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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뗀석기는 돌을 깨서 만든 도구와 그것을 만들며 나오는 부산물이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과거 도구는 사람만이 만들고 사용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원숭이도 돌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람만이 체계적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뗀석기 (뗀石器)
뗀석기는 돌을 깨서 만든 도구와 그것을 만들며 나오는 부산물이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과거 도구는 사람만이 만들고 사용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원숭이도 돌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람만이 체계적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김해 농소리 패총은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조만강이 남류하고 있는 삼매산 동남쪽 비탈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유적지 가운데 3곳을 발굴하였는데 순조개껍질만으로 이루어진 순패각층과 표토층, 순패각층, 흑색부식토층 등이 확인되었다.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뗀돌도끼, 숫돌, 납작돌도끼,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 등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신석기시대 말기의 유물로 당시 사람들은 강과 바다를 통해 활발한 어로 생활을 하였고,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의 존재로 수렵생활도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해 농소리 패총 (金海 農所里 貝塚)
김해 농소리 패총은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조만강이 남류하고 있는 삼매산 동남쪽 비탈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유적지 가운데 3곳을 발굴하였는데 순조개껍질만으로 이루어진 순패각층과 표토층, 순패각층, 흑색부식토층 등이 확인되었다.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뗀돌도끼, 숫돌, 납작돌도끼,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 등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신석기시대 말기의 유물로 당시 사람들은 강과 바다를 통해 활발한 어로 생활을 하였고, 사슴뼈로 만든 찌르개의 존재로 수렵생활도 병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돌무지무덤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돌칼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석기 (石器)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신창강상리유적은 함경남도 신포시 강상리(옛 북청군 속후면 강상리) 호만포 호숫가에 있는 신석기시대 후기(5000~3800년 전)의 취락유적이다. 집터 2기 외에도 여러 기의 화덕자리가 발굴되었고, 사구에 자리한 점으로 보아 한반도 동해안 주변의 사구에 자리한 신석기시대 취락유적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출토된 토기는 두만강 하류 서포항유적의 3기 특징으로, 서포항 상층 문화에 포함된다. 옌하이저우의 5000~3800년 전 자이사노프카 문화와 같은 성격이다. 그러나 남한의 동해안 주변 유적인 양양오산리선사유적과는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신창 강상리 유적 (新昌 江上里 遺蹟)
신창강상리유적은 함경남도 신포시 강상리(옛 북청군 속후면 강상리) 호만포 호숫가에 있는 신석기시대 후기(5000~3800년 전)의 취락유적이다. 집터 2기 외에도 여러 기의 화덕자리가 발굴되었고, 사구에 자리한 점으로 보아 한반도 동해안 주변의 사구에 자리한 신석기시대 취락유적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출토된 토기는 두만강 하류 서포항유적의 3기 특징으로, 서포항 상층 문화에 포함된다. 옌하이저우의 5000~3800년 전 자이사노프카 문화와 같은 성격이다. 그러나 남한의 동해안 주변 유적인 양양오산리선사유적과는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선사시대 (先史時代)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소야도패총은 신석기시대 후기와 말기에 걸쳐 중부 서해안 일대에 형성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소야도에는 지표 조사를 통해 7개의 조개더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7년 발굴 조사를 통해 일부 조개더미의 성격과 시기를 알 수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생활면과 야외 화덕자리만이 조사되어 이동성이 강한 단기 거주 유적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소야도 패총 (蘇爺島 貝塚)
소야도패총은 신석기시대 후기와 말기에 걸쳐 중부 서해안 일대에 형성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소야도에는 지표 조사를 통해 7개의 조개더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7년 발굴 조사를 통해 일부 조개더미의 성격과 시기를 알 수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생활면과 야외 화덕자리만이 조사되어 이동성이 강한 단기 거주 유적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시흥초지리패총은 경기도 안산시 초지동(옛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초지2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조개더미이다. 패총의 북쪽에서는 타날문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패총 남쪽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패각층-빗살무늬토기 산포층-기반층’으로 구성된다. 기반층에서 출토된 화덕자리는 기반층을 약 60㎝ 파서 만든 수혈식 원형 화덕자리로 지름이 160㎝인 대형 화덕자리이다. 화덕자리 주변에 숯이 넓게 분포한다.
시흥 초지리 패총 (始興 草芝里 貝塚)
시흥초지리패총은 경기도 안산시 초지동(옛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초지2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조개더미이다. 패총의 북쪽에서는 타날문토기가 주로 출토되고, 패총 남쪽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패각층-빗살무늬토기 산포층-기반층’으로 구성된다. 기반층에서 출토된 화덕자리는 기반층을 약 60㎝ 파서 만든 수혈식 원형 화덕자리로 지름이 160㎝인 대형 화덕자리이다. 화덕자리 주변에 숯이 넓게 분포한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한반도에 거주한 주민이 사용한, 표면에 빗살무늬가 있는 토기이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적 표상 중의 하나이며, 즐문토기로도 불린다. 서기전 1만 년을 전후한 무렵에 한반도에 출현하여 각 지역으로 확산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빗살무늬토기는 토기 연대와 양식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초창기, 조기, 전기, 중기, 후기, 말기 토기로 구분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다양한 기형과 문양이 출현하여 성행하며 자체적인 변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土器)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한반도에 거주한 주민이 사용한, 표면에 빗살무늬가 있는 토기이다.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물질적 표상 중의 하나이며, 즐문토기로도 불린다. 서기전 1만 년을 전후한 무렵에 한반도에 출현하여 각 지역으로 확산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빗살무늬토기는 토기 연대와 양식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초창기, 조기, 전기, 중기, 후기, 말기 토기로 구분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다양한 기형과 문양이 출현하여 성행하며 자체적인 변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시흥오이도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내 각지에 조성된 패총과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층이 오이도 내 가장 많은 지점에 분포하며 신석기층 상부에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조개껍데기층과 유구도 확인되었다.
시흥 오이도 유적 (始興 烏耳島 遺蹟)
시흥오이도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내 각지에 조성된 패총과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층이 오이도 내 가장 많은 지점에 분포하며 신석기층 상부에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조개껍데기층과 유구도 확인되었다.
연평도패총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하는 대연평도와 그 인근의 모이도, 소연평도에 형성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로, 대연평도까치산패총Ⅰ, 소연평도 제1패총, 제2패총, 옹진모이도조개더미 등이 있다. 시기적으로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말기에 해당하며, 시기별 생활상을 보여 주는 각종 유구, 토기와 석기 등의 도구, 패류와 어류, 포유류의 뼈와 유기물 등의 자연 유물이 출토되었다.
연평도 패총 (延坪島 貝塚)
연평도패총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하는 대연평도와 그 인근의 모이도, 소연평도에 형성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로, 대연평도까치산패총Ⅰ, 소연평도 제1패총, 제2패총, 옹진모이도조개더미 등이 있다. 시기적으로 신석기시대 전기부터 말기에 해당하며, 시기별 생활상을 보여 주는 각종 유구, 토기와 석기 등의 도구, 패류와 어류, 포유류의 뼈와 유기물 등의 자연 유물이 출토되었다.
양양송전리유적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 중기 생활유적이다. 이곳은 동명천 하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안사구 지대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와 야외 화덕자리 5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시기 구분은 전기의 양양오산리선사유적의 토기류나 융기문토기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빗살무늬토기가 확인되는 시기부터 중기에 해당된다.
양양 송전리 유적 (襄陽 松田里 遺蹟)
양양송전리유적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 중기 생활유적이다. 이곳은 동명천 하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안사구 지대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와 야외 화덕자리 5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시기 구분은 전기의 양양오산리선사유적의 토기류나 융기문토기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빗살무늬토기가 확인되는 시기부터 중기에 해당된다.
양양지리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지리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 중기 생활유적이다. 이곳은 화상천 하구 남쪽을 중심으로 형성된 해안사구 지대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결과, 상층에서는 철기시대 주거지 7기, 하층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10기와 야외 화덕자리 2기, 작은 깬돌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양양 지리 유적 (襄陽 池里 遺蹟)
양양지리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지리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 중기 생활유적이다. 이곳은 화상천 하구 남쪽을 중심으로 형성된 해안사구 지대에 자리한다. 발굴 조사 결과, 상층에서는 철기시대 주거지 7기, 하층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10기와 야외 화덕자리 2기, 작은 깬돌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서산대산리유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다. 학술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고 위치도 확실하지 않지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의 발굴 조사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지역의 선사 문화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다수 분포할 가능성이 높다.
서산 대산리 유적 (瑞山 大山里 遺蹟)
서산대산리유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다. 학술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고 위치도 확실하지 않지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의 발굴 조사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지역의 선사 문화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다수 분포할 가능성이 높다.
'영종도송산선사유적'은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단독 유적이다. 유적은 영종도 송산마을 남쪽 해안의 동서로 길게 뻗은 모래언덕 위에 자리한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노란모래층-검은모래층-흰모래층’으로 구분되며, 검은모래층이 신석기시대 문화층(文化層)이다. 이 층에서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21기가 조사되었다.
영종도 송산 선사유적 (永宗島 松山 先史遺蹟)
'영종도송산선사유적'은 인천광역시 중구 중산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단독 유적이다. 유적은 영종도 송산마을 남쪽 해안의 동서로 길게 뻗은 모래언덕 위에 자리한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노란모래층-검은모래층-흰모래층’으로 구분되며, 검은모래층이 신석기시대 문화층(文化層)이다. 이 층에서 신석기시대 야외 화덕자리 21기가 조사되었다.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덧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욕지도 패총 (欲知島 貝塚)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덧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마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용강 궁산리 유적 (龍岡 弓山里 遺蹟)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마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울진후포리유적은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간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단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기~전기(서기전 5000~4000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화강암괴로 둘린 부정형의 자연 구덩이를 매장 시설로 이용한 구조이다. 무덤에서는 40여 구의 사람의 뼈를 포함하여 180여 점의 간돌도끼와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 방식은 인골 출토 상태로 보아 세골장(洗骨葬)으로 추정되며, 이와 같은 장법(葬法)은 한반도 선사시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울진 후포리 유적 (蔚珍 厚浦里 遺蹟)
울진후포리유적은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간돌도끼 등이 출토된 집단묘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기~전기(서기전 5000~4000년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화강암괴로 둘린 부정형의 자연 구덩이를 매장 시설로 이용한 구조이다. 무덤에서는 40여 구의 사람의 뼈를 포함하여 180여 점의 간돌도끼와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 매장 방식은 인골 출토 상태로 보아 세골장(洗骨葬)으로 추정되며, 이와 같은 장법(葬法)은 한반도 선사시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