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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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용호군에 소속된 대장군.
근장대장군 (近仗大將軍)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용호군에 소속된 대장군.
조선시대 정4품 하계의 무관(武官)의 품계명.
소위장군 (昭威將軍)
조선시대 정4품 하계의 무관(武官)의 품계명.
고려시대 여진인(女眞人)에게 주던 관직.
유원장군 (柔遠將軍)
고려시대 여진인(女眞人)에게 주던 관직.
조선시대 종4품 하계(下階) 무신의 품계.
선략장군 (宣略將軍)
조선시대 종4품 하계(下階) 무신의 품계.
조선시대 무신 정4품 상계(上階)의 품계명.
진위장군 (振威將軍)
조선시대 무신 정4품 상계(上階)의 품계명.
조선시대 무신 종4품 상계(上階)의 품계명.
정략장군 (定略將軍)
조선시대 무신 종4품 상계(上階)의 품계명.
조선 전기에 상감 기법으로 제작된 분청사기 장군.
분청사기 상감 모란당초문 장군 (粉靑沙器 象嵌 牡丹▽唐草文 장군)
조선 전기에 상감 기법으로 제작된 분청사기 장군.
조선 전기에 철화기법으로 제작된 분청사기 장군.
분청사기 철화 모란문 장군 (粉靑沙器 鐵畵 牡丹▽文 장군)
조선 전기에 철화기법으로 제작된 분청사기 장군.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15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술 등의 액체를 담는 데 사용한 분청사기이다.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군은 한자 표기로 장본이라고 하며, 술그릇을 지칭한다.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몸통이 부풀어 오른 듯이 팽만한데 아래쪽이 편평하여 안정감이 있고, 위쪽 가운데에는 좁은 입이 붙어있다. 넓은 면을 툭툭 쳐서 만든 듯한 몸통은 질박한 느낌을 준다. 흙으로 만든 도장을 이용하여 찍는 인화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했다. 전면에 작은 점을 빼곡하게 채운 인화기법은 좁고 빈틈이 없는 치밀함으로 공예의장적인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 (粉靑沙器 印花文 獐本)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15세기에 제작되었으며 술 등의 액체를 담는 데 사용한 분청사기이다.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군은 한자 표기로 장본이라고 하며, 술그릇을 지칭한다. 분청사기 인화문 장군은 몸통이 부풀어 오른 듯이 팽만한데 아래쪽이 편평하여 안정감이 있고, 위쪽 가운데에는 좁은 입이 붙어있다. 넓은 면을 툭툭 쳐서 만든 듯한 몸통은 질박한 느낌을 준다. 흙으로 만든 도장을 이용하여 찍는 인화기법으로 문양을 장식했다. 전면에 작은 점을 빼곡하게 채운 인화기법은 좁고 빈틈이 없는 치밀함으로 공예의장적인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장군방은 고려시대, 2군6위(二軍六衛)의 정4품 무관직인 장군들의 회의 기구이다. 총 45명의 장군들이 있었다. 상장군 · 대장군들의 합좌 기구인 중방과 대비되며 여기서의 결정 사항을 저지한다고 할 정도로 독자적인 지위를 가졌다. 설치 시기는 무신정권의 설립 이후 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초까지 이어져 1400년(정종 2)에 폐지되었으며, 의체를 총괄하는 방주(房主)와 실무를 집행하는 장무관(掌務官)이 있었다. 호군으로 바뀐 뒤에는 호군방으로 불리었다. 지정된 촌락에서 조세를 수취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군방 (將軍房)
장군방은 고려시대, 2군6위(二軍六衛)의 정4품 무관직인 장군들의 회의 기구이다. 총 45명의 장군들이 있었다. 상장군 · 대장군들의 합좌 기구인 중방과 대비되며 여기서의 결정 사항을 저지한다고 할 정도로 독자적인 지위를 가졌다. 설치 시기는 무신정권의 설립 이후 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초까지 이어져 1400년(정종 2)에 폐지되었으며, 의체를 총괄하는 방주(房主)와 실무를 집행하는 장무관(掌務官)이 있었다. 호군으로 바뀐 뒤에는 호군방으로 불리었다. 지정된 촌락에서 조세를 수취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이장군대제(南怡將軍大祭)는 매년 10월 초하루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에 소재한 남이장군사당에서 거행하는 마을 신앙이다. 서울 지역에 전승되는 마을 신앙의 하나로, 실존 인물이었던 남이 장군을 마을 수호신인 부군신령으로 모셔 당제와 당굿을 거행한다. 전통적인 마을 신앙에 장군출진, 꽃바꿔오기 등을 복합하여 축제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남이장군대제 (南怡將軍大祭)
남이장군대제(南怡將軍大祭)는 매년 10월 초하루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에 소재한 남이장군사당에서 거행하는 마을 신앙이다. 서울 지역에 전승되는 마을 신앙의 하나로, 실존 인물이었던 남이 장군을 마을 수호신인 부군신령으로 모셔 당제와 당굿을 거행한다. 전통적인 마을 신앙에 장군출진, 꽃바꿔오기 등을 복합하여 축제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신여량 관련 정려각. 사우.
신여량 장군 정려 (申汝樑 將軍 旌閭)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에 있는 조선후기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신여량 관련 정려각. 사우.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은 1980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전 박장군 묘에서 출토된 유물 33점이다. 묘주가 명확하지 않으나 유물의 종류나 형태를 통하여 17세기 전기의 묘라고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단령, 장옷, 도포, 저고리, 바지, 치마, 모자, 홑이불, 쌍상투 등이다. 지금과는 사폭의 구조가 다른 사폭바지, 다양한 깃 모양과 길이의 저고리류, 동자문만 있는 금선단 등이 특징적이다. 다른 묘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들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8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 (淸原 傳 朴將軍 墓 出土 遺物)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은 1980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전 박장군 묘에서 출토된 유물 33점이다. 묘주가 명확하지 않으나 유물의 종류나 형태를 통하여 17세기 전기의 묘라고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단령, 장옷, 도포, 저고리, 바지, 치마, 모자, 홑이불, 쌍상투 등이다. 지금과는 사폭의 구조가 다른 사폭바지, 다양한 깃 모양과 길이의 저고리류, 동자문만 있는 금선단 등이 특징적이다. 다른 묘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들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8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이장군사당제는 매년 10월 남이장군사당에서 조선시대의 무장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남이장군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길복을 기원하는 사당제이다. 서울시 용산구 남이장군사당에서 행해지는 당제이다. 1999년 서울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예능보유자 이명옥이 의례를 주관한다. 조선 전기에 요절한 남이 장군을 위한 제의가 마을 축제로 정착해 용산구와 서울시의 대표적 지역축제가 되었다. 행사 전체 과정은 걸립돌기, 꽃받기, 사당제, 당굿, 사례제 순이다. 1972년 대제행사가 중단되었으나 1983년 복원하여 매년 음력 10월에 대제와 당굿을 지낸다.
남이장군사당제 (南怡將軍祠堂祭)
남이장군사당제는 매년 10월 남이장군사당에서 조선시대의 무장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남이장군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길복을 기원하는 사당제이다. 서울시 용산구 남이장군사당에서 행해지는 당제이다. 1999년 서울시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예능보유자 이명옥이 의례를 주관한다. 조선 전기에 요절한 남이 장군을 위한 제의가 마을 축제로 정착해 용산구와 서울시의 대표적 지역축제가 되었다. 행사 전체 과정은 걸립돌기, 꽃받기, 사당제, 당굿, 사례제 순이다. 1972년 대제행사가 중단되었으나 1983년 복원하여 매년 음력 10월에 대제와 당굿을 지낸다.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고려시대 무신 강민첨의 탄생지.
강민첨 탄생지 (姜民瞻 誕生地)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고려시대 무신 강민첨의 탄생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장수.
김웅원 (金雄元)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김헌창의 난 당시의 장수.
공직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에게 귀부한 호족이다. 신라 말에 매곡현의 본읍 장군으로 있다가 궁예에게 귀부하였는데, 왕건의 고려 건국 직후에 발생한 임춘길의 모반사건을 계기로 후백제에 귀부하여 견훤의 심복이 되었다. 그러나 왕건이 견훤을 상대로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932년(태조 15)에 그는 다시 고려에 귀부하여 대상에 임명되었으며, 백성군의 녹읍과 마구간의 말 3필 등을 하사받았다.
공직 (龔直)
공직은 고려 초에 태조 왕건에게 귀부한 호족이다. 신라 말에 매곡현의 본읍 장군으로 있다가 궁예에게 귀부하였는데, 왕건의 고려 건국 직후에 발생한 임춘길의 모반사건을 계기로 후백제에 귀부하여 견훤의 심복이 되었다. 그러나 왕건이 견훤을 상대로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뒤인 932년(태조 15)에 그는 다시 고려에 귀부하여 대상에 임명되었으며, 백성군의 녹읍과 마구간의 말 3필 등을 하사받았다.
삼국시대 때, 신라의 상사찬 등을 역임한 호족.
강충 (康忠)
삼국시대 때, 신라의 상사찬 등을 역임한 호족.
남북국시대 때, 태봉국의 사화진(沙火鎭)전투(戰鬪)에 참전한 장수.
금식 (黔式)
남북국시대 때, 태봉국의 사화진(沙火鎭)전투(戰鬪)에 참전한 장수.
감의군사(感義軍使)는 통일신라시대에 장보고(張保皐)가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에게 받은 관호(官號)이다. 신무왕이 왕위에 오른 후, 큰 공을 세운 장보고(張保皐)에게 관호와 함께 포상으로 식읍(食邑) 2,000호를 내려 주었다. 신라의 정식 관제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보고에게만 수여되었던 직함이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직위가 아니라 일종의 명예 관호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처럼 왕이 수여한 정식 관호로, 독자적 군사권이 부여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감의군사 (感義軍使)
감의군사(感義軍使)는 통일신라시대에 장보고(張保皐)가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에게 받은 관호(官號)이다. 신무왕이 왕위에 오른 후, 큰 공을 세운 장보고(張保皐)에게 관호와 함께 포상으로 식읍(食邑) 2,000호를 내려 주었다. 신라의 정식 관제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보고에게만 수여되었던 직함이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직위가 아니라 일종의 명예 관호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처럼 왕이 수여한 정식 관호로, 독자적 군사권이 부여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