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사"
검색결과 총 80건
불교의 1종(宗) 또는 1파(派)를 세운 승려.
조사 (祖師)
불교의 1종(宗) 또는 1파(派)를 세운 승려.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에서 관직 임명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검증절차.
조사 (朝謝)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에서 관직 임명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검증절차.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등에 결합해서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 특수조사.
보조사 (補助詞)
체언, 부사, 활용 어미 등에 결합해서 특별한 의미를 더해 주는 조사. 특수조사.
지역 내 유물의 유무·분포·성격 등을 파악하기 위하여 땅 위에 나타나 있는 유적·유물의 모든 현황을 자세히 살피고 기록하는 조사행위. 지상조사.
지표조사 (地表調査)
지역 내 유물의 유무·분포·성격 등을 파악하기 위하여 땅 위에 나타나 있는 유적·유물의 모든 현황을 자세히 살피고 기록하는 조사행위. 지상조사.
전국 인구와 주택의 총수와 기본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총조사.
인구주택총조사 (人口住宅總調査)
전국 인구와 주택의 총수와 기본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총조사.
농가경제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조선농회 및 농림국이 농민들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조사이다. 1930년대 농가경제조사는 농촌의 위급한 상황에 대한 구제책을 수립할 목적으로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소작쟁의 대책을 강구하고 산업 개발의 기본 조사에 이용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1920년대의 농가 조사나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의 ‘농업 생산력 확충’을 위해 실시된 농가경제조사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농가경제조사 (農家經濟調査)
농가경제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조선농회 및 농림국이 농민들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조사이다. 1930년대 농가경제조사는 농촌의 위급한 상황에 대한 구제책을 수립할 목적으로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소작쟁의 대책을 강구하고 산업 개발의 기본 조사에 이용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1920년대의 농가 조사나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의 ‘농업 생산력 확충’을 위해 실시된 농가경제조사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출구조사(出口調査)는 선거일에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선거권자에게 어느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하였는지 물어보는 선거여론조사 기법이다. 투표의 비밀을 침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질문해야 하며 투표 마감 시각까지 그 경위와 결과를 공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출구조사 (出口調査)
출구조사(出口調査)는 선거일에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선거권자에게 어느 정당이나 후보자를 선택하였는지 물어보는 선거여론조사 기법이다. 투표의 비밀을 침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질문해야 하며 투표 마감 시각까지 그 경위와 결과를 공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찰에서 불교 종파의 조사 또는 사찰의 창건주 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불교건축물.
조사당 (祖師堂)
사찰에서 불교 종파의 조사 또는 사찰의 창건주 등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불교건축물.
조사상은 조사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 조각으로 승려상이다. 조사란 후세에 경의를 받을 만한 승려이거나 불교 종파를 개창한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사상의 실체를 알려줄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큰 사찰의 경우 조사당을 두기도 하지만 상의 형태가 아닌 진영(眞影)의 모습으로 봉안한다. 또한 그나마 전해지던 조사상도 조선 후기 전란 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조사상 중에서 가장 이른 예는 합천 해인사의 희랑조사상이다. 조사상은 불교 존상으로서의 의미 외에도 초상 조각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조사상 (祖師像)
조사상은 조사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 조각으로 승려상이다. 조사란 후세에 경의를 받을 만한 승려이거나 불교 종파를 개창한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사상의 실체를 알려줄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큰 사찰의 경우 조사당을 두기도 하지만 상의 형태가 아닌 진영(眞影)의 모습으로 봉안한다. 또한 그나마 전해지던 조사상도 조선 후기 전란 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조사상 중에서 가장 이른 예는 합천 해인사의 희랑조사상이다. 조사상은 불교 존상으로서의 의미 외에도 초상 조각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법전조사국은 통감부 시기, 각종 입법 자료 수집과 법률 편찬을 위한 조사를 주관하던 기구이다. 통감부 설치 이후 일제는 한국을 보호국화하려는 정책에 따라 법전 편찬을 계획하였다. 이때 법전의 초안을 작성하기 위하여 관습조사 사업이 이루어졌는데, 법전조사국은 1907년에 설립되어 1910년 강제병합 직전까지 이 사업을 주관하였고 관습조사보고서 등을 만들었다.
법전조사국 (法典調査局)
법전조사국은 통감부 시기, 각종 입법 자료 수집과 법률 편찬을 위한 조사를 주관하던 기구이다. 통감부 설치 이후 일제는 한국을 보호국화하려는 정책에 따라 법전 편찬을 계획하였다. 이때 법전의 초안을 작성하기 위하여 관습조사 사업이 이루어졌는데, 법전조사국은 1907년에 설립되어 1910년 강제병합 직전까지 이 사업을 주관하였고 관습조사보고서 등을 만들었다.
조선 말기에 제실재산(帝室財産)과 국유재산을 분할·조사할 목적으로 임시로 설치된 관청.
임시제실유급국유재산조사국 (臨時帝室有及國有財産調査局)
조선 말기에 제실재산(帝室財産)과 국유재산을 분할·조사할 목적으로 임시로 설치된 관청.
일제가 한국에서 식민지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임야에 실시한 대규모의 조사사업.
임야조사사업 (林野調査事業)
일제가 한국에서 식민지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임야에 실시한 대규모의 조사사업.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는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이 진묵조사 일옥(一玉, 1562~1633)에 대한 일화를 수집하여 수록한 것으로 1857년(철종 8)에 전북 전주 서방산 봉서사(鳳棲寺)에서 간행되었다.
진묵조사유적고 (震默祖師遺蹟考)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는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이 진묵조사 일옥(一玉, 1562~1633)에 대한 일화를 수집하여 수록한 것으로 1857년(철종 8)에 전북 전주 서방산 봉서사(鳳棲寺)에서 간행되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소재 대곡사에 있는 삼화상 및 조사 진영.
의성 대곡사 삼화상·조사 진영 (義城 大谷寺 三和尙·祖師 眞影)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소재 대곡사에 있는 삼화상 및 조사 진영.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도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각각 설치한 선거여론조사 심의기구이다. 중앙 및 시·도 단위로 조직되어 있으며,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하는 각 1명, 학계, 법조계, 여론조사 기관 단체의 전문가 등을 포함하여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람 중에서 중앙 및 시·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하는 9명 이내로 구성하고 있다.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選擧輿論調査審議委員會)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객관성·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도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각각 설치한 선거여론조사 심의기구이다. 중앙 및 시·도 단위로 조직되어 있으며,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하는 각 1명, 학계, 법조계, 여론조사 기관 단체의 전문가 등을 포함하여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람 중에서 중앙 및 시·도 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하는 9명 이내로 구성하고 있다.
고려 후기에, 국학학정, 사헌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김문정 (金文鼎)
고려 후기에, 국학학정, 사헌규정 등을 역임한 문신.
불교에서 예경의식의 하나로 부처나 보살·조사 등 신앙의 대상이 되는 모든 존재를 향해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예경의식.
대례참례 (大禮懺禮)
불교에서 예경의식의 하나로 부처나 보살·조사 등 신앙의 대상이 되는 모든 존재를 향해 행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예경의식.
박순은 조선 초 조사의의 난을 진정하기 위해 동북면에 갔다가 피살된 무신이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요동정벌군에 종군하였다가 위화도회군에 참여하였고, 조선 건국 이후 여러 무관직을 거쳤다. 1402년(태종 2)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자 상호군으로서 동북면을 진정하라는 왕명을 받고 갔으나 반란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박순 (朴淳)
박순은 조선 초 조사의의 난을 진정하기 위해 동북면에 갔다가 피살된 무신이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요동정벌군에 종군하였다가 위화도회군에 참여하였고, 조선 건국 이후 여러 무관직을 거쳤다. 1402년(태종 2) 조사의의 난이 일어나자 상호군으로서 동북면을 진정하라는 왕명을 받고 갔으나 반란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약수 (金若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강명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상하이 임시정부 의원을 지내고 1920년대 통의부, 정의부, 신민부를 거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 이후 항일 무력 항쟁에 나섰으며, 8·15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육군 장교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강명규 (姜明奎)
강명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상하이 임시정부 의원을 지내고 1920년대 통의부, 정의부, 신민부를 거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 이후 항일 무력 항쟁에 나섰으며, 8·15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육군 장교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