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적의_난"
검색결과 총 29건
고려 후기에, 강릉부녹사, 지공거, 정치도감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돈 (金永旽)
고려 후기에, 강릉부녹사, 지공거, 정치도감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좌정승, 우정승, 상락후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후 (金永煦)
고려 후기에, 좌정승, 우정승, 상락후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강윤충 (康允忠)
고려 후기에,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고려 후기에, 지신사, 밀직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인연 (金仁沇)
고려 후기에, 지신사, 밀직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대호군, 첨의평리, 제조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자 (金資)
고려 후기에, 대호군, 첨의평리, 제조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대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김장 (金蔣)
고려 후기에, 대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영해부사, 권정동성 등을 역임한 문신.
김지겸 (金之兼)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영해부사, 권정동성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 충숙왕 사후에 왕호를 옹립하려던 조적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녹훈되었으나, 충목왕 즉위 후 실정으로 탄핵된 관리·공신.
박인수 (朴仁壽)
고려 후기, 충숙왕 사후에 왕호를 옹립하려던 조적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녹훈되었으나, 충목왕 즉위 후 실정으로 탄핵된 관리·공신.
고려후기 호군, 상호군, 의성군 등을 역임한 무신.
김경 (金鏡)
고려후기 호군, 상호군, 의성군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호군, 동지밀직사사, 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박청 (朴靑)
고려후기 호군, 동지밀직사사, 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봉천우 (奉天祐)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남궁신 (南宮信)
고려 후기에, 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화평부원군 등을 역임한 관리·공신.
김석견 (金石堅)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화평부원군 등을 역임한 관리·공신.
고려 후기에, 호군, 군부판서, 행성이문 등을 역임한 문신.
배전 (裵佺)
고려 후기에, 호군, 군부판서, 행성이문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신궁건축 감독관, 청도군 지군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선장 (金善莊)
고려후기 신궁건축 감독관, 청도군 지군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서연관, 찬성사, 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승택 (金承澤)
고려 후기에, 서연관, 찬성사, 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권준 (權準)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손수경은 고려 후기에 판삼사사, 도첨의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국왕의 측근으로 성장한 고려 후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충숙왕 아래에서는 원의 입성 책동을 저지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충혜왕의 측근으로 조적의 난 등을 평정하여 다시 공신이 되었으며, 충정왕 당시 최고위직에 올랐다. 이후 공민왕 대 석기 추대 반란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손수경 (孫守卿)
손수경은 고려 후기에 판삼사사, 도첨의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국왕의 측근으로 성장한 고려 후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충숙왕 아래에서는 원의 입성 책동을 저지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충혜왕의 측근으로 조적의 난 등을 평정하여 다시 공신이 되었으며, 충정왕 당시 최고위직에 올랐다. 이후 공민왕 대 석기 추대 반란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최유 (崔濡)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고려후기 조적의 난과 관련된 관리.
채하중 (蔡河中)
고려후기 조적의 난과 관련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