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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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유적(中島遺蹟)은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규,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도 확인되었다.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그리고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중도 유적 (中島 遺蹟)
중도유적(中島遺蹟)은 강원도 춘천시 중도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삼국시대의 대규모 마을유적이다.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구덩이 유규,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도 확인되었다. 중도유적은 1,300기에 달하는 집터를 비롯하여 방어 시설인 환호와 고인돌, 경작지 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고고학 역사에서 최대 규모를 갖는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그리고 원삼국~한성백제 시기의 중도유적은 환호와 경작지를 갖춘 대규모 마을에 해당하며, 고구려와 관련된 무덤의 존재를 통해서 볼 때 춘천 지역의 역사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북한 함경북도 웅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움집터와 움무덤·민무늬토기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
서포항 유적 (西浦項 遺蹟)
북한 함경북도 웅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움집터와 움무덤·민무늬토기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다.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돌널무덤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총 25차에 걸친 학술 발굴이 진행되면서 대지 조성 흔적, 대지 구획 시설, 목주 열, 대형 굴립주 건물지와 같은 특징적인 유구 및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찾은 집터와 무덤, 토기와 석기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 (扶餘 松菊里 先史 聚落址)
부여 송국리 선사 취락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 있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취락유적이다.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돌널무덤을 통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총 25차에 걸친 학술 발굴이 진행되면서 대지 조성 흔적, 대지 구획 시설, 목주 열, 대형 굴립주 건물지와 같은 특징적인 유구 및 시설이 확인되고 있다. 부여송국리선사취락지에서 찾은 집터와 무덤, 토기와 석기 등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중기 문화를 대표하는 이른바 송국리 유형으로 설정되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뼈연모·슬기슬기사람뼈 등이 출토된 동굴. 집터.
점말 유적 (점말 遺蹟)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뼈연모·슬기슬기사람뼈 등이 출토된 동굴. 집터.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와 석기류 등이 출토된 집터이자 사적이다. 청초호와 경계해 양양과 연결되는 7번 국도변의 서편 구릉 위에 있으며 장방형 집자리 7기와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굽손잡이 그릇과 겹아가리토기가 있다. 이 유물은 남한에서 출토된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동북지역 토기와의 관련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이 유적의 발굴로 신석기시대 말, 청동기시대 초기에 있어서 동북지방과 강원도 영동지방간의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 (束草 朝陽洞 先史遺蹟)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와 석기류 등이 출토된 집터이자 사적이다. 청초호와 경계해 양양과 연결되는 7번 국도변의 서편 구릉 위에 있으며 장방형 집자리 7기와 고인돌 2기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굽손잡이 그릇과 겹아가리토기가 있다. 이 유물은 남한에서 출토된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동북지역 토기와의 관련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이 유적의 발굴로 신석기시대 말, 청동기시대 초기에 있어서 동북지방과 강원도 영동지방간의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집터는 고대사회의 인간이 살았던 모든 형태의 주거지 유적이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집은 추위, 비, 바람, 맹수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중요한 건축물로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구석기시대에는 자연동굴에 주로 거주하였으며, 신석기시대에는 땅을 파서 만든 움집에 거주하며 농경과 정착생활을 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평야나 하천에 가까운 낮은 야산에 자리를 잡고 살았는데 세장방형이나 장방형의 움집 내부에서 기둥구멍, 화덕자리, 저장시설 등이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지상식의 집이 보편화되고 기와집이 등장하며 부뚜막과 구들을 이용하였다.
집터
집터는 고대사회의 인간이 살았던 모든 형태의 주거지 유적이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집은 추위, 비, 바람, 맹수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중요한 건축물로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구석기시대에는 자연동굴에 주로 거주하였으며, 신석기시대에는 땅을 파서 만든 움집에 거주하며 농경과 정착생활을 하였다. 청동기시대에는 평야나 하천에 가까운 낮은 야산에 자리를 잡고 살았는데 세장방형이나 장방형의 움집 내부에서 기둥구멍, 화덕자리, 저장시설 등이 발견되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지상식의 집이 보편화되고 기와집이 등장하며 부뚜막과 구들을 이용하였다.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쌀·보리·수수·조 등의 곡물이 발견된 집터.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驪州 欣巖里 先史遺蹟)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쌀·보리·수수·조 등의 곡물이 발견된 집터.
서산휴암리선사유적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와 고북면 용암리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1968년부터 1970년까지 4차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신석기시대의 돌깐 시설 1기와 청동기시대의 집터 11기, 야외 불뗀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의 돌깐 시설은 산 정상부에 있는 제의 관련 유구로 주목되며, 청동기시대의 집터들은 송국리 문화의 발생과 전파 과정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서산 휴암리 선사유적지 (瑞山 休巖里 先史遺蹟址)
서산휴암리선사유적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와 고북면 용암리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1968년부터 1970년까지 4차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신석기시대의 돌깐 시설 1기와 청동기시대의 집터 11기, 야외 불뗀자리 1기가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의 돌깐 시설은 산 정상부에 있는 제의 관련 유구로 주목되며, 청동기시대의 집터들은 송국리 문화의 발생과 전파 과정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제주 삼양동 유적(濟州 三陽洞 遺蹟)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금속제 무기류를 비롯하여 유리 장신구 등 중국이나 한반도산 물품으로 볼 때, 마을의 상위계층은 제주도 밖 정치체들과의 교역을 주도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이 유적은 동아시아 국제 교역의 무대에 등장한 해안가의 거점 유적이며,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재된 주호국과그 이후 탐라국 형성기의 문화로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제주 삼양동 유적 (濟州 三陽洞 遺蹟)
제주 삼양동 유적(濟州 三陽洞 遺蹟)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금속제 무기류를 비롯하여 유리 장신구 등 중국이나 한반도산 물품으로 볼 때, 마을의 상위계층은 제주도 밖 정치체들과의 교역을 주도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이 유적은 동아시아 국제 교역의 무대에 등장한 해안가의 거점 유적이며,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재된 주호국과그 이후 탐라국 형성기의 문화로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무산 범의구석 유적은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 · 돌화살촐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두만강 상류의 계곡과 성천이 합류하는 주변에 분포한 유적으로 ‘무산 호곡동’이라고도 부른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철기시대까지 크게 6기로 구분되는 문화층에서 40여 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그 가운데 제17호 주거지의 바닥은 진흙으로 잘 다져졌으며 주춧돌은 남북으로 걸쳐 4개씩 2줄로 놓여 있다. 철부·철겸 등이 출토되어 본격적으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산 범의구석 유적 (茂山 범의구석 遺蹟)
무산 범의구석 유적은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 · 돌화살촐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두만강 상류의 계곡과 성천이 합류하는 주변에 분포한 유적으로 ‘무산 호곡동’이라고도 부른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철기시대까지 크게 6기로 구분되는 문화층에서 40여 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그 가운데 제17호 주거지의 바닥은 진흙으로 잘 다져졌으며 주춧돌은 남북으로 걸쳐 4개씩 2줄로 놓여 있다. 철부·철겸 등이 출토되어 본격적으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남군곡리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와 토기 가마터 등이 발굴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생활유적의 연대 추정은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은 14개의 층을 5개의 문화층으로 설정하여 호남 지역 고고학적 편년 연구의 기준이 된다. 토기 가마 등 생산과 관련된 유구도 확인되어 철기시대부터 취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유적 내 출토된 화천과 현무암 태토의 토기는 영산강 유역-해남반도-제주도의 문화 교류 양상을 추정하게 한다.
해남 군곡리 패총 (海南 郡谷里 貝塚)
해남군곡리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와 토기 가마터 등이 발굴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생활유적의 연대 추정은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은 14개의 층을 5개의 문화층으로 설정하여 호남 지역 고고학적 편년 연구의 기준이 된다. 토기 가마 등 생산과 관련된 유구도 확인되어 철기시대부터 취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유적 내 출토된 화천과 현무암 태토의 토기는 영산강 유역-해남반도-제주도의 문화 교류 양상을 추정하게 한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있는 철기시대 석기류·토기류·토제 시루 등이 출토된 집터.
가평 마장리 유적 (加平 馬場里 遺蹟)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있는 철기시대 석기류·토기류·토제 시루 등이 출토된 집터.
안성반제리유적(安城盤諸里遺蹟)은 경기도 안성시 매봉산 일대에 있는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사이의 복합유적이다. 초기 철기시대의 덧띠토기가 출토된 다수의 집터와 환호가 주목되는 취락유적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부터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까지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중요한 것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자료이다. 이 시기로는 비교적 대형 취락에 속하며, 환호와 집터의 배치나 입지로 보아 계획된 설계에 의해 조성된 취락이다.
안성 반제리 유적 (安城 盤諸里 遺蹟)
안성반제리유적(安城盤諸里遺蹟)은 경기도 안성시 매봉산 일대에 있는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사이의 복합유적이다. 초기 철기시대의 덧띠토기가 출토된 다수의 집터와 환호가 주목되는 취락유적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부터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까지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중요한 것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자료이다. 이 시기로는 비교적 대형 취락에 속하며, 환호와 집터의 배치나 입지로 보아 계획된 설계에 의해 조성된 취락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민무늬토기·목긴항아리·석창 등이 출토된 집터.
남양주 수석리 주거지 (南楊州 水石里 住居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철기시대 민무늬토기·목긴항아리·석창 등이 출토된 집터.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가마터·붉은간토기 관련 복합유적. 가마터·움집터.
청원 궁평리 유적 (淸原 宮坪里 遺蹟)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가마터·붉은간토기 관련 복합유적. 가마터·움집터.
북한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토기류·석기류·골각기 등이 출토된 집터.
회령 오동 유적 (會寧 五洞 遺蹟)
북한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토기류·석기류·골각기 등이 출토된 집터.
강릉 초당동 유적(江陵 草堂洞 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덧널무덤 등이 분포하는 유적이다. 초당동 일대의 사구 지대에는 선사시대 이래 마을이 확인되는데, 삼국시대 집터와 총 300여 기 이상의 신라 고분군이 집중 확인되고 있다. 시신을 매장하는 구조는 나무널무덤과 덧널무덤도 확인되지만, 대부분 돌덧널무덤이 축조되었다. 그리고 이 고분들에서는 신라 토기와 함께 금동관, 관장식, 장식큰칼, 귀걸이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어 신라와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강릉 초당동 유적 (江陵 草堂洞 遺蹟)
강릉 초당동 유적(江陵 草堂洞 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초당동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덧널무덤 등이 분포하는 유적이다. 초당동 일대의 사구 지대에는 선사시대 이래 마을이 확인되는데, 삼국시대 집터와 총 300여 기 이상의 신라 고분군이 집중 확인되고 있다. 시신을 매장하는 구조는 나무널무덤과 덧널무덤도 확인되지만, 대부분 돌덧널무덤이 축조되었다. 그리고 이 고분들에서는 신라 토기와 함께 금동관, 관장식, 장식큰칼, 귀걸이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어 신라와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 전승되는 민속놀이로서 강원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목.
철원 상노리 지경다지기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에 전승되는 민속놀이로서 강원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목.
동해송정동유적(東海松亭洞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송정동에 있는 철기시대의 취락유적이다. 다양한 평면 형태의 철기시대 집터가 다수(400여 기) 확인되었으며, 그 내부에서는 송풍관 및 쇳조각과 같이 철기 생산에 관련된 유물과 함께 작살, 고래 뼈 등의 고래 사냥과 관련된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동해송정동유적은 철기시대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사회구조로 발전해 가는 양상과 송정동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실직국(悉直國)의 비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동해 송정동 유적 (東海 松亭洞 遺蹟)
동해송정동유적(東海松亭洞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송정동에 있는 철기시대의 취락유적이다. 다양한 평면 형태의 철기시대 집터가 다수(400여 기) 확인되었으며, 그 내부에서는 송풍관 및 쇳조각과 같이 철기 생산에 관련된 유물과 함께 작살, 고래 뼈 등의 고래 사냥과 관련된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동해송정동유적은 철기시대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사회구조로 발전해 가는 양상과 송정동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실직국(悉直國)의 비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완주 반교리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 분묘 8기와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1기, 원형구덩이 1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청동기시대의 움무덤 6기,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3기가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구릉의 사면에, 분묘는 정상부에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다. 주거지 형태는 전형적인 송국리형 주거지로 이른 시기의 것이며, 분묘는 송국리형 늦은 시기인 서기전 4세기로 추정된다.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유구는 전북 지역에서 발견된 몇 안 되는 원삼국시대의 주거 유적이다.
완주 반교리 유적 (完州 盤橋里 遺蹟)
완주 반교리 유적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널무덤·돌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 분묘 8기와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1기, 원형구덩이 1기가 발견되었다. 또한 청동기시대의 움무덤 6기,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3기가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구릉의 사면에, 분묘는 정상부에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다. 주거지 형태는 전형적인 송국리형 주거지로 이른 시기의 것이며, 분묘는 송국리형 늦은 시기인 서기전 4세기로 추정된다. 원삼국시대의 주거지 유구는 전북 지역에서 발견된 몇 안 되는 원삼국시대의 주거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