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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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로 귀화하여 한인중학교를 설립하고, 교포 단체 신문인 『대동공보』를 인수하여 언론투쟁을 벌였으며, 의병을 모집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병장·군인·독립운동가.
최재형 (崔在亨)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로 귀화하여 한인중학교를 설립하고, 교포 단체 신문인 『대동공보』를 인수하여 언론투쟁을 벌였으며, 의병을 모집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의병장·군인·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때 의병가를 만들고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6세 때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에게 출가했다.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이 춘천과 가평 일대에서 의병 작전을 전개할 때,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 ·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직접 · 간접으로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35년 8월 1일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1983년 8월 3일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윤희순 (尹熙順)
대한제국기 때 의병가를 만들고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독립운동가이다. 16세 때 고흥유씨(高興柳氏) 유제원(柳濟遠)에게 출가했다. 1895년 시아버지 유홍석(柳弘錫)이 춘천과 가평 일대에서 의병 작전을 전개할 때,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 ·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직접 · 간접으로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35년 8월 1일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1983년 8월 3일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대한제국기에 조선통감부가 서울 현저동에 설치한 감옥.
서대문형무소 (西大門刑務所)
대한제국기에 조선통감부가 서울 현저동에 설치한 감옥.
개항기 때, 19세의 나이로 경상북도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킨 평민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 (申乭石)
개항기 때, 19세의 나이로 경상북도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킨 평민 출신의 의병장.
1909년 2월 7일 러시아 그라스키노[延秋] 근처 카리[下里]에서 안중근을 중심으로 결성된 소규모 결사대.
단지동맹 (斷指同盟)
1909년 2월 7일 러시아 그라스키노[延秋] 근처 카리[下里]에서 안중근을 중심으로 결성된 소규모 결사대.
남한폭도 대토벌작전은 대한제국기 일제가 국내의 의병세력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펼친 군사작전이다. 호남지역은 반일의식이 강하여 의병운동이 특히 활발한 곳이었다. 1909년 통계를 보면 호남지역의 전투의병 수가 전체의 과반을 넘었다. 일제는 호남지역 의병을 완전히 진압하지 않고서는 의병 소탕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의병 1만 7,779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376명, 포로가 2,139명 나왔다. 이 작전 후 근거지를 상실한 의병세력은 만주·연해주 등지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남한 대토벌 작전 (南韓 大討伐 作戰)
남한폭도 대토벌작전은 대한제국기 일제가 국내의 의병세력을 완전히 진압하기 위해 펼친 군사작전이다. 호남지역은 반일의식이 강하여 의병운동이 특히 활발한 곳이었다. 1909년 통계를 보면 호남지역의 전투의병 수가 전체의 과반을 넘었다. 일제는 호남지역 의병을 완전히 진압하지 않고서는 의병 소탕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의병 1만 7,779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376명, 포로가 2,139명 나왔다. 이 작전 후 근거지를 상실한 의병세력은 만주·연해주 등지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였다.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의병부대이다. 총병력은 1만명에 이르렀고 그 중에 해산군인 3,00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병장은 모두 양반 유생 신분으로서 천민 출신 돌석이나 평민 출신 홍범도(洪範圖) · 김수민(金秀民) 등의 의병장은 연합전선에 참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서울탈환작전을 수행했으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받아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13도창의군은 위정척사계열 의병장의 한계성을 보여준 단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
십삼도창의군 (十三道倡義軍)
1907년 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되었던 항일의병부대이다. 총병력은 1만명에 이르렀고 그 중에 해산군인 3,00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병장은 모두 양반 유생 신분으로서 천민 출신 돌석이나 평민 출신 홍범도(洪範圖) · 김수민(金秀民) 등의 의병장은 연합전선에 참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서울탈환작전을 수행했으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받아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13도창의군은 위정척사계열 의병장의 한계성을 보여준 단적인 예로 평가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대한광복단 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한 의병장·독립운동가.
이범윤 (李範允)
일제강점기 때,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대한광복단 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한 의병장·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서창의대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
이강년 (李康秊)
대한제국기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서창의대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
개항기 때, 호남지방에서 기삼연과 합세하여 호남창의 총수로 활약한 의병장.
기우만 (奇宇萬)
개항기 때, 호남지방에서 기삼연과 합세하여 호남창의 총수로 활약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다가 을사조약 체결 이후 연합의병의 대장으로 활약한 문신·의병장.
민종식 (閔宗植)
대한제국기 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다가 을사조약 체결 이후 연합의병의 대장으로 활약한 문신·의병장.
허위는 대한제국기 13도 의병연합부대 군사장을 역임한 의병장이다. 1855년(철종 6)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했다. 경북 구미 출신으로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이기찬, 이은찬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 양주에 집결한 의병연합부대의 군사장(軍師長)으로 서울로 진격하였다. 임진강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하여 유격전술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연합부대를 지휘하며 항일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허위 (許蔿)
허위는 대한제국기 13도 의병연합부대 군사장을 역임한 의병장이다. 1855년(철종 6)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했다. 경북 구미 출신으로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이기찬, 이은찬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고종 강제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 양주에 집결한 의병연합부대의 군사장(軍師長)으로 서울로 진격하였다. 임진강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하여 유격전술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연합부대를 지휘하며 항일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이석용은 대한제국기 임실, 순창, 태인, 남원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1878년(고종 15)에 태어나 1914년에 사망했다. 1907년 기삼연이 호남창의맹소를 구성하자 전해산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의병창의동맹이라는 독자적인 의진을 구축하였다.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진안·용담·정천·임실·순창 등지를 거쳐 태인·남원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의진을 해산한 후 잠행하던 중 붙잡혀 1914년 1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4월 대구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의병활동에 관한 진중일기를 남겨 『정재선생호남창의일록』이 간행되었다.
이석용 (李錫庸)
이석용은 대한제국기 임실, 순창, 태인, 남원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1878년(고종 15)에 태어나 1914년에 사망했다. 1907년 기삼연이 호남창의맹소를 구성하자 전해산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의병창의동맹이라는 독자적인 의진을 구축하였다.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진안·용담·정천·임실·순창 등지를 거쳐 태인·남원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의진을 해산한 후 잠행하던 중 붙잡혀 1914년 1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4월 대구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의병활동에 관한 진중일기를 남겨 『정재선생호남창의일록』이 간행되었다.
대한제국기 때, 원주진위대의 정교 등을 역임하다가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려 하자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민긍호 (閔肯鎬)
대한제국기 때, 원주진위대의 정교 등을 역임하다가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려 하자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김도현 (金道鉉)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기삼연은 개항기 호남창의맹소의 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51년(철종 2)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하였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맹소 대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9월 고창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도 연승하였다. 12월 의병부대를 이끌고 담양 추월산성에 들어갔다가 적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탈출에 성공하여 순창 산중에 은신하던 중에 체포되어 1908년 1월 광주 서천교 아래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기삼연 (奇參衍)
기삼연은 개항기 호남창의맹소의 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51년(철종 2)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하였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맹소 대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9월 고창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도 연승하였다. 12월 의병부대를 이끌고 담양 추월산성에 들어갔다가 적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탈출에 성공하여 순창 산중에 은신하던 중에 체포되어 1908년 1월 광주 서천교 아래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대한제국기 때, 13도의병연합부대와 임진강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하여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이은찬 (李殷瓚)
대한제국기 때, 13도의병연합부대와 임진강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하여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개항기 때, 제천의진에서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서무를 담당하였으며, 「고병정가」를 지어 의병들의 애국심을 고취한 의병·독립운동가.
유홍석 (柳弘錫)
개항기 때, 제천의진에서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서무를 담당하였으며, 「고병정가」를 지어 의병들의 애국심을 고취한 의병·독립운동가.
이인섭은 구한말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연해주에서 김알렉산드리아 등과 교섭하며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하여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 선전선동부원 등을 역임하였다. 국내에서는 대한독립단원을 원조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인섭 (李仁燮)
이인섭은 구한말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연해주에서 김알렉산드리아 등과 교섭하며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하여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 선전선동부원 등을 역임하였다. 국내에서는 대한독립단원을 원조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