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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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한반도에 거주한 주민이 사용한, 표면에 빗살무늬가 있는 토기이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적 표상 중의 하나이며, 즐문토기로도 불린다. 서기전 1만 년을 전후한 무렵에 한반도에 출현하여 각 지역으로 확산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빗살무늬토기는 토기 연대와 양식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초창기, 조기, 전기, 중기, 후기, 말기 토기로 구분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다양한 기형과 문양이 출현하여 성행하며 자체적인 변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土器)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한반도에 거주한 주민이 사용한, 표면에 빗살무늬가 있는 토기이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적 표상 중의 하나이며, 즐문토기로도 불린다. 서기전 1만 년을 전후한 무렵에 한반도에 출현하여 각 지역으로 확산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빗살무늬토기는 토기 연대와 양식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초창기, 조기, 전기, 중기, 후기, 말기 토기로 구분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다양한 기형과 문양이 출현하여 성행하며 자체적인 변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돌무지무덤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선사시대 (先史時代)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뗀석기는 돌을 깨서 만든 도구와 그것을 만들며 나오는 부산물이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과거 도구는 사람만이 만들고 사용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원숭이도 돌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람만이 체계적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뗀석기 (뗀石器)
뗀석기는 돌을 깨서 만든 도구와 그것을 만들며 나오는 부산물이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과거 도구는 사람만이 만들고 사용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원숭이도 돌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람만이 체계적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석기 (石器)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중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를 가리키며 주로 유럽의 선사시대에 쓰이는 개념이다.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토기를 사용하는 농경마을이 특징인 신석기시대가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대를 가리키며, 일부에서는 후구석기시대. 종말기 구석기시대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세석기[잔석기]를 중석기시대의 표지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세석기 문화가 후기 구석기시대의 양상임이 드러난 뒤 중석기시대라는 개념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중석기시대 (中石器時代)
중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를 가리키며 주로 유럽의 선사시대에 쓰이는 개념이다.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토기를 사용하는 농경마을이 특징인 신석기시대가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대를 가리키며, 일부에서는 후구석기시대. 종말기 구석기시대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세석기[잔석기]를 중석기시대의 표지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세석기 문화가 후기 구석기시대의 양상임이 드러난 뒤 중석기시대라는 개념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화덕자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 사용된 난방과 취사, 조명을 겸용했던 주거시설이다. 신석기시대에 집터나 야외에 흙이나 돌을 돌려 화덕을 만들어 취사와 난방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덕은 구조에 따라 아무 시설이 없는 것, 간단한 토광(土壙) 형태의 것, 가장자리를 따라 점토띠를 두른 것, 토광을 파고 그 가장자리에 돌을 돌린 것, 바닥에 강돌을 깔고 주위에 돌을 돌린 것, 부뚜막 형태의 것 등 여러 가지로 나뉜다. 원삼국시대부터 부뚜막·쪽구들이 등장하면서 취사와 난방을 겸한 온돌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화덕자리 (火덕자리)
화덕자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 사용된 난방과 취사, 조명을 겸용했던 주거시설이다. 신석기시대에 집터나 야외에 흙이나 돌을 돌려 화덕을 만들어 취사와 난방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덕은 구조에 따라 아무 시설이 없는 것, 간단한 토광(土壙) 형태의 것, 가장자리를 따라 점토띠를 두른 것, 토광을 파고 그 가장자리에 돌을 돌린 것, 바닥에 강돌을 깔고 주위에 돌을 돌린 것, 부뚜막 형태의 것 등 여러 가지로 나뉜다. 원삼국시대부터 부뚜막·쪽구들이 등장하면서 취사와 난방을 겸한 온돌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간돌도끼·간돌끌 등이 발견된 동굴.
춘천 혈거유지 (春川 穴居遺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간돌도끼·간돌끌 등이 발견된 동굴.
찌르개는 석기시대 자갈돌, 격지, 돌날 등에 타제기법으로 끝을 뾰족하게 만든 석기이다. 전기 구석기시대에 주먹찌르개, 중기 구석기시대에 르발루아찌르개, 후기 구석기시대에 슴베찌르개, 모뿔찌르개[각추상석기]와 나뭇잎찌르개가 차례로 제작되었다. 중기 구석기시대 이후의 찌르개 종류는 주로 자루에 묶어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도구 종류가 많았다. 이 중 슴베찌르개는 한국의 후기 구석기 문화를 대표한다.
찌르개
찌르개는 석기시대 자갈돌, 격지, 돌날 등에 타제기법으로 끝을 뾰족하게 만든 석기이다. 전기 구석기시대에 주먹찌르개, 중기 구석기시대에 르발루아찌르개, 후기 구석기시대에 슴베찌르개, 모뿔찌르개[각추상석기]와 나뭇잎찌르개가 차례로 제작되었다. 중기 구석기시대 이후의 찌르개 종류는 주로 자루에 묶어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도구 종류가 많았다. 이 중 슴베찌르개는 한국의 후기 구석기 문화를 대표한다.
'영종도송산선사유적'은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단독 유적이다. 유적은 영종도 송산마을 남쪽 해안의 동서로 길게 뻗은 모래언덕 위에 자리한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노란모래층-검은모래층-흰모래층’으로 구분되며, 검은모래층이 신석기시대 문화층(文化層)이다. 이 층에서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21기가 조사되었다.
영종도 송산 선사유적 (永宗島 松山 先史遺蹟)
'영종도송산선사유적'은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단독 유적이다. 유적은 영종도 송산마을 남쪽 해안의 동서로 길게 뻗은 모래언덕 위에 자리한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노란모래층-검은모래층-흰모래층’으로 구분되며, 검은모래층이 신석기시대 문화층(文化層)이다. 이 층에서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21기가 조사되었다.
시흥오이도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내 각지에 조성된 패총과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층이 오이도 내 가장 많은 지점에 분포하며 신석기층 상부에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조개껍데기층과 유구도 확인되었다.
시흥 오이도 유적 (始興 烏耳島 遺蹟)
시흥오이도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내 각지에 조성된 패총과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층이 오이도 내 가장 많은 지점에 분포하며 신석기층 상부에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조개껍데기층과 유구도 확인되었다.
통영연대도패총(統營烟臺島貝塚)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이다. 15기의 무덤이 모여 있는 매장 시설군으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묘소의 경계를 정한 구역이 따로 있었음을 알려 주는 유적이다. 사람의 뼈와 동물 유존체의 분석이 이루어져 형질인류학 연구와 신석기시대의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통영 연대도 패총 (統營 烟臺島 貝塚)
통영연대도패총(統營烟臺島貝塚)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이다. 15기의 무덤이 모여 있는 매장 시설군으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묘소의 경계를 정한 구역이 따로 있었음을 알려 주는 유적이다. 사람의 뼈와 동물 유존체의 분석이 이루어져 형질인류학 연구와 신석기시대의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잔석기는 석기시대 돌날의 조각 또는 좀돌날, 드물게는 작은 격지를 밑감으로 하여, 정교하게 잔손질해서 세모꼴 · 사다리꼴 · 긴네모꼴의 기하학적 형태로 만든 작은 석기이다. 세석기(細石器: microlith)라고도 불린다.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부터 시작하여 중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잔석기 (잔石器)
잔석기는 석기시대 돌날의 조각 또는 좀돌날, 드물게는 작은 격지를 밑감으로 하여, 정교하게 잔손질해서 세모꼴 · 사다리꼴 · 긴네모꼴의 기하학적 형태로 만든 작은 석기이다. 세석기(細石器: microlith)라고도 불린다.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부터 시작하여 중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덧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욕지도 패총 (欲知島 貝塚)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덧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돌칼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울주신암리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해안단구에 형성된 유적으로, 1935년에 일본인 학자가 조사하여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알려졌다. 1966년 서울대학교박물관, 1974년 국립박물관, 2013∼2014년 부경문물연구원에서 각기 다른 지점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덧무늬토기 · 빗살무늬토기 등의 토기류, 돌화살촉 · 작살 · 결합 낚시바늘 · 돌도끼 · 돌칼 등의 석기류가 출토된 생활유적과 제의유적의 복합유적이다.
울주 신암리 유적 (蔚州 新巖里 遺蹟)
울주신암리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해안단구에 형성된 유적으로, 1935년에 일본인 학자가 조사하여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알려졌다. 1966년 서울대학교박물관, 1974년 국립박물관, 2013∼2014년 부경문물연구원에서 각기 다른 지점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덧무늬토기 · 빗살무늬토기 등의 토기류, 돌화살촉 · 작살 · 결합 낚시바늘 · 돌도끼 · 돌칼 등의 석기류가 출토된 생활유적과 제의유적의 복합유적이다.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마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용강 궁산리 유적 (龍岡 弓山里 遺蹟)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마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울진후포리유적은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간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단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기~전기(서기전 5000~4000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화강암괴로 둘린 부정형의 자연 구덩이를 매장 시설로 이용한 구조이다. 무덤에서는 40여 구의 사람의 뼈를 포함하여 180여 점의 간돌도끼와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 방식은 인골 출토 상태로 보아 세골장(洗骨葬)으로 추정되며, 이와 같은 장법(葬法)은 한반도 선사시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울진 후포리 유적 (蔚珍 厚浦里 遺蹟)
울진후포리유적은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간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단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기~전기(서기전 5000~4000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화강암괴로 둘린 부정형의 자연 구덩이를 매장 시설로 이용한 구조이다. 무덤에서는 40여 구의 사람의 뼈를 포함하여 180여 점의 간돌도끼와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 방식은 인골 출토 상태로 보아 세골장(洗骨葬)으로 추정되며, 이와 같은 장법(葬法)은 한반도 선사시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김해 농소리 패총은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조만강이 남류하고 있는 삼매산 동남쪽 비탈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유적지 가운데 3곳을 발굴하였는데 순조개껍질만으로 이루어진 순패각층과 표토층, 순패각층, 흑색부식토층 등이 확인되었다.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뗀돌도끼, 숫돌, 납작돌도끼,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 등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신석기시대 말기의 유물로 당시 사람들은 강과 바다를 통해 활발한 어로 생활을 하였고,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의 존재로 수렵생활도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해 농소리 패총 (金海 農所里 貝塚)
김해 농소리 패총은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조만강이 남류하고 있는 삼매산 동남쪽 비탈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유적지 가운데 3곳을 발굴하였는데 순조개껍질만으로 이루어진 순패각층과 표토층, 순패각층, 흑색부식토층 등이 확인되었다.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뗀돌도끼, 숫돌, 납작돌도끼,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 등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신석기시대 말기의 유물로 당시 사람들은 강과 바다를 통해 활발한 어로 생활을 하였고,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의 존재로 수렵생활도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