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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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종성군 종성면 동관동에 있었던 옛 진(鎭).
동관진 (潼關鎭)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면 동관동에 있었던 옛 진(鎭).
김덕진은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을 위시로 한 홍주의진에 참여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1906년 5월에 일본군의 공격에 의진이 흩어지고 다시 재궐기하는 과정에 참여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투옥하여 복역하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덕진 (金德鎭)
김덕진은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을 위시로 한 홍주의진에 참여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1906년 5월에 일본군의 공격에 의진이 흩어지고 다시 재궐기하는 과정에 참여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투옥하여 복역하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울산광역시 울주 지역의 옛 지명.
동진 (東津)
울산광역시 울주 지역의 옛 지명.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김산의진 (金山義陣)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호좌의병진(湖左義兵陣)은 1896년(고종 33) 1월 강원도 영월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진이다.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중군장 이춘영, 전군장 안승우, 후군장 신지수, 선봉장 김백선 등을 임명하였다. 같은 해 2월부터 10월까지 제천을 거점으로 원주, 영월, 영춘, 단양, 풍기, 충주, 음성 등지에서 항쟁을 지속하였다.
호좌의병진 (湖左義兵陣)
호좌의병진(湖左義兵陣)은 1896년(고종 33) 1월 강원도 영월에서 일어난 항일의병진이다.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중군장 이춘영, 전군장 안승우, 후군장 신지수, 선봉장 김백선 등을 임명하였다. 같은 해 2월부터 10월까지 제천을 거점으로 원주, 영월, 영춘, 단양, 풍기, 충주, 음성 등지에서 항쟁을 지속하였다.
『진도군읍지』는 1791년 이후 전라도 진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선생안 항목 내용을 참고하면, 편찬 연도를 1791년~179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1책 16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군사적 요충지의 특성을 반영하여 군사 부문에 대한 기록들이 많고 자세하다. 명양진을 소개하면서 이순신이 왜적을 물리친 곳이라고 하였고, 이 밖에 보유하고 있는 배의 내역, 군사의 구성 및 숫자, 보유하는 군사 무기의 종류와 수량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진도군읍지 (珍島郡邑誌)
『진도군읍지』는 1791년 이후 전라도 진도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선생안 항목 내용을 참고하면, 편찬 연도를 1791년~179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1책 16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군사적 요충지의 특성을 반영하여 군사 부문에 대한 기록들이 많고 자세하다. 명양진을 소개하면서 이순신이 왜적을 물리친 곳이라고 하였고, 이 밖에 보유하고 있는 배의 내역, 군사의 구성 및 숫자, 보유하는 군사 무기의 종류와 수량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초시(初試)에 합격한 자가 사정상 예조에 사유를 적은 진시장(陳試狀)을 제출하고 다음 기회에 회시(會試)를 보는 제도.
진시 (陳試)
초시(初試)에 합격한 자가 사정상 예조에 사유를 적은 진시장(陳試狀)을 제출하고 다음 기회에 회시(會試)를 보는 제도.
경상남도 창원시ㆍ밀양시ㆍ김해시 일대에 펼쳐진 낙동강 유역의 평야.
진영 평야 (進永 平野)
경상남도 창원시ㆍ밀양시ㆍ김해시 일대에 펼쳐진 낙동강 유역의 평야.
진척은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 진(津)에 배속되어 진도선(津渡船)을 부리던 사람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진(津)은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과 함께 특수 행정 구역으로 분류되었고, 거주 이전의 자유 및 관직 진출이나 승려가 되는 것이 제한되었다. 이러한 차별은 특수 교통의 요지인 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진척 확보의 방안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진은 주현(主縣)의 통제를 받는 특수 행정 구역이었지만, 조선 전기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일부 주민들이 국역(國役)을 지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진척 (津尺)
진척은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 진(津)에 배속되어 진도선(津渡船)을 부리던 사람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진(津)은 향(鄕)⋅소(所)⋅부곡(部曲)⋅장(莊)⋅처(處) 등과 함께 특수 행정 구역으로 분류되었고, 거주 이전의 자유 및 관직 진출이나 승려가 되는 것이 제한되었다. 이러한 차별은 특수 교통의 요지인 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진척 확보의 방안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진은 주현(主縣)의 통제를 받는 특수 행정 구역이었지만, 조선 전기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지고 일부 주민들이 국역(國役)을 지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삼국시대 백제의 우보를 역임한 관리. 대신.
진회 (眞會)
삼국시대 백제의 우보를 역임한 관리. 대신.
190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운동단체.
공진회 (共進會)
190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운동단체.
고려후기 형부시랑, 상서우승, 대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박진재 (朴晉材)
고려후기 형부시랑, 상서우승, 대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사.
고령진민선정가 (高嶺鎭民善政歌)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부산진초등학교 (釜山鎭初等學校)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신축진연도병」은 1901년(광무 5) 7월, 고종황제의 오순(五旬)을 기념하는 진연 장면을 8폭 병풍에 담은 행사기록화이다.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진연 장면을 시각화한 4장면의 그림과 진연청 당상과 낭청의 좌목으로 구성된 8폭 병풍이다. 4장면의 진연도는 ‘함녕전외진연도’를 비롯해 ‘함녕전내진연도’, ‘함녕전야진연도’, ‘함녕전익일회작도’이다. 이례적으로 진하도를 생략한 채 연향도만으로 구성되었다. . 또한 장황도 개장되지 않고 원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19세기 궁중 행사기록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신축진연도병 (辛丑進宴圖屛)
「신축진연도병」은 1901년(광무 5) 7월, 고종황제의 오순(五旬)을 기념하는 진연 장면을 8폭 병풍에 담은 행사기록화이다.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진연 장면을 시각화한 4장면의 그림과 진연청 당상과 낭청의 좌목으로 구성된 8폭 병풍이다. 4장면의 진연도는 ‘함녕전외진연도’를 비롯해 ‘함녕전내진연도’, ‘함녕전야진연도’, ‘함녕전익일회작도’이다. 이례적으로 진하도를 생략한 채 연향도만으로 구성되었다. . 또한 장황도 개장되지 않고 원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19세기 궁중 행사기록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주진군은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북계와 동계의 주·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이다. 고려의 국경지역는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방어주(防禦州)·진(鎭)을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와 진장(鎭長)을 임명하였다.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병력수도 훨씬 많다. 주·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 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남도로부터 번상한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진이 함락되면서 붕괴되었다.
주진군 (州鎭軍)
주진군은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북계와 동계의 주·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이다. 고려의 국경지역는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방어주(防禦州)·진(鎭)을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와 진장(鎭長)을 임명하였다.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병력수도 훨씬 많다. 주·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 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남도로부터 번상한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진이 함락되면서 붕괴되었다.
평안도 4진의 첨절제사가 작성한 진지(鎭誌)를 모아 1895년에 엮은 지리지이다. 필사본 2책이다. 제1책은 「신도지(薪島誌)」, 「선사진사례(宣沙鎭事例)」, 「신도사례(薪島事例)」, 「오노량진사례진지(吾老粱鎭事例鎭誌)」로 구성되었고, 제2책은 「서림진사례(西林鎭事例)」로 구성되었다. 신도진을 제외한 다른 진은 진지보다 사례를 위주로 한 사례 중심의 읍지로서, 당시에 편찬된 읍지류의 일반적 경향과 동일하다. 조선시대의 군사적 요충지인 진의 구성과 운영 실태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관서진지 (關西鎭誌)
평안도 4진의 첨절제사가 작성한 진지(鎭誌)를 모아 1895년에 엮은 지리지이다. 필사본 2책이다. 제1책은 「신도지(薪島誌)」, 「선사진사례(宣沙鎭事例)」, 「신도사례(薪島事例)」, 「오노량진사례진지(吾老粱鎭事例鎭誌)」로 구성되었고, 제2책은 「서림진사례(西林鎭事例)」로 구성되었다. 신도진을 제외한 다른 진은 진지보다 사례를 위주로 한 사례 중심의 읍지로서, 당시에 편찬된 읍지류의 일반적 경향과 동일하다. 조선시대의 군사적 요충지인 진의 구성과 운영 실태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진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후원하고, 한족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국민대표회의,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서로군정서, 정의부, 조선혁명자후원회 등 여러 독립 단체에 관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이진산 (李震山)
이진산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후원하고, 한족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국민대표회의,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서로군정서, 정의부, 조선혁명자후원회 등 여러 독립 단체에 관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금광당사진관 (金光堂寫眞館)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백제 오부는 동서남북의 사방과 중앙의 중부를 바탕으로 정비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국가 통치 조직이다. 백제의 오부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대국가 성립 이전 토착 세력의 편제로, 중앙의 부족이 중부가 되고 나머지는 동부·서부·남부·북부가 되었다. 둘째는 사비 천도 이후 본격화한 수도 오부제로, 수도를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로 나눠 귀족을 살게 하여 귀족 세력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했다. 셋째는 지방 행정 조직으로, 전국을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로 나누고 그 밑에 군과 성을 예속시킨 제도이다. 백제 멸망 후 당이 오도독부를 둘 때도 이용했다.
백제 오부 (百濟 五部)
백제 오부는 동서남북의 사방과 중앙의 중부를 바탕으로 정비하여 이루어진 백제의 국가 통치 조직이다. 백제의 오부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대국가 성립 이전 토착 세력의 편제로, 중앙의 부족이 중부가 되고 나머지는 동부·서부·남부·북부가 되었다. 둘째는 사비 천도 이후 본격화한 수도 오부제로, 수도를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로 나눠 귀족을 살게 하여 귀족 세력의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했다. 셋째는 지방 행정 조직으로, 전국을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로 나누고 그 밑에 군과 성을 예속시킨 제도이다. 백제 멸망 후 당이 오도독부를 둘 때도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