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육군사관학교"
검색결과 총 15건
강근호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고 러시아로 넘어가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반공 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다. 다시 만주로 돌아와 교육 활동에 종사하고 군사훈련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에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강근호 (姜槿虎)
강근호는 일제강점기,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청산리 대첩에 참여하고 러시아로 넘어가 자유시사변을 겪은 후 반공 투쟁을 벌이다 옥고를 치렀다. 다시 만주로 돌아와 교육 활동에 종사하고 군사훈련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후에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해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내에 있는 군사 전문박물관.
육군박물관 (陸軍博物館)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내에 있는 군사 전문박물관.
이병희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장, 국회의원, 국회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6년 출생하여 1997년 사망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정보계통(육군특무대)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1962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을 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다. 1962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이듬해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었다. 이후 7·8·9·10·13·15대까지 지역구에서만 7선을 기록하였다. 1969년에는 국회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1964년부터 1996년까지는 아세아자유청년연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이병희 (李秉禧)
이병희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장, 국회의원, 국회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6년 출생하여 1997년 사망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정보계통(육군특무대)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1962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을 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다. 1962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이듬해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었다. 이후 7·8·9·10·13·15대까지 지역구에서만 7선을 기록하였다. 1969년에는 국회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1964년부터 1996년까지는 아세아자유청년연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이용문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 수도사단장, 남부지구 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주둔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근무하였다.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현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귀국 후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육사 제8기 특대생으로 소령에 임관하였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 명령을 거부하였다가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지휘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이용문 (李龍文)
이용문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 수도사단장, 남부지구 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주둔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근무하였다.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현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귀국 후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육사 제8기 특대생으로 소령에 임관하였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 명령을 거부하였다가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지휘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해방 이후 미국대사관 국방무관,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육군준장 등을 역임한 군인. 공무원.
김성진 (金聖鎭)
해방 이후 미국대사관 국방무관,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육군준장 등을 역임한 군인. 공무원.
한국과학원 교수, 한국과학기술원장,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한 과학자·관료.
이정오 (李正五)
한국과학원 교수, 한국과학기술원장,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한 과학자·관료.
해방 이후 제29대 육군참모차장, 육군대장, 제2군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차규헌 (車圭憲)
해방 이후 제29대 육군참모차장, 육군대장, 제2군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
최경록은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방연구원장, 육군참모총장, 교통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20년 충북 음성 출신으로 일본 도요하시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의 창군 멤버로 참여했다. 육군 제11연대장, 헌병사령관,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8사단장, 국방연구원장,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멕시코 대사, 영국 대사, 교통부 장관, 일본 대사, 외무부 본부대사직 등에 재임하였다.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수교훈장 광화장, 미국 리존오브메리트, 일본 1등 훈장 등을 받았다.
최경록 (崔慶祿)
최경록은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방연구원장, 육군참모총장, 교통부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920년 충북 음성 출신으로 일본 도요하시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의 창군 멤버로 참여했다. 육군 제11연대장, 헌병사령관, 육군사관학교 교장, 제8사단장, 국방연구원장,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멕시코 대사, 영국 대사, 교통부 장관, 일본 대사, 외무부 본부대사직 등에 재임하였다.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수교훈장 광화장, 미국 리존오브메리트, 일본 1등 훈장 등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학생조직을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한 군인·독립운동가.
신대걸 (申大杰)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학생조직을 결성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한 군인·독립운동가.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민주공화당 충주·중원지역구 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이종근 (李鍾根)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민주공화당 충주·중원지역구 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해방 이후 주월남 한국군 행정부사령관, 전라남북도 계엄분소장, 중장 등을 역임한 군인. 정무직공무원.
윤흥정 (尹興禎)
해방 이후 주월남 한국군 행정부사령관, 전라남북도 계엄분소장, 중장 등을 역임한 군인. 정무직공무원.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만든 비공식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군부.
신군부 (新軍部)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만든 비공식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군부.
1946년 5월 1일 창설된 군 간부 양성학교.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南朝鮮國防警備士官學校)
1946년 5월 1일 창설된 군 간부 양성학교.
강영훈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소위, 대한민국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만주 건국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동원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소위로 자동 전역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다가 반혁명세력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었고, 1961년 9월 강제 예편당하였다. 1988년 국무총리에 취임하였고, 1990년 남북총리회담을 이끌었다.
강영훈 (姜英勳)
강영훈은 일제강점기~현대에 일본군 소위, 대한민국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만주 건국대학 재학 중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동원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소위로 자동 전역하였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국방부 차관, 연합참모본부장, 육군사관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당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다가 반혁명세력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었고, 1961년 9월 강제 예편당하였다. 1988년 국무총리에 취임하였고, 1990년 남북총리회담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