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회는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삼부(三府)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김좌진(金佐鎭),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李靑天)] 등이 중심이 되고, 일부 좌익계열 단체가 합류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의 성격을 가진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등을 목표로 하고, 군정부(軍政府) 설립을 추진하였다.
1928년에 접어들면서 민족유일당 운동이 독립운동단체들에게 전해지면서,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 문제가 활발히 제기되었다. 만주에서도 민족유일당을 건설하기 위해 1928년 5월의 '전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全民族唯一黨組織促成會)'에서 참의부(參議府), 정의부(正義府), 신민부(新民府) 등 삼부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이 논의되었다. 그러나 조직 방식을 둘러싸고 이해가 상충되면서 1개 단체로의 통합은 실패하고 혁신의회와 국민부(國民府)가 결성되었다.
혁신의회는 1928년 12월 신민부 군정파(軍政派), 참의부 주류파(主流派), 정의부 탈퇴파(脫退派)가 통합하여 임시기관으로 조직되었다. 신민부의 군정파는 김좌진, 참의부 주류파는 김승학(金承學), 정의부 탈퇴파는 김동삼, 지청천 등이 대표하였다. 이들은 각기 소속 단체의 해산을 선언한 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여기에 좌익 진영의 재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在中國本部韓人靑年同盟), 재만농민동맹(在滿農民同盟), 남화한인청년동맹(南華韓人靑年聯盟)의 일부가 지지를 표명하였다.
의장에 김동삼, 중앙집행위원장에 김원식(金元植), 군사위원장 황학수(黃學秀), 민정위원장 김승학 등을 선임하였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자치기관 조직 등의 주요 과업을 선정하여 실행하고자 하였으며, 1년 이내에 군정부를 수립하기로 하였다.
또한, 민족유일당 건설을 위해 ' 민족유일독립당재만책진회(民族唯一獨立黨在滿策進會)'를 결성하였다. 책진회의 집행위원에는 촉성회 측의 지청천 · 김동삼, 참의부 측의 김희산(金希山) · 김소하(金筱廈), 신민부 측의 김좌진 · 황학수 등이 선임되었다. 하지만 목표한 기한인 1년 이내에 군정부를 설립하지 못하였고, 내부 문제와 일본 관헌의 압박으로 1929년 5월 해산하였다. 이후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 재만(在滿)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