금강산유점사, 해인사 대장경판당 등을 중창한 승려. 역경승.
학조 (學祖)
조선전기 금강산유점사, 해인사 대장경판당 등을 중창한 승려. 역경승.
무상(無相)은 남북국시대 신라 출신으로 중국에서 선을 배운 정중종(淨衆宗)의 개조이다. 그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지선(智詵)과 처적(處寂)으로부터 선(禪)을 배웠고 사천성 정중사(淨衆寺)를 중심으로 선풍을 날려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무상의 선풍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티베트와 신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상 (無相)
무상(無相)은 남북국시대 신라 출신으로 중국에서 선을 배운 정중종(淨衆宗)의 개조이다. 그는 신라 왕족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지선(智詵)과 처적(處寂)으로부터 선(禪)을 배웠고 사천성 정중사(淨衆寺)를 중심으로 선풍을 날려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무상의 선풍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티베트와 신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은 교학 불교에 대한 선종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선종에 관련된 전승들을 모아 1293년(충렬왕 29)에 편찬한 선종 문헌이다. 선종이 노사나불(盧舍那佛)로부터 시작되었다거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진귀조사(眞歸祖師)로부터 선을 배웠다는 등 다른 자료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독특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선문보장록 (禪門寶藏錄)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은 교학 불교에 대한 선종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선종에 관련된 전승들을 모아 1293년(충렬왕 29)에 편찬한 선종 문헌이다. 선종이 노사나불(盧舍那佛)로부터 시작되었다거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진귀조사(眞歸祖師)로부터 선을 배웠다는 등 다른 자료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독특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수미(守眉)는 조선 전기 선종판사를 역임하고 간경도감의 불서 국역에 참여한 승려이다. 그는 『석보상절』의 언해 사업 및 해인사 재조대장경 인출 사업에 참여하였고, 영암 도갑사를 중창하였다. 세조로부터 왕사에 책봉되어 묘각(妙覺)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수미 (守眉)
수미(守眉)는 조선 전기 선종판사를 역임하고 간경도감의 불서 국역에 참여한 승려이다. 그는 『석보상절』의 언해 사업 및 해인사 재조대장경 인출 사업에 참여하였고, 영암 도갑사를 중창하였다. 세조로부터 왕사에 책봉되어 묘각(妙覺)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선교양종은 조선 전기에 있었던 불교 종파인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2개 종파의 통칭이다. 1424년(세종 6)에 세종은 불교의 여러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합하고, 선종과 교종에 각각 도회소(都會所)를 두어 승과(僧科)의 시행과 승려 인사 등을 관할하게 했다. 이후 이는 『경국대전』을 통해 법제화되었는데 중종대에 양종 체제가 혁파되고 『경국대전』의 불교 관련 도승조(度僧條)가 폐기되었다. 그 뒤 명종대에 선교 양종이 일시적으로 재건되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국가에 의해 불교 종파가 공인되지 않았다.
선교양종 (禪敎兩宗)
선교양종은 조선 전기에 있었던 불교 종파인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2개 종파의 통칭이다. 1424년(세종 6)에 세종은 불교의 여러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통합하고, 선종과 교종에 각각 도회소(都會所)를 두어 승과(僧科)의 시행과 승려 인사 등을 관할하게 했다. 이후 이는 『경국대전』을 통해 법제화되었는데 중종대에 양종 체제가 혁파되고 『경국대전』의 불교 관련 도승조(度僧條)가 폐기되었다. 그 뒤 명종대에 선교 양종이 일시적으로 재건되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국가에 의해 불교 종파가 공인되지 않았다.
고려의 제20대(재위: 1197년~1204년) 왕.
신종 (神宗)
고려의 제20대(재위: 1197년~1204년) 왕.
고려·조선시대 선종(禪宗) 승려의 법계(法階) 가운데 하나.
대선사 (大禪師)
고려·조선시대 선종(禪宗) 승려의 법계(法階) 가운데 하나.
소율희는 남북국시대 나말여초 시기 김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한 호족이다. 형 소충자와 함께 김해 지역에서 군림하던 김인광을 몰아내고 김해부지군부사가 되어 세력가로 등장하였다. 소율희·소충자 형제는 선승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김해 지역이 선종의 요람지로 명성을 떨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진경대사 심희, 낭공대사 행적, 진철대사 이엄, 진공대사 충담 등이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친신라적 입장으로 인해 신라가 쇠퇴하자 함께 소멸되는 운명을 맞았다.
소율희 (蘇律熙)
소율희는 남북국시대 나말여초 시기 김해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한 호족이다. 형 소충자와 함께 김해 지역에서 군림하던 김인광을 몰아내고 김해부지군부사가 되어 세력가로 등장하였다. 소율희·소충자 형제는 선승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김해 지역이 선종의 요람지로 명성을 떨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진경대사 심희, 낭공대사 행적, 진철대사 이엄, 진공대사 충담 등이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친신라적 입장으로 인해 신라가 쇠퇴하자 함께 소멸되는 운명을 맞았다.
고양 원각사 달마대사관심론은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가 심론에 대해 제자와 주고받은 문답 내용을 정리한 불교서이다. 달마대사와 제자인 혜가(중국 선종의 2조)가 주고받은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며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마음이 낸 바임을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수용된 이래 한국불교 선종의 사상적 이념을 제공하였던 문헌이다. 이 책은 먼저 간행된 간경도감본(1463년)을 1538년(중종 33) 고창 문수사에서 저본으로 중간한 것이다. 2010년 3월 2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원각사에서 보관해오고 있다.
고양 원각사 달마대사관심론 (高陽 圓覺寺 達磨大師觀心論)
고양 원각사 달마대사관심론은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가 심론에 대해 제자와 주고받은 문답 내용을 정리한 불교서이다. 달마대사와 제자인 혜가(중국 선종의 2조)가 주고받은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며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마음이 낸 바임을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수용된 이래 한국불교 선종의 사상적 이념을 제공하였던 문헌이다. 이 책은 먼저 간행된 간경도감본(1463년)을 1538년(중종 33) 고창 문수사에서 저본으로 중간한 것이다. 2010년 3월 2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원각사에서 보관해오고 있다.
사찰에서 불교 종파의 조사 또는 사찰의 창건주 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불교건축물.
조사당 (祖師堂)
사찰에서 불교 종파의 조사 또는 사찰의 창건주 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불교건축물.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은 선종의 주요 분파 중에서도 특히 북송대 이후 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임제종과 운문종의 핵심 사상을 문답의 형식으로 정리한 선사상 강요서이다. 이 책은 고려 후기 백련사 제4세 사주인 진정국사 천책(眞靜國師天頙)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으로 볼 때 천태종 승려인 천책이 지은 것으로 보기 어려워 선종의 승려가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문강요집 (禪門綱要集)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은 선종의 주요 분파 중에서도 특히 북송대 이후 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임제종과 운문종의 핵심 사상을 문답의 형식으로 정리한 선사상 강요서이다. 이 책은 고려 후기 백련사 제4세 사주인 진정국사 천책(眞靜國師天頙)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으로 볼 때 천태종 승려인 천책이 지은 것으로 보기 어려워 선종의 승려가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성우 (惺牛)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고려 전기에, 수사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감수국사, 수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상기 (金上琦)
고려 전기에, 수사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감수국사, 수태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장순은 조선 후기, 선종한과 함께 『감저신보』를 저술한 농학자이다. 김장순은 구황작물로서 고구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전국적 보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보성 출신 선종한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813년(순조 13) 선종한과 함께 고구마 재배서인 『감저신보』를 편찬하였다.
김장순 (金長淳)
김장순은 조선 후기, 선종한과 함께 『감저신보』를 저술한 농학자이다. 김장순은 구황작물로서 고구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전국적 보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보성 출신 선종한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813년(순조 13) 선종한과 함께 고구마 재배서인 『감저신보』를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