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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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1920년 계봉우가 한말의 의병항쟁을 국내외에서 활약한 의병장을 중심으로 기술한 의병록.
의병전 (義兵傳)
1920년 계봉우가 한말의 의병항쟁을 국내외에서 활약한 의병장을 중심으로 기술한 의병록.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김도현 (金道鉉)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김동신은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6년부터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전국적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서 기우만, 고광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순창, 남원, 용담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동신 (金東臣)
김동신은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6년부터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전국적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서 기우만, 고광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순창, 남원, 용담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출전하여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전사한 의사(義士).
명광계 (明光啓)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출전하여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전사한 의사(義士).
대한제국기 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다가 을사조약 체결 이후 연합의병의 대장으로 활약한 문신·의병장.
민종식 (閔宗植)
대한제국기 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다가 을사조약 체결 이후 연합의병의 대장으로 활약한 문신·의병장.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염걸의 무덤.
강진 염걸 장군 묘소 (康津 廉傑 將軍 墓所)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 염걸의 무덤.
대한제국기 때, 의병 부대를 편성하여 여수의 원포리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강진원 (姜振遠)
대한제국기 때, 의병 부대를 편성하여 여수의 원포리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김산의진 (金山義陣)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박근제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으로 전라좌의병에서 활동하였다. 왕세자 사부 박광전(朴光前)의 아들이며, 학문이 뛰어나 '남주고사(南州高士)'라 칭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에 종군하였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아버지 박광전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였다.
박근제 (朴根悌)
박근제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으로 전라좌의병에서 활동하였다. 왕세자 사부 박광전(朴光前)의 아들이며, 학문이 뛰어나 '남주고사(南州高士)'라 칭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를 따라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에 종군하였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아버지 박광전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였다.
박근효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으로 전라좌의병에서 활동하였다. 왕세자 사부 박광전의 아들이며,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를 따라 의병을 일으켰으며, 전라좌의병에 종군하여 2차 진주성전투에 출전하였다.
박근효 (朴根孝)
박근효는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으로 전라좌의병에서 활동하였다. 왕세자 사부 박광전의 아들이며,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를 따라 의병을 일으켰으며, 전라좌의병에 종군하여 2차 진주성전투에 출전하였다.
김성하는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는 김장생의 의병진에서 활약하였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임금을 호종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갔다. 호종한 공로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첩을 받고 부호군(副護軍)에 임명되었다. 학업과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역서(易書)와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김성하 (金聲夏)
김성하는 조선 후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한 문신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는 김장생의 의병진에서 활약하였으며,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임금을 호종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갔다. 호종한 공로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의 첩을 받고 부호군(副護軍)에 임명되었다. 학업과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역서(易書)와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정운경이 의병항쟁에 관하여 저술한 의병록.
동유록 (同遊錄)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정운경이 의병항쟁에 관하여 저술한 의병록.
1908년 호남지역에서 조직되었던 의병진(義兵陣).
대동창의단 (大東倡義團)
1908년 호남지역에서 조직되었던 의병진(義兵陣).
대한제국기 때. 지리산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권석도 (權錫燾)
대한제국기 때. 지리산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충청북도 지방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의병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이 임박하자 단식하여 23일 만에 사망하였다.
박세화 (朴世和)
조선 말기에서 대한제국기 충청북도 지방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대하여 의병을 계획하다가 체포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남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다시 체포되었고,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이 임박하자 단식하여 23일 만에 사망하였다.
조선 중기에, 『건재일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공을 세워 군자감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한 학자.
박수일 (朴遂一)
조선 중기에, 『건재일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공을 세워 군자감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한 학자.
박승원은 임진왜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때 당시에 활동한 의병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형과 함께 고경명 의병에 합류하였다. 정유재란 당시 임환 등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수군에 군량을 공급하였다. 이괄의 난 때는 군사 및 군량을 모았으며,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박승원 (朴承源)
박승원은 임진왜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 때 당시에 활동한 의병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형과 함께 고경명 의병에 합류하였다. 정유재란 당시 임환 등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수군에 군량을 공급하였다. 이괄의 난 때는 군사 및 군량을 모았으며,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권응심은 경상좌도 신령(新寧) 출신으로, 종형 권응수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성을 탈환하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문장에 제수되었고, 문경과 안동의 일본군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 울산 도산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권응심 (權應心)
권응심은 경상좌도 신령(新寧) 출신으로, 종형 권응수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성을 탈환하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문장에 제수되었고, 문경과 안동의 일본군을 격퇴하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 울산 도산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한 의병.
박안도 (朴安道)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종사관으로 활동하였고,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한 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