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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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때,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창의군에서 도총재로 활동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유인석 (柳麟錫)
대한제국기 때,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창의군에서 도총재로 활동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개항기 때, 19세의 나이로 경상북도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킨 평민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 (申乭石)
개항기 때, 19세의 나이로 경상북도 영해에서 의병을 일으킨 평민 출신의 의병장.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덕령 장군 의복 (金德領 將軍 衣服)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한제국기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안규홍 (安圭洪)
대한제국기 때, 전라남도 보성에서 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김도현 (金道鉉)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양대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자 시인으로, 시문집 『청계집』을 남긴 문인인다. 시문으로 유명하였고, 삼당파 시인으로 불렸던 이달‧백광훈‧임제와 교류하면서 시회를 열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재능으로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재를 들여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웠다. 의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피로가 축적되어 병사하였다.
양대박 (梁大樸)
양대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자 시인으로, 시문집 『청계집』을 남긴 문인인다. 시문으로 유명하였고, 삼당파 시인으로 불렸던 이달‧백광훈‧임제와 교류하면서 시회를 열었다. 당대를 대표하는 재능으로 평가를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재를 들여 의병을 모아 일본군과 싸웠다. 의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피로가 축적되어 병사하였다.
대한제국기 고막병참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전기홍 (全其泓)
대한제국기 고막병참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민용호는 1890년대 강릉을 중심으로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 활동을 한 의병장이다. 원래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강릉으로 들어가서 관동 지방의 의병 세력을 규합하고 고성, 양양 등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강릉을 떠나 회양과 금성 방문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후 북쪽으로 행군하여 만주로 들어가면서 의병 활동을 종료하였다.
민용호 (閔龍鎬)
민용호는 1890년대 강릉을 중심으로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 활동을 한 의병장이다. 원래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강릉으로 들어가서 관동 지방의 의병 세력을 규합하고 고성, 양양 등지를 점령하였다. 이후 강릉을 떠나 회양과 금성 방문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후 북쪽으로 행군하여 만주로 들어가면서 의병 활동을 종료하였다.
김연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장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김대해, 유생 최인제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성을 수복하였다. 이어서 경주를 수복하기 위해 경상좌병사 박진 휘하의 부대와 연합하여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뒷날 한성부 판관에 추증되었다.
김연 (金演)
김연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장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카 김대해, 유생 최인제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성을 수복하였다. 이어서 경주를 수복하기 위해 경상좌병사 박진 휘하의 부대와 연합하여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뒷날 한성부 판관에 추증되었다.
화원 우배선 의병진 관련 자료는 조선시대 문신·의병장 우배선의 군사상의 공적과 그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우배선(1569~1621)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지역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된 의병장이다. 그의 군사상의 공적과 관련된 자료는 4종 15점으로, 군공책 『창의유록』 1점, 교첩 2점, 교지 10점, 간찰 1점, 각택기 1점 등이다. 특히, 『창의유록』은 전국적으로 유일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 보고서로 대구지방의 의병활동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화원 우배선 의병진 관련 자료 (花園 禹拜善 義兵陳 關聯 資料)
화원 우배선 의병진 관련 자료는 조선시대 문신·의병장 우배선의 군사상의 공적과 그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문서이다. 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우배선(1569~1621)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지역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된 의병장이다. 그의 군사상의 공적과 관련된 자료는 4종 15점으로, 군공책 『창의유록』 1점, 교첩 2점, 교지 10점, 간찰 1점, 각택기 1점 등이다. 특히, 『창의유록』은 전국적으로 유일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 보고서로 대구지방의 의병활동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박춘무는 임진왜란 때 청주성 수복을 이끌었던 의병장이자 문신이다. 청주성 수복은 임진왜란 초기 육상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이다. 토정 이지함의 문인으로 동문수학한 조헌과 호서 지역 의병을 이끌었으며, 청주성 수복 이후 진천 전투에서도 승리하였다.
박춘무 (朴春茂)
박춘무는 임진왜란 때 청주성 수복을 이끌었던 의병장이자 문신이다. 청주성 수복은 임진왜란 초기 육상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이다. 토정 이지함의 문인으로 동문수학한 조헌과 호서 지역 의병을 이끌었으며, 청주성 수복 이후 진천 전투에서도 승리하였다.
김동신은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6년부터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전국적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서 기우만, 고광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순창, 남원, 용담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동신 (金東臣)
김동신은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6년부터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전국적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서 기우만, 고광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순창, 남원, 용담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선 중기의 의병장, 김덕령의 행록과 시문을 수록하여 1796년에 간행한 시문집.
김충장공 유사 (金忠壯公 遺事)
조선 중기의 의병장, 김덕령의 행록과 시문을 수록하여 1796년에 간행한 시문집.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도산전투에 참전한 학자·의병장.
심청 (沈淸)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도산전투에 참전한 학자·의병장.
박사제는 조선 후기 경상도 삼가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던 의병장이자 형조참의를 지낸 문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경상우도에 침입한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박사제 (朴思齊)
박사제는 조선 후기 경상도 삼가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던 의병장이자 형조참의를 지낸 문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경상우도에 침입한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창후는 임진왜란 당시, 형 이광후와 함께 곽재우의 휘하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형을 따라 전후 8년 동안 곽재우의 막하에서 활동하면서 정진을 방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곽재우를 따라 화왕산성을 지켰다. 향리에서는 이름난 효자였다.
이창후 (李昌後)
이창후는 임진왜란 당시, 형 이광후와 함께 곽재우의 휘하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형을 따라 전후 8년 동안 곽재우의 막하에서 활동하면서 정진을 방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곽재우를 따라 화왕산성을 지켰다. 향리에서는 이름난 효자였다.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
박대덕 (朴大德)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
김도숙은 대한제국기 심남일 의진에서 도통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심남일 지휘 아래 1908년 3월의 강진 오치동 전투, 1908년 10월의 능주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8월 석정 전투 패배 후 능주로 피신하였다.
김도숙 (金道淑)
김도숙은 대한제국기 심남일 의진에서 도통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심남일 지휘 아래 1908년 3월의 강진 오치동 전투, 1908년 10월의 능주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8월 석정 전투 패배 후 능주로 피신하였다.
대한제국기 때. 지리산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권석도 (權錫燾)
대한제국기 때. 지리산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김도규는 보성 출신으로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보성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8년 안규홍 의진에 합류하여 부장으로도 활약하였다. 보성의 박곡 전투, 병치 전투, 진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안규홍이 체포되고 의병이 해산되자 이름을 숨기고 은신하였다.
김도규 (金道珪)
김도규는 보성 출신으로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보성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8년 안규홍 의진에 합류하여 부장으로도 활약하였다. 보성의 박곡 전투, 병치 전투, 진산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안규홍이 체포되고 의병이 해산되자 이름을 숨기고 은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