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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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시대 과거에서 역서법(易書法)을 채용함에 따라 수험생이 제출한 답안의 주초(朱草 : 본초를 베낀 답안)를 확인하던 관원.
사동관 (査同官)
고려·조선시대 과거에서 역서법(易書法)을 채용함에 따라 수험생이 제출한 답안의 주초(朱草 : 본초를 베낀 답안)를 확인하던 관원.
고려·조선시대 과거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
봉미 (封彌)
고려·조선시대 과거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
조선시대 문과 시권(試券 : 답안지) 역서(易書)의 정확 여부를 확인, 심사하던 과거 종사관.
지동관 (枝同官)
조선시대 문과 시권(試券 : 답안지) 역서(易書)의 정확 여부를 확인, 심사하던 과거 종사관.
무인력은 당나라의 천문학자인 부인균(傅仁均)이 편찬한 역법이다. 619년에서 664년까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반행된 역법 중 최초로 정삭법을 채용하였다. 624년 이후 고구려에 무인력으로 제작된 역서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인력 (戊寅曆)
무인력은 당나라의 천문학자인 부인균(傅仁均)이 편찬한 역법이다. 619년에서 664년까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반행된 역법 중 최초로 정삭법을 채용하였다. 624년 이후 고구려에 무인력으로 제작된 역서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시력(明時曆)은 1898년(광무 2)부터 1908년(융희 2)까지 간행된 대한제국의 역서이다. 고종 34년인 1897년(광무 1)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역서의 이름도 종래의 『시헌력(時憲曆)』에서 『명시력』으로 바꾸었다. 『명시력』은 대한제국에서 1898년부터 1908년까지 11년간 사용된 역서이다.
명시력 (明時曆)
명시력(明時曆)은 1898년(광무 2)부터 1908년(융희 2)까지 간행된 대한제국의 역서이다. 고종 34년인 1897년(광무 1)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역서의 이름도 종래의 『시헌력(時憲曆)』에서 『명시력』으로 바꾸었다. 『명시력』은 대한제국에서 1898년부터 1908년까지 11년간 사용된 역서이다.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허원 (許遠)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연신방위지도는 조선시대 역서인 일과력(日課曆)과 내용삼력(內用三曆)의 두 번째 장에 수록된 도상(圖像)이다. 그해 길흉신들이 위치한 방위들을 표시한 그림이다. 연신방위도의 가운데 부분에는 이십사방위가 표시되어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각종 길흉의 신들의 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태세(太歲)와 세덕(歲德), 주서(奏書), 박사(博士), 역사(力士), 잠실(蠶室)이다. 조선시대에는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의 위치를 보고서 특정한 행사나 행위에 대한 길흉을 미리 점치고 일상생활에 활용하였다.
연신방위지도 (年神方位之圖)
연신방위지도는 조선시대 역서인 일과력(日課曆)과 내용삼력(內用三曆)의 두 번째 장에 수록된 도상(圖像)이다. 그해 길흉신들이 위치한 방위들을 표시한 그림이다. 연신방위도의 가운데 부분에는 이십사방위가 표시되어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각종 길흉의 신들의 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태세(太歲)와 세덕(歲德), 주서(奏書), 박사(博士), 역사(力士), 잠실(蠶室)이다. 조선시대에는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의 위치를 보고서 특정한 행사나 행위에 대한 길흉을 미리 점치고 일상생활에 활용하였다.
삼력청은 조선 후기 관상감에서 역서의 편찬을 담당하는 관원들인 삼력관(三曆官)들의 조직이다. 삼력관은 음양과(陰陽科)를 통과하여 관상감에서 천문학 분과의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관원들 중에서 취재를 통하여 선발되었으며, 그 정원은 시대에 따라 30인, 35인으로 한정되었다. 삼력관들로 구성된 삼력청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상감의 핵심 조직으로서 관상감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었다. 삼력청은 삼력관들이 근무하는 건물을 가리키기도 하며, 삼력청 건물은 1731년(영조 7)에 관상감 본청 건물 뒤에 건립되었다.
삼력청 (三曆廳)
삼력청은 조선 후기 관상감에서 역서의 편찬을 담당하는 관원들인 삼력관(三曆官)들의 조직이다. 삼력관은 음양과(陰陽科)를 통과하여 관상감에서 천문학 분과의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관원들 중에서 취재를 통하여 선발되었으며, 그 정원은 시대에 따라 30인, 35인으로 한정되었다. 삼력관들로 구성된 삼력청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상감의 핵심 조직으로서 관상감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었다. 삼력청은 삼력관들이 근무하는 건물을 가리키기도 하며, 삼력청 건물은 1731년(영조 7)에 관상감 본청 건물 뒤에 건립되었다.
삼력수술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일반 백성들과 왕실에서 사용하는 역서를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는 매년 10월에 이듬해의 일반 민들이 사용하는 역서인 일과(日課)와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역서인 내용삼력(內用三曆)의 편찬을 담당했던 관원들을 선발하였다. 삼력수술관들의 명단은 그해의 일과와 내용삼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수술관(修述官)이라는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삼력수술관 (三曆修述官)
삼력수술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일반 백성들과 왕실에서 사용하는 역서를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는 매년 10월에 이듬해의 일반 민들이 사용하는 역서인 일과(日課)와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역서인 내용삼력(內用三曆)의 편찬을 담당했던 관원들을 선발하였다. 삼력수술관들의 명단은 그해의 일과와 내용삼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수술관(修述官)이라는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칠정추보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천체들의 운행과 위치를 미리 예측해 놓은 천문력(天文曆, ephemeris)인 칠정력(七政曆)을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칠정추보관은 삼력수술관과 마찬가지로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이 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 매년 10월에 이듬해에 사용할 칠정력의 편찬을 담당할 관원들을 미리 선발하였다. 칠정추보관들의 명단은 그해 칠정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추보관(推步官)이란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칠정추보관 (七政推步官)
칠정추보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천체들의 운행과 위치를 미리 예측해 놓은 천문력(天文曆, ephemeris)인 칠정력(七政曆)을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칠정추보관은 삼력수술관과 마찬가지로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이 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 매년 10월에 이듬해에 사용할 칠정력의 편찬을 담당할 관원들을 미리 선발하였다. 칠정추보관들의 명단은 그해 칠정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추보관(推步官)이란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대통추보관은 조선 후기에 『대통칠정력(大統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였던 관원이다. 조선 후기에 대통력(大統曆)의 방법, 정확히 말하자면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방법으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계산하여 『칠정력(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는 관원을 말한다. 대통추보관의 직책은 1791년(정조 15)에 철폐되었는데, 그 계산과 편찬의 업무는 삼력관(三曆官)의 하위에 설치된 수술관(修述官)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
대통추보관 (大統推步官)
대통추보관은 조선 후기에 『대통칠정력(大統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였던 관원이다. 조선 후기에 대통력(大統曆)의 방법, 정확히 말하자면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방법으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계산하여 『칠정력(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는 관원을 말한다. 대통추보관의 직책은 1791년(정조 15)에 철폐되었는데, 그 계산과 편찬의 업무는 삼력관(三曆官)의 하위에 설치된 수술관(修述官)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
일과력은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간행한 여러 가지 역서(曆書)들 중에서 왕실과 조정, 그리고 민간에까지 배포되어서 널리 사용되었던 상용력이다. 일과력은 평년의 경우 15장, 윤년의 경우 16장으로 구성되었다. 일과력은 가장 많이 인쇄되었던 역서인데, 18세기 초부터 인쇄 부수가 급증하여 18세기 말에는 38만 부에까지 이르렀다.
일과력 (日課曆)
일과력은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간행한 여러 가지 역서(曆書)들 중에서 왕실과 조정, 그리고 민간에까지 배포되어서 널리 사용되었던 상용력이다. 일과력은 평년의 경우 15장, 윤년의 경우 16장으로 구성되었다. 일과력은 가장 많이 인쇄되었던 역서인데, 18세기 초부터 인쇄 부수가 급증하여 18세기 말에는 38만 부에까지 이르렀다.
월력장은 조선시대에 역서의 첫 번재 장(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해 역서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한 장(2페이지)에 요약, 수록하여 한 해의 역일(曆日) 정보를 한눈에 일람할 수 있게 한 장을 말한다. 월력장에는 그해의 역일 정보와 24절기의 날짜, 시각에 대한 정보만이 수록되었다. 단력장(單曆張)이라고도 지칭하였다.
월력장 (月曆張)
월력장은 조선시대에 역서의 첫 번재 장(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해 역서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한 장(2페이지)에 요약, 수록하여 한 해의 역일(曆日) 정보를 한눈에 일람할 수 있게 한 장을 말한다. 월력장에는 그해의 역일 정보와 24절기의 날짜, 시각에 대한 정보만이 수록되었다. 단력장(單曆張)이라고도 지칭하였다.
천문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천문(天文)에 대한 관측과 역산(曆算)을 통한 역서(曆書) 편찬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문학 분과의 삼력관(三曆官)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삼력청(三曆廳)이 천문학 분과뿐만 아니라 관상감 전체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지휘하게 되었다.
천문학(관상감) (天文學(觀象監))
천문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천문(天文)에 대한 관측과 역산(曆算)을 통한 역서(曆書) 편찬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문학 분과의 삼력관(三曆官)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삼력청(三曆廳)이 천문학 분과뿐만 아니라 관상감 전체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지휘하게 되었다.
칠정력은 조선시대에 매년 간행된 역서들 중에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담고 있는 천체력이다. 칠정력은 일반적으로 관상감의 천문학자들이 행성의 위치와 일월식(日月蝕)의 시점에 대한 정보를 참고하고자 역서이었기에 일반인들에게는 배포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칠정력은 금속활자로 2부만 인쇄되었으며, 1부는 국왕에게 진상되고 나머지 1부는 관상감에 비치해 두어서 관상감의 천문학 분과 관원들이 참고하고 활용하게 만들었다.
칠정력 (七政曆)
칠정력은 조선시대에 매년 간행된 역서들 중에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담고 있는 천체력이다. 칠정력은 일반적으로 관상감의 천문학자들이 행성의 위치와 일월식(日月蝕)의 시점에 대한 정보를 참고하고자 역서이었기에 일반인들에게는 배포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칠정력은 금속활자로 2부만 인쇄되었으며, 1부는 국왕에게 진상되고 나머지 1부는 관상감에 비치해 두어서 관상감의 천문학 분과 관원들이 참고하고 활용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