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정서"
검색결과 총 51건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판상서병부사, 중서시랑, 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부 (金永夫)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판상서병부사, 중서시랑, 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병일은 일제강점기에 만주 지린성 훈춘현에서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포들에게 애국사상을 전파하고 황병길·박정환·채덕승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 장쭤린의 부하 왕잉창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1928년 사망하였다.
강병일 (姜秉一)
강병일은 일제강점기에 만주 지린성 훈춘현에서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포들에게 애국사상을 전파하고 황병길·박정환·채덕승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 장쭤린의 부하 왕잉창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1928년 사망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동북면군사연락위원,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길림전만선 반제동맹대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원식 (金元植)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동북면군사연락위원,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길림전만선 반제동맹대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충남, 전북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노재철 (盧載喆)
일제강점기 때, 충남, 전북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
김이영 (金貽永)
김이영은 고려 전기 대령후 왕경 유배사건과 관련된 문신이다. 인종의 신임을 받은 정항(鄭沆)의 딸과 결혼한 후에 문과 급제하였지만, 시험문제의 오류로 합격이 취소되려 하였는데, 정항과 왕비 등의 간청으로 모면하였다. 의종 즉위 이후 의종의 동생 대령후 유배 사건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강등되었다가 1170년(의종 24) 무신정변 후에 복귀되어 상서(尙書)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천영학교 교사, 북로군정서 총재비서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강철구 (姜銕求)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천영학교 교사, 북로군정서 총재비서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김좌진 (金佐鎭)
김좌진은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대한제국기에 신민회와 대한협회 등의 계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대한광복회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북간도에서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후 신민부를 조직하였으며,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혁신의회와 한족총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에서 김좌진 휘하의 제3중대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찬수 (金燦洙)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에서 김좌진 휘하의 제3중대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분수령』은 1937년에 동경의 삼문사에서 이용악의 시 「북」, 「나를 만나거던」, 「동망하는 밤」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시집이다.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며 펴낸 시집으로, 고향을 떠나온 자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답답함이라는 양가적인 심정을 노래했다.
분수령 (分水嶺)
『분수령』은 1937년에 동경의 삼문사에서 이용악의 시 「북」, 「나를 만나거던」, 「동망하는 밤」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시집이다.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며 펴낸 시집으로, 고향을 떠나온 자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답답함이라는 양가적인 심정을 노래했다.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김창숙 (金昌淑)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육군연성학교 조교, 북로군정서 사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고려혁명군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규식 (金奎植)
일제강점기 때, 육군연성학교 조교, 북로군정서 사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고려혁명군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학성학교 교장, 북로군정서 군정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덕현 (金德賢)
일제강점기 때, 학성학교 교장, 북로군정서 군정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사관양성소 교성대장,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나중소 (羅仲昭)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사관양성소 교성대장, 신민부 참모부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대령후 (大寧侯)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윤복영 (尹復榮)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을 조직하였으며, 북로군정서 특파대장으로 군자금을 조달하여 청산리전투 승리에 일조한 독립운동가.
윤준희 (尹俊熙)
일제강점기 때, 철혈광복단을 조직하였으며, 북로군정서 특파대장으로 군자금을 조달하여 청산리전투 승리에 일조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교관, 종군장교, 고려혁명군 장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민화 (李敏華)
일제강점기 때, 서로군정서 교관, 종군장교, 고려혁명군 장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이범석 (李範奭)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일제강점기 때, 신흥강습소 교장, 서로군정서 학무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봉희 (李鳳羲)
일제강점기 때, 신흥강습소 교장, 서로군정서 학무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 장교, 성동사관학교 교관, 대한독립군단 위원, 신민부 경호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오상서 (吳祥瑞)
일제강점기 때, 북로군정서 장교, 성동사관학교 교관, 대한독립군단 위원, 신민부 경호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