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실학"
검색결과 총 16건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여러 책에서 실학(實學)에 관계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편집한 실학서.
명문선 (明文選)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여러 책에서 실학(實學)에 관계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편집한 실학서.
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남인 (南人)
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조선 후기의 문신, 이형상이 남긴 저술 중 역학(易學), 속악(俗樂)·가곡, 강화(江華) 및 수어책(守禦策), 제주도 관련 저술, 국책주의록(國策奏議錄), 대마도(對馬島)·국속문자(國俗文字) 등과 관련된 저술을 모은 문집.
병와유고 (甁窩遺稿)
조선 후기의 문신, 이형상이 남긴 저술 중 역학(易學), 속악(俗樂)·가곡, 강화(江華) 및 수어책(守禦策), 제주도 관련 저술, 국책주의록(國策奏議錄), 대마도(對馬島)·국속문자(國俗文字) 등과 관련된 저술을 모은 문집.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한국의 기독교 및 근대문화 수용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를 소장, 전시하는 숭실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매산 김양선이 해방 직후 평생 수집한 기독교 및 고고미술 박물 자료를 기초로 개관한 이래 박물관 자료를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숭실대학교 부설 박물관으로 재개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崇實大學校 韓國基督敎博物館)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한국의 기독교 및 근대문화 수용을 보여주는 관련 자료를 소장, 전시하는 숭실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매산 김양선이 해방 직후 평생 수집한 기독교 및 고고미술 박물 자료를 기초로 개관한 이래 박물관 자료를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숭실대학교 부설 박물관으로 재개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위백규는 조선 후기 전라도 장흥에서 활동한 실학자이다. 윤봉구에게서 수학하여 노론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나, 다양한 학문에 대한 탐색 속에서 지방 사회의 현실과 접목하여 다양한 경세론을 제시하였다. 향촌의 자율성을 근거로 향중공론에 입각한 개혁론이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위백규 (魏伯珪)
위백규는 조선 후기 전라도 장흥에서 활동한 실학자이다. 윤봉구에게서 수학하여 노론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나, 다양한 학문에 대한 탐색 속에서 지방 사회의 현실과 접목하여 다양한 경세론을 제시하였다. 향촌의 자율성을 근거로 향중공론에 입각한 개혁론이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이용휴(李用休)는 조선 후기 『탄만집』, 『혜환시초』, 『혜환잡저』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이침(李沉)의 아들이며,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 서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작은 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용휴는 개방적이고 박학적인 태도로 양명학뿐 아니라 도가와 불교 등 다양한 사유를 흡수하였다. 그는 당시 새롭게 유입되었던 서학의 영향권에 위치한 인물로, 이러한 사상적 사유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용휴 (李用休)
이용휴(李用休)는 조선 후기 『탄만집』, 『혜환시초』, 『혜환잡저』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이침(李沉)의 아들이며,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 서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작은 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용휴는 개방적이고 박학적인 태도로 양명학뿐 아니라 도가와 불교 등 다양한 사유를 흡수하였다. 그는 당시 새롭게 유입되었던 서학의 영향권에 위치한 인물로, 이러한 사상적 사유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정전론은 조선시대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제도인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던 여러 개혁론의 총칭이다.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했던 조선시대에도 오랜 시기에 걸쳐 조정과 재야에서 정전론이 다방면으로 전개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공법(貢法)의 시행과정에서 정전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조선 후기에도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이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해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정전론 (井田論)
정전론은 조선시대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제도인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던 여러 개혁론의 총칭이다.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했던 조선시대에도 오랜 시기에 걸쳐 조정과 재야에서 정전론이 다방면으로 전개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공법(貢法)의 시행과정에서 정전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조선 후기에도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이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해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역사학자 한우근(1915~1999)이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논문을 수록하여 1961년에 간행한 학술서. 실학서.
이조후기의 사회와 사상 (李朝後期의 社會와 思想)
역사학자 한우근(1915~1999)이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논문을 수록하여 1961년에 간행한 학술서. 실학서.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최익한 (崔益翰)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이서구는 조선 후기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754년(영조 30)에 출생하여 1825년(순조 25)에 사망하였다. 자는 낙서, 호는 척재, 강산, 소완정, 석모산인이다. 홍대용과 박지원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독창과 개성, 현실 문제, 조선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관심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까지 나갔다. 1775년(영조 51)에 『한객건연집』에 참가함으로써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함께 실학사대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문집으로 『척재집』16권 7책과 『강산초집』4권 1책이 전한다.
이서구 (李書九)
이서구는 조선 후기 평안도관찰사, 형조판서,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754년(영조 30)에 출생하여 1825년(순조 25)에 사망하였다. 자는 낙서, 호는 척재, 강산, 소완정, 석모산인이다. 홍대용과 박지원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독창과 개성, 현실 문제, 조선의 역사와 자연에 대한 관심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데까지 나갔다. 1775년(영조 51)에 『한객건연집』에 참가함으로써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함께 실학사대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문집으로 『척재집』16권 7책과 『강산초집』4권 1책이 전한다.
『대동수경』은 1814년 정약용이 우리나라 주요 하천에 관하여 기록한 지리서이다. 필사본 4책으로, 크기는 25.6×17.8㎝이다. 권1∼6은 녹수(압록강), 권6∼7은 만수(두만강), 권8은 살수(청천강), 권9∼11은 패수(대동강), 권12는 저수(예성강), 권13은 대수(임진강)로 조선 북부의 6대 강을 서술하였다. 하천이 발원하여 바다로 가는 경로를 기록하고, 그곳의 지명, 역사적 사실, 관방 등을 기록하였다. 한강과 한강 이남의 하천에 대한 기록은 누락되었다. 이는 책이 흩어져 일부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다산의 실학적 지리학의 중요한 성과이다.
대동수경 (大東水經)
『대동수경』은 1814년 정약용이 우리나라 주요 하천에 관하여 기록한 지리서이다. 필사본 4책으로, 크기는 25.6×17.8㎝이다. 권1∼6은 녹수(압록강), 권6∼7은 만수(두만강), 권8은 살수(청천강), 권9∼11은 패수(대동강), 권12는 저수(예성강), 권13은 대수(임진강)로 조선 북부의 6대 강을 서술하였다. 하천이 발원하여 바다로 가는 경로를 기록하고, 그곳의 지명, 역사적 사실, 관방 등을 기록하였다. 한강과 한강 이남의 하천에 대한 기록은 누락되었다. 이는 책이 흩어져 일부가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다산의 실학적 지리학의 중요한 성과이다.
일은 수고와 노고로서의 인간 활동을 의미하는 노동 또는 근로이다. 일은 인간의 보편 활동이지만 그 의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해 왔다. 일이란 용어는 근대로 이행하면서 변화를 겪는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구분하여 전자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후자는 천한 것으로 간주한 전통 시대의 일과 연관된 용어로는 근로나 역역(力役), 고역(雇役) 등이 있다. 한국의 근대 일 개념은 근면주의가 주류를 이루어 왔지만, 이상주의는 경제 지상주의와 생산 물신주의가 압도해 온 근대의 주류 일 개념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비전을 제공한다.
일
일은 수고와 노고로서의 인간 활동을 의미하는 노동 또는 근로이다. 일은 인간의 보편 활동이지만 그 의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해 왔다. 일이란 용어는 근대로 이행하면서 변화를 겪는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구분하여 전자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후자는 천한 것으로 간주한 전통 시대의 일과 연관된 용어로는 근로나 역역(力役), 고역(雇役) 등이 있다. 한국의 근대 일 개념은 근면주의가 주류를 이루어 왔지만, 이상주의는 경제 지상주의와 생산 물신주의가 압도해 온 근대의 주류 일 개념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비전을 제공한다.
조선 후기에, 『석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나경적 (羅景績)
조선 후기에, 『석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경기도 안산시가 건립한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이익(李瀷, 1681∼1763)의 박물관.
성호박물관 (星湖博物館)
경기도 안산시가 건립한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이익(李瀷, 1681∼1763)의 박물관.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맹자요의』에서 금수와 달리 인간에게는 선악의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실학용어.
자주지권 (自主之權)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맹자요의』에서 금수와 달리 인간에게는 선악의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실학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