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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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는 철기시대 이후 인류가 철을 소재로 만든 도구, 무기, 기구의 총체이다. 인류는 서기전 2,000년부터 인공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이후 동서양으로 철기 생산 기술이 확산되며,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형성한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서기전 3세기대 전국계 철기의 유입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낙동강 유역 내 철기 생산 기술의 보유는 이후 신라, 가야로 이어지는 철기 문화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철기 (鐵器)
철기는 철기시대 이후 인류가 철을 소재로 만든 도구, 무기, 기구의 총체이다. 인류는 서기전 2,000년부터 인공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이후 동서양으로 철기 생산 기술이 확산되며,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형성한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서기전 3세기대 전국계 철기의 유입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낙동강 유역 내 철기 생산 기술의 보유는 이후 신라, 가야로 이어지는 철기 문화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인류가 철을 이용해 도구로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기.
철기시대 (鐵器時代)
인류가 철을 이용해 도구로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기.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철기시대 민무늬토기·타날문토기·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강릉 강문동 유적 (江陵 江門洞 遺蹟)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철기시대 민무늬토기·타날문토기·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김원룡은 해방 이후 『신라토기의 연구』, 『한국미술사연구』 등을 저술한 미술사학자이자 문인이며 화가이다. 1922년에 태어나 1993년에 사망했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위원(현,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고고학과 미술사 분야의 개척자로 100여 편의 논문과 1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한국고고학개설』(1973), 『한국문화의 기원』(1977), 『한국미술사연구』(1987) 등이 있다. 한국고고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주창하였다.
김원룡 (金元龍)
김원룡은 해방 이후 『신라토기의 연구』, 『한국미술사연구』 등을 저술한 미술사학자이자 문인이며 화가이다. 1922년에 태어나 1993년에 사망했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위원(현,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고고학과 미술사 분야의 개척자로 100여 편의 논문과 1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한국고고학개설』(1973), 『한국문화의 기원』(1977), 『한국미술사연구』(1987) 등이 있다. 한국고고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주창하였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조선시대 철과 철기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 철기생산유적.
금곡동 제철 유적 (金谷洞 製鐵 遺蹟)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조선시대 철과 철기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 철기생산유적.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덧띠토기 (덧띠土器)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가운데가 잘록하고 양쪽 끝에 이르면서 폭이 넓어지는 간단한 모양의 쇠판. 철정.
덩이쇠
가운데가 잘록하고 양쪽 끝에 이르면서 폭이 넓어지는 간단한 모양의 쇠판. 철정.
광주신창동유적은 서기전 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생산 및 생활, 매장, 교역 활동 등이 망라된 거점 농경 복합유적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하며, 1963년 53기의 옹관묘가 조사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토기 가마, 환호, 주거지, 밭 유구 등과 함께 목기와 칠기, 볍씨 등의 다양한 곡물 자료와 동·식물류가 포함된 대규모 저습지가 확인되었다. 서기전 2세기경 농촌 마을의 경관과 사회상, 생활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광주 신창동 유적 (光州 新昌洞 遺蹟)
광주신창동유적은 서기전 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생산 및 생활, 매장, 교역 활동 등이 망라된 거점 농경 복합유적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하며, 1963년 53기의 옹관묘가 조사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토기 가마, 환호, 주거지, 밭 유구 등과 함께 목기와 칠기, 볍씨 등의 다양한 곡물 자료와 동·식물류가 포함된 대규모 저습지가 확인되었다. 서기전 2세기경 농촌 마을의 경관과 사회상, 생활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봉산 지탑리 유적은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움집터이다. 재령강의 한 지류인 서흥천변에 위치해 있으며 2개의 지점이 발굴되었다. Ⅰ지구에서는 신석기시대 움집터 1기, Ⅱ지구에서는 신석기시대 움집터 2기와 전형적인 팽이형토기문화의 집터인 청동기시대 움집터 1기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의 신석기문화가 전파·이주하여 한강변의 암사동·미사리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또한 돌보습, 돌낫, 탄화곡물 등의 출토 유물을 통해 한반도 최초의 농경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봉산 지탑리 유적 (鳳山 智塔里 遺蹟)
봉산 지탑리 유적은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움집터이다. 재령강의 한 지류인 서흥천변에 위치해 있으며 2개의 지점이 발굴되었다. Ⅰ지구에서는 신석기시대 움집터 1기, Ⅱ지구에서는 신석기시대 움집터 2기와 전형적인 팽이형토기문화의 집터인 청동기시대 움집터 1기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의 신석기문화가 전파·이주하여 한강변의 암사동·미사리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또한 돌보습, 돌낫, 탄화곡물 등의 출토 유물을 통해 한반도 최초의 농경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무산 범의구석 유적은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 · 돌화살촐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두만강 상류의 계곡과 성천이 합류하는 주변에 분포한 유적으로 ‘무산 호곡동’이라고도 부른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철기시대까지 크게 6기로 구분되는 문화층에서 40여 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그 가운데 제17호 주거지의 바닥은 진흙으로 잘 다져졌으며 주춧돌은 남북으로 걸쳐 4개씩 2줄로 놓여 있다. 철부·철겸 등이 출토되어 본격적으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산 범의구석 유적 (茂山 범의구석 遺蹟)
무산 범의구석 유적은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민무늬토기 · 돌화살촐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두만강 상류의 계곡과 성천이 합류하는 주변에 분포한 유적으로 ‘무산 호곡동’이라고도 부른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철기시대까지 크게 6기로 구분되는 문화층에서 40여 기의 주거지가 발굴되었다. 그 가운데 제17호 주거지의 바닥은 진흙으로 잘 다져졌으며 주춧돌은 남북으로 걸쳐 4개씩 2줄로 놓여 있다. 철부·철겸 등이 출토되어 본격적으로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기류·철제무기류 등이 출토된 무덤.
대동 상리 유적 (大同 上里 遺蹟)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기류·철제무기류 등이 출토된 무덤.
동촉(銅鏃)은 청동으로 만든 화살촉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동촉은 슴베가 있는 유경식, 슴베가 없는 무경식, 투겁이 있는 유공식으로 구분되는데, 유경식과 유공식이 대부분이다. 유경식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해서 비파형동검 문화까지 주로 사용되며, 유공식은 비파형동검 문화 중기에 등장한다. 철경 동촉은 세형동검 문화 후기에 주로 확인된다.
동촉 (銅鏃)
동촉(銅鏃)은 청동으로 만든 화살촉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동촉은 슴베가 있는 유경식, 슴베가 없는 무경식, 투겁이 있는 유공식으로 구분되는데, 유경식과 유공식이 대부분이다. 유경식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해서 비파형동검 문화까지 주로 사용되며, 유공식은 비파형동검 문화 중기에 등장한다. 철경 동촉은 세형동검 문화 후기에 주로 확인된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동진면에 있는 철기시대 돌살촉·민무늬토기조각 등이 출토된 독무덤. 옹관묘.
부안 당하리 옹관묘 (扶安 堂下里 甕棺墓)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동진면에 있는 철기시대 돌살촉·민무늬토기조각 등이 출토된 독무덤. 옹관묘.
삼천포 늑도 패총은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있는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 후반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국가 사적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의 중심 연대는 서기전 2세기∼서기전 1세기대이다. 삼각형 덧띠토기 · 낙랑(계) 토기 · 야요이(계) 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조개더미와 집터 및 무덤 등에서 확인되었으며,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장거리 대외 교역의 중계지로서 국제 무역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삼천포 늑도 패총 (三千浦 勒島 貝塚)
삼천포 늑도 패총은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있는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 후반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국가 사적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의 중심 연대는 서기전 2세기∼서기전 1세기대이다. 삼각형 덧띠토기 · 낙랑(계) 토기 · 야요이(계) 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조개더미와 집터 및 무덤 등에서 확인되었으며,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장거리 대외 교역의 중계지로서 국제 무역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삼국시대 (三國時代)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高靈 場基里 巖刻畵)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연해크루그리이성지는 옌하이저우〔沿海州〕 아르세니예프카강 유역에 자리하는 발해의 산성이다. 이 산성은 처음에 ‘크루그르이성’으로 소개되었으나, 지금은 이웃하는 마을 이름을 딴 ‘노보고르데예브카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성은 산의 북쪽 완만한 비탈면에 축조되었으며, 평면 모양은 오각형에 가깝다. 성의 규모는 동서 190m, 남북 230m이다. 성의 내부에는 24개의 계단식 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초기 철기시대, 발해, 그리고 금나라 대 여진의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며, 발해 시기의 구들 주거지도 발굴되었다.
연해주 크루그르이성지 (沿海州 kŭrugŭrŭi 城址)
연해크루그리이성지는 옌하이저우〔沿海州〕 아르세니예프카강 유역에 자리하는 발해의 산성이다. 이 산성은 처음에 ‘크루그르이성’으로 소개되었으나, 지금은 이웃하는 마을 이름을 딴 ‘노보고르데예브카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성은 산의 북쪽 완만한 비탈면에 축조되었으며, 평면 모양은 오각형에 가깝다. 성의 규모는 동서 190m, 남북 230m이다. 성의 내부에는 24개의 계단식 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초기 철기시대, 발해, 그리고 금나라 대 여진의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며, 발해 시기의 구들 주거지도 발굴되었다.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안테나식 동검 (antenna式 銅劍)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원삼국시대 (原三國時代)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요령연화보유적'은 중국 요령성 무순시 연화보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 및 토기 · 철기 · 화폐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개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1959년 라이닝성박물관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던 중 최초로 발견되었다. 고조선 문화를 바탕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의 문화가 혼입되는 양상이 '위원용연동유적'과도 동일하며, 이 지역의 물질 문화를 묶어서 '세죽리-연화보 유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 조영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요령 연화보 유적 (遼寧 蓮花堡 遺蹟)
'요령연화보유적'은 중국 요령성 무순시 연화보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 및 토기 · 철기 · 화폐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개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1959년 라이닝성박물관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던 중 최초로 발견되었다. 고조선 문화를 바탕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의 문화가 혼입되는 양상이 '위원용연동유적'과도 동일하며, 이 지역의 물질 문화를 묶어서 '세죽리-연화보 유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 조영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