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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만주지역에 거주한 한국의 종족 명칭을 가리키는 역사용어. 예맥족.
예맥 (濊貊)
고대 만주지역에 거주한 한국의 종족 명칭을 가리키는 역사용어. 예맥족.
예학은 유학에서 예의 학술적 의미를 확정하고 실천적 내용을 규정하는 학문이다. 유학의 출현과 함께 예의 개념적 정의와 실천적 내용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학문이다. 특히 성리학에 이르러 예를 천리와 인사를 연결하는 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표방하면서 이기론과 같은 이론철학도 발전하였지만 실천철학적 성격이 짙은 예학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학술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예학 (禮學)
예학은 유학에서 예의 학술적 의미를 확정하고 실천적 내용을 규정하는 학문이다. 유학의 출현과 함께 예의 개념적 정의와 실천적 내용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학문이다. 특히 성리학에 이르러 예를 천리와 인사를 연결하는 철학적 차원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표방하면서 이기론과 같은 이론철학도 발전하였지만 실천철학적 성격이 짙은 예학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학술적 업적을 성취하였다.
삼국시대 백제 북방령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예식진 (禰寔進)
삼국시대 백제 북방령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유민.
귀명삼보는 삼보에 귀명해야 한다는 불교 교리이다. 붓다에게 몸과 마음을 던져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삼보는 불보와 법보와 승보이다. 옛 논사들이 논을 지을 때 또는 현대 사원의 불교의례에서 항상 사용하는 예불의례 가운데 삼보에 귀명할 것을 다짐한다. 당나라 법장은 대승기신론에서 귀경게를 통해 삼보에 귀명함으로써 붓다의 뛰어난 힘을 요청하고 의지하여 논을 짓는다고 하였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귀명은 신심의 극치를 나타낸다고 설명하였다.
귀명삼보 (歸命三寶)
귀명삼보는 삼보에 귀명해야 한다는 불교 교리이다. 붓다에게 몸과 마음을 던져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삼보는 불보와 법보와 승보이다. 옛 논사들이 논을 지을 때 또는 현대 사원의 불교의례에서 항상 사용하는 예불의례 가운데 삼보에 귀명할 것을 다짐한다. 당나라 법장은 대승기신론에서 귀경게를 통해 삼보에 귀명함으로써 붓다의 뛰어난 힘을 요청하고 의지하여 논을 짓는다고 하였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귀명은 신심의 극치를 나타낸다고 설명하였다.
조선시대 관곽(棺槨) 판매와 예장(禮葬 : 예식을 갖추어서 치르는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주는 일을 담당하던 관서.
귀후서 (歸厚署)
조선시대 관곽(棺槨) 판매와 예장(禮葬 : 예식을 갖추어서 치르는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주는 일을 담당하던 관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성곽터. 토성지(土城址).
강릉 토성지 (江陵 土城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성곽터. 토성지(土城址).
조선 중기에, 자여도찰방, 안음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곽준 (郭䞭)
조선 중기에, 자여도찰방, 안음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말기에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소악부(小樂府).
관극팔령 (觀劇八令)
조선 말기에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소악부(小樂府).
강원도 춘천지역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小國).
맥국 (貊國)
강원도 춘천지역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小國).
맥궁(貊弓)은 3세기 무렵 소수맥의 거주지에서 생산되던 명궁의 하나이다. 소수맥은 소수에 거주하였는데, 지금의 압록강 하류 일대로 파악된다. 3세기 초반 위나라 조조의 세력이 부상하자 예와 맥이 좋은 활을 공물로 보냈다고 하는데, 이때 소수맥의 맥궁이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맥궁 (貊弓)
맥궁(貊弓)은 3세기 무렵 소수맥의 거주지에서 생산되던 명궁의 하나이다. 소수맥은 소수에 거주하였는데, 지금의 압록강 하류 일대로 파악된다. 3세기 초반 위나라 조조의 세력이 부상하자 예와 맥이 좋은 활을 공물로 보냈다고 하는데, 이때 소수맥의 맥궁이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거향잡의』는 1912년경 조선 전기 문신 김성일이 『향교예집』에서 발췌한 내용을 엮어 간행한 예서이다. 조선 향촌 사회에서 지켜야 할 다양한 일상 예절을 항목별로 정리한 실용서이다. 이 책은 김성일의 조카와 제자에 의해 필사된 후, 1912년경 후손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향촌의 유교적 풍속 교화를 목적으로 한 이 책은 예속이 생활 속에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거향잡의 (居鄕雜儀)
『거향잡의』는 1912년경 조선 전기 문신 김성일이 『향교예집』에서 발췌한 내용을 엮어 간행한 예서이다. 조선 향촌 사회에서 지켜야 할 다양한 일상 예절을 항목별로 정리한 실용서이다. 이 책은 김성일의 조카와 제자에 의해 필사된 후, 1912년경 후손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향촌의 유교적 풍속 교화를 목적으로 한 이 책은 예속이 생활 속에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박양유 (朴良柔)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동자례』는 1912년경 조선 전기 문신 김성일이 『향교예집』에서 발췌한 내용을 엮어 간행한 예서이다. 김성일의 조카와 제자에 의해 필사된 후, 1912년경 후손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거향잡의」와 함께 묶여 ‘동자례’라는 명칭으로 간행되었다. 「동자례」는 어렸을 때의 예의범절을 다루고 있고, 「거향잡의」는 향촌에 거처하면서 지켜야 하는 다양한 의례를 항목별로 제시하여 선비가 일상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의절을 제시하고 있다.
동자례 (童子禮)
『동자례』는 1912년경 조선 전기 문신 김성일이 『향교예집』에서 발췌한 내용을 엮어 간행한 예서이다. 김성일의 조카와 제자에 의해 필사된 후, 1912년경 후손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거향잡의」와 함께 묶여 ‘동자례’라는 명칭으로 간행되었다. 「동자례」는 어렸을 때의 예의범절을 다루고 있고, 「거향잡의」는 향촌에 거처하면서 지켜야 하는 다양한 의례를 항목별로 제시하여 선비가 일상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의절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14왕비.
대명주원부인 (大溟州院夫人)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제14왕비.
초기국가시대 위만조선 말기 예족의 군장.
남려 (南閭)
초기국가시대 위만조선 말기 예족의 군장.
태봉의 중앙 관부.
남상단 (南廂壇)
태봉의 중앙 관부.
조선시대 목공과 건축에 사용하던 척도. 목공척.
영조척 (營造尺)
조선시대 목공과 건축에 사용하던 척도. 목공척.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유리왕 (琉璃王)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전기에, 예문관제학, 선공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유순도 (庾順道)
조선 전기에, 예문관제학, 선공감정 등을 역임한 문신.
초기국가시대 서씨 성을 하사받은 예국의 군장.
여수기 (余守己)
초기국가시대 서씨 성을 하사받은 예국의 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