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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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연합대학은 문교부령 제19호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조치령’에 따라 한국전쟁 중인 1951년 2월 설립된 종합대학 성격의 전시 대학연합체이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대학 교실 등이 파괴되어 정상적인 대학교육이 어렵게 되었다. 1950년 11월 문교 당국은 서울 시내에 있었던 31개의 공사립대학을 망라하여 단일연합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1951년 1월에 부산으로 환도한 이후 2월에 부산에서 개강하였으며 대전, 전북, 광주의 전시연합대학에도 학생들이 등록하였다. 전란 중에 대학 고등교육의 연속성을 제고하였다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의가 크다.
전시연합대학 (戰時聯合大學)
전시연합대학은 문교부령 제19호 ‘대학교육에 관한 전시 특별조치령’에 따라 한국전쟁 중인 1951년 2월 설립된 종합대학 성격의 전시 대학연합체이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대학 교실 등이 파괴되어 정상적인 대학교육이 어렵게 되었다. 1950년 11월 문교 당국은 서울 시내에 있었던 31개의 공사립대학을 망라하여 단일연합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1951년 1월에 부산으로 환도한 이후 2월에 부산에서 개강하였으며 대전, 전북, 광주의 전시연합대학에도 학생들이 등록하였다. 전란 중에 대학 고등교육의 연속성을 제고하였다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의가 크다.
『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은 1479년(성종 10) 조빈이 1471년(성종 2) 별시로 치러진 문무과 전시의 합격자의 명단을 수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조빈이 별시 문과에 급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시기에 합격한 동료들의 명단을 적고 발문을 붙여 편찬하였다. 1책 총 6장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13.5㎝, 세로 22.4㎝이며, 저지(楮紙)를 사용하여 을유자 중간자로 인출하였다. 방목으로 공개된 자료 중 앞선 시기의 유물이다.
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 (辛卯三月 文武科殿試榜目)
『신묘삼월 문무과전시방목』은 1479년(성종 10) 조빈이 1471년(성종 2) 별시로 치러진 문무과 전시의 합격자의 명단을 수록하여 편찬한 책이다. 조빈이 별시 문과에 급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시기에 합격한 동료들의 명단을 적고 발문을 붙여 편찬하였다. 1책 총 6장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13.5㎝, 세로 22.4㎝이며, 저지(楮紙)를 사용하여 을유자 중간자로 인출하였다. 방목으로 공개된 자료 중 앞선 시기의 유물이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대한제국 (大韓帝國)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한국 근대 국가이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해체된 후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새롭게 황제국을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쳤다. 중국에 대한 오랜 사대외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국으로서 근대 주권 국가를 지향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1910년 일제에 의해 병합되었다.
도기과는 조선시대에 성균관에 거재(居齋) 중인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이다. 왕명으로 출석부인 도기를 점검하고 그날의 도기에 이름을 올린 유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였다. 왕명에 따라 수시로 시행하였지만 정조 대부터는 봄 · 가을에 정례화된 춘추도기도 별도로 시행하였다.
도기과 (到記科)
도기과는 조선시대에 성균관에 거재(居齋) 중인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이다. 왕명으로 출석부인 도기를 점검하고 그날의 도기에 이름을 올린 유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였다. 왕명에 따라 수시로 시행하였지만 정조 대부터는 봄 · 가을에 정례화된 춘추도기도 별도로 시행하였다.
고려 후기 과거시험을 담당한 고시관.
독권관 (讀卷官)
고려 후기 과거시험을 담당한 고시관.
교과서는 교수와 학습에 필요로 하는 지식 내용을 교육과정에 따라 제시한 교육서이다. 국가관과 애국심을 배양하며, 건전하고 유능한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도덕적 가치 및 윤리관을 함양하게 하는 교수·학습 수단이다. 국가주도성이 강한 국정·검정 교과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높은 인정 교과서로 구분된다. 교과서는 한 나라의 국민이 추구하는 이념과 이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므로 그 개발·편찬·채택을 국가가 주도해 왔으나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점차 인정 교과서가 대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교과서의 형태도 서책에서 음반·영상 및 전자저작물로 확대되고 있다.
교과서 (敎科書)
교과서는 교수와 학습에 필요로 하는 지식 내용을 교육과정에 따라 제시한 교육서이다. 국가관과 애국심을 배양하며, 건전하고 유능한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도덕적 가치 및 윤리관을 함양하게 하는 교수·학습 수단이다. 국가주도성이 강한 국정·검정 교과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높은 인정 교과서로 구분된다. 교과서는 한 나라의 국민이 추구하는 이념과 이상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므로 그 개발·편찬·채택을 국가가 주도해 왔으나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점차 인정 교과서가 대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교과서의 형태도 서책에서 음반·영상 및 전자저작물로 확대되고 있다.
1938년 4월에 일제가 인적·물적 자원의 총동원을 위해 제정·공포한 전시통제의 기본법.
국가총동원법 (國家總動員法)
1938년 4월에 일제가 인적·물적 자원의 총동원을 위해 제정·공포한 전시통제의 기본법.
문종은 고려 전기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46~1083년이며, 형인 제10대 왕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형제 상속의 형태를 취해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 재위기는 고려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문물제도가 크게 정비된 시기였다. 양반전시과가 다시 정비되고 관제가 개편되었으며, 백관의 서열과 녹과가 제정되는 등 지배체제 확립을 위한 정치·경제제도가 완비되었다. 형법 정비와 재면법 마련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이 있었다. 몇 차례 동여진의 침략도 모두 격퇴하고 여진과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문종 (文宗)
문종은 고려 전기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46~1083년이며, 형인 제10대 왕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형제 상속의 형태를 취해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 재위기는 고려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문물제도가 크게 정비된 시기였다. 양반전시과가 다시 정비되고 관제가 개편되었으며, 백관의 서열과 녹과가 제정되는 등 지배체제 확립을 위한 정치·경제제도가 완비되었다. 형법 정비와 재면법 마련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이 있었다. 몇 차례 동여진의 침략도 모두 격퇴하고 여진과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시대 실시되었던 비정규 문과·무과 시험.
알성시 (謁聖試)
조선시대 실시되었던 비정규 문과·무과 시험.
원치호(元致豪) 작사, 권길상(權吉相) 작곡의 율동적인 동요.
어린이 왈츠 (어린이 Waltz)
원치호(元致豪) 작사, 권길상(權吉相) 작곡의 율동적인 동요.
조선 후기에 유본학(柳本學)이 지은 가전체소설.
오원전 (烏圓傳)
조선 후기에 유본학(柳本學)이 지은 가전체소설.
「여정(旅程)」은 『문장(文章)』 1941년 2월호에 발표된 조용만(趙容萬)의 단편소설이다. 다롄으로 떠나는 배에 승선한 ‘나’가 ‘반도낭자군’의 일원이 되어 북중국으로 팔려가는 조선인 소녀의 무리를 마주치고, 그 중 빚에 졸리어 몸을 판 복순이라는 소녀를 관찰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다. 일제 말기 조선인 여성에 대한 전시동원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당대 보기 드문 작품으로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는 조선 지식인의 우울함과 무력감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여정 (旅程)
「여정(旅程)」은 『문장(文章)』 1941년 2월호에 발표된 조용만(趙容萬)의 단편소설이다. 다롄으로 떠나는 배에 승선한 ‘나’가 ‘반도낭자군’의 일원이 되어 북중국으로 팔려가는 조선인 소녀의 무리를 마주치고, 그 중 빚에 졸리어 몸을 판 복순이라는 소녀를 관찰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한다. 일제 말기 조선인 여성에 대한 전시동원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당대 보기 드문 작품으로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는 조선 지식인의 우울함과 무력감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신공제는 일제강점기 때, 한중연합군을 창설하는 등 중국과의 교섭을 담당하며 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외교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9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광복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한중합작이라고 판단하고 중국혁명당에 가입하였다. 1931년 대일전선통일동맹을 조직하였으며 한중연합군을 창설하여 공동항일전선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고 중일전쟁에 참전하였다.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위원에 임명되었으며, 한중문화협회 이사로 한중 친선에 기여하였다.
신공제 (辛公濟)
신공제는 일제강점기 때, 한중연합군을 창설하는 등 중국과의 교섭을 담당하며 임시의정원 의원, 임시정부 외교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9년에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광복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한중합작이라고 판단하고 중국혁명당에 가입하였다. 1931년 대일전선통일동맹을 조직하였으며 한중연합군을 창설하여 공동항일전선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한국광복전선을 결성하고 중일전쟁에 참전하였다.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위원에 임명되었으며, 한중문화협회 이사로 한중 친선에 기여하였다.
인일제(人日製)는 조선시대, 오순절제(五巡節製)의 하나로서, 정월 7일인 인일(人日)을 기념하여 성균관에서 시행하던 시험이다. 주요 시험 대상은 성균관 유생이었다. 영조 대에 이르러 인일제의 시행이 본격화되었으며, 이후 고종 대까지 지속되었다. 인일제의 주요 시험 대상은 성균관의 원점유생(圓點儒生)이었으나, 때로 지방 유생을 뽑기도 하였다. 수석 합격자에게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혜택이 부여되었으며, 시험은 대부분 성균관에서 거행되었다.
인일제 (人日製)
인일제(人日製)는 조선시대, 오순절제(五巡節製)의 하나로서, 정월 7일인 인일(人日)을 기념하여 성균관에서 시행하던 시험이다. 주요 시험 대상은 성균관 유생이었다. 영조 대에 이르러 인일제의 시행이 본격화되었으며, 이후 고종 대까지 지속되었다. 인일제의 주요 시험 대상은 성균관의 원점유생(圓點儒生)이었으나, 때로 지방 유생을 뽑기도 하였다. 수석 합격자에게는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혜택이 부여되었으며, 시험은 대부분 성균관에서 거행되었다.
고려·조선시대 과거 문무과 전시(殿試)에서 갑과 3인 가운데에서 수석으로 급제한 자.
장원 (壯元)
고려·조선시대 과거 문무과 전시(殿試)에서 갑과 3인 가운데에서 수석으로 급제한 자.
조선시대 궁중의 뜰에서 베풀던 행사에 연주되었던 고취.
전정고취 (殿庭鼓吹)
조선시대 궁중의 뜰에서 베풀던 행사에 연주되었던 고취.
직부법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회시에 응시하거나 초시·회시를 면제받고 전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게 한 특전 제도이다. 직부는 학교 교육 장려책으로 마련된 것으로 1432년(세종 14) 사학 생도에게 처음 적용되었고 각 지방 도회 생도, 성균관 유생에게까지 확대되었다. 1433년(세종 26) 혁파되었다가 1459년(세조 5년) 부활되어 과거법이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과의 경우 16세기 중종 때 직부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직부법이 정기적으로 적용되는 각종 과시들이 정비되어 법제화되었다.
직부법 (直赴法)
직부법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초시를 면제받고 바로 회시에 응시하거나 초시·회시를 면제받고 전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게 한 특전 제도이다. 직부는 학교 교육 장려책으로 마련된 것으로 1432년(세종 14) 사학 생도에게 처음 적용되었고 각 지방 도회 생도, 성균관 유생에게까지 확대되었다. 1433년(세종 26) 혁파되었다가 1459년(세조 5년) 부활되어 과거법이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과의 경우 16세기 중종 때 직부법을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직부법이 정기적으로 적용되는 각종 과시들이 정비되어 법제화되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 종합대학교.
충남대학교 (忠南大學校)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 종합대학교.
참시관(參試官)은 조선시대 과거의 시행을 담당하던 시관의 한 종류이다. 참시관으로 일컬어진 시관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초시와 복시에서 상시관(上試官)을 보좌하던 3품~6품의 시관이다. 또 하나는 무과 전시 때의 2품 이상 시관이다. 무과 전시의 참시관은 정조 때 고관(考官)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참시관 (參試官)
참시관(參試官)은 조선시대 과거의 시행을 담당하던 시관의 한 종류이다. 참시관으로 일컬어진 시관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초시와 복시에서 상시관(上試官)을 보좌하던 3품~6품의 시관이다. 또 하나는 무과 전시 때의 2품 이상 시관이다. 무과 전시의 참시관은 정조 때 고관(考官)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인민의용군은 한국전쟁 초기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따라 정규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 또는 군인이다. 1950년 7월 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선포한 ‘전시동원령’에 근거해 모집되었다. 개전 초에는 출옥한 좌익사범, 지하활동가, 보도연맹원 등이 자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7월 2일부터 ‘군중대회’ 또는 ‘궐기대회’ 등을 집단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북한은 의용군 모집을 위해 복구된 당조직과 노동·청년·학생·여성단체들을 총동원했다. 한국전쟁 중 인민의용군으로 참가한 인원은 적게는 10만에서 많게는 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민의용군 (人民義勇軍)
인민의용군은 한국전쟁 초기 북한의 전시동원령에 따라 정규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 또는 군인이다. 1950년 7월 1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선포한 ‘전시동원령’에 근거해 모집되었다. 개전 초에는 출옥한 좌익사범, 지하활동가, 보도연맹원 등이 자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7월 2일부터 ‘군중대회’ 또는 ‘궐기대회’ 등을 집단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북한은 의용군 모집을 위해 복구된 당조직과 노동·청년·학생·여성단체들을 총동원했다. 한국전쟁 중 인민의용군으로 참가한 인원은 적게는 10만에서 많게는 4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